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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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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옛 동지' 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정년을 2개월여 앞두고 한진중공업을 향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옛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사회 노동자의 열악한 삶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복직에 대한 생각을 묻는 편지를 썼다. (기사 아래 편지 전문)

김 위원의 편지는 20일 열린 '김진숙 복직을 촉구하는 각계각층 원로선언' 기자회견을 앞두고 공개됐다.

김 위원은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에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 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라며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요. 세월이었을까요"라고 적었다.

김 위원은 "배수진조차 없었던 노동의 자리, 기름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가 최후의 보루였던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 전 지났습니다"라며 "노동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라고 썼다.

김 위원은 이어 특성화고 실습생과 택배노동자의 산