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이익충돌을 어느 한 쪽이 평가하는 법
만약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피고인이 직접 조사한 범죄자료를 바탕으로 판결한다면? 또는 범죄자가 전문 조사자인 형사에게 조사를 해 달라 부탁한 자료로 판결하라고 한다면? 순진하게도 판사는 전적으로 이 자료를 믿고 판결한다면 과연?
지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고 되물을 것이다. 이런 법이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나라에 허우대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을 제발 제자리로 돌려달라는 요구는 법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은 희망이 있었던 촛불정부가 이 숙원을 풀어주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고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어가고 있다.
좀 더 괜찮은 가상의 예를 들어보자.
1) 영끌로 집 한 채 장만하려 하는데 괜찮은 집을 사고 싶다.
2) 정부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집은 팔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한다. 다만,
3) 모든 하자조사는 자기 돈으로 집을 지어 팔려는 사업자가 한다. 다른 사람에 부탁해도 되는데 그 결과가 맘에 안 들면 돈을 안 준다.
4) 하자평가는 사업자의 하자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 팔린 집에서 사후에 발견된 하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자: 저희 집은 하자가 없습니다.
정 부: 그걸 어떻게 알지요?
사업자: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고, 전문가에 돈을 주고 조사해 달라고 해서 나온 결과입니다.
정 부: 그래요? 그럼 믿습니다.
동네사람: 아니, 이 집은 순 하자투성이인데요?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사업자: 뭔 소리 하시는 거예요? 우린 당신같이 전문성이 없는 동네사람이 아닌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조사했고, 정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정 부: 동네 분, 뭐가 문제지요? 사업자 분께서는 법에서 정한 정부절차를 통과했으니 비싸게 잘 파세요. 끝.
이 몇 줄의 시나리오는 초등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빵점도 줄 수 없는 유치하고 형편없는 글이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고,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환경을 책임지는 요체인 ‘환경영향평가법’이 정확히 이렇다.
환경영향평가법의 목적은 모든 국민이 헌법에서 정한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위함이다. 이 목적달성을 위해 국가는 책무를 다해야 하며, 환경부장관은 객관성, 과학성 및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미사어구를 한낱 우이독경으로 만드는 것이 동법 제9조(전략환경영향평가), 제22조(환경영향평가), 제43조(소규모환경영향평가)이다. 각 조의 1항에는 공히 "......사업(계획)을 하려는 자는 ○○평가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평가서 작성 주체를 ‘사업(계획)자’로 명시하고 있다.
내가 만약 사업(계획)자라면 “사업을 하려고 토지를 구매해서 조사해보니 ‘모든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과 쾌적한 삶의 영위’를 위해 사업을 안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간 사업을 준비하면서 투입된 막대한 비용은 전부 손실처리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과연 몇 명이나 ‘예’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영끌했는데도?
제주2공항은 건설하려는 측과 건설을 반대하는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많은 논란을 만들고 있다. 평가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중립적이어야 하나 건설을 밀어붙이는 국토부가 평가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토부에서 돈을 받은 전문가들이 이에 반하는 결과를 내어놓을 수 있을까?
만약 한 번이라도 반하는 결과를 제시한다면 그 회사는 문을 닫아야만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소한 거짓말 한번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법에서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위증은 방어권 행사 측면에서 범죄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건과 관계없는 경찰과 같은 공정한 전문 조사기관이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처분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공정하게 해도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는데 과연 정부는, 환경부는 무얼 믿고 이런 법을 아직까지 당당하게 유지하는 것일까?
전문가를 범죄자로 만드는 법
좀 더 나아가보자. 사업(계획)자가 돈을 주고 받아본 보고서가 ‘이 토지는 개발하면 안 되는 토지이니 개발을 접어야 합니다.’라는 의견서를 내민다면? 우리나라가 ‘을’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구조라고 믿는가? 앞서 말했듯이 회사 문 닫을 생각이 아니면 절대 그럴 수 없다.
현장조사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그 어떤 전문가 과정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최소 몇 년을 길도 없는 산속, 물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수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편안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추구하는 시대에 대학원까지 나온 소위 ‘고급인력’이라 자부하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과 함께 험준한 고산지대 조사라도 할라치면 다들 떠나간다. 환경보호라는 고상한 언어 뒤에 숨어있는 현장조사의 고통은 쉽게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산이나, 물을 헤집고 다니는 데에서 나아가 각종 생물종을 외우고, 그들이 서식하는 환경특성, 행동특성 등 공부할 것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광범위하다. 그래서 국가의 기초학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같이 기초학문을 홀대하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우니, 대부분 대학에서 ‘필드조사’가 필요한 학문분야를 없애고 있다. 정부는 엉터리 법률로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도 선택을 하지 않고, 교수도 가르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기이하게도 대학에서 배출되는 전문가는 점점 희소해지고 있는데, 허우대만 멀쩡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양산되고 있다. 이렇게 양산되는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멸종위기종은 (환경영향평가서에 기록되면 돈을 주는 사업자가 골치가 아파지는) 과거 정부조사보고서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평가서에 기록해야만 하는 종 이외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동일한 장소를 전문적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일반인이 방문해도 관찰되는 종들이 보고서에 누락되는 것이다. 이런 부실한 조사결과에 대한 해명은 늘 같다. 동물은 이동을 할 수 있으니 ‘내가 조사할 때는 안 보였다’라는 말로 말이다.
환경영향평가제도 자체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제도 초기에 가장 큰 사회적 이슈를 불러왔던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부터, 사업이 끝났지만 지금도 사회적 갈등이 전혀 식지 않고 있는 4대강 사업, 평창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등과,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며 현재진행형인 제주 비자림로, 낙동강 대저대교 등이 이 제주2공항 사업과 판박이이다.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인 환경영향평가와 사후환경영향평가에서 멸종위기종이 단 한 종도 발견되지 않은 ‘양산 사송 택지개발지구’의 사례는 전형적 사례이다. 시민들의 문제제기로 진행한 공동조사결과 단 하루 만에 법정보호종이 6종이나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사후 조치는 더욱 기가 차다. ‘이동성이 강하니, 개발해도 영향은 미미하다’고 하고 중단된 개발사업을 아무런 조치 없이 바로 속개했다. 제주2공항의 영향평가서 초안의 대안도 동일하다.
이후 자연환경조사에 아무런 지식을 가지지 않은 기자가 근처 계곡을 조사해서 우리나라 학계에 그간 보고되지 않은 지구상 유일한 신종 도롱뇽을 발견했음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단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신종이니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도 없다. 살아있는 공룡이 발견돼도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도롱뇽이 발견된 계곡의 바로 아래부터는 이미 공사로 파헤쳐져 있으니 과거에 그곳에 살았었는지는 물증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영향평가서가 거짓으로 작성되어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이다.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전문가도 아닌 지역 주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슈화 하고, 전국적으로 언론보도가 있어야만 극히 일부 영향평가의 문제가 발견될 뿐이다. 제주2공항 또한 이런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그냥 넘어갔을 일이다.
제주는 제주도민 모두가 자랑하듯 우리나라에 단 한 곳밖에 없는 천혜자연의 섬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랫동안 그곳만의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화가 있다. 곶자왈의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기 전, 기회가 되어 들어갔던 조사는 당시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지역을 봐 왔다는 나 자신에게 겸손을 안겨주었던 숲이다. 신비의 숲이었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제주가 그 가치를 확인도 하지 못한 채 곳곳이 파헤쳐지고 스러져 가고 있다. 최소한 확인이라도 하고 제대로 된 평가라도 받아야 하는데, 법은 그렇지 않다.
지역주민에게는 그렇게나 흔하게 보여주는 송골매나 매, 두견, 맹꽁이 등 다양한 멸종위기종들이 유독 ‘전문가’에게만 보이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전문가가 장님이, 벙어리가 되도록 만드는, 법을 어겨 범법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정부가 만든 이 잘못된 법에 기인한다.
환경부는 이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서를 뻔히 알면서도 형식적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아마도 이번 겨울철새 조사가 끝나면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전과 같이 이렇게 담길 것이다.
“멸종위기종이 여럿 발견되었으나, 새들은 이동성이 강하니 공항이 만들어지면 멀리 이동해서 잘 살 것이다. 혹시나 충돌이 있을 수 있으니 공포탄을 쏴 열심히 쫓을 것이다”
이상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 수많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통해 개발된 제주의 자연은 정말 이상이 없나? 환경부장관은 이 물음에 먼저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환경영향평가의 전문가 논리대로라면 그 어떠한 개발에도 동물은 이동해서 다른 데 가서 잘 살고, 식물은 옮겨주면 되니 나빠지지는 않아야 되니 말이다. 환경부는 왜 멸종위기야생생물이란 것을 굳이 지정해서 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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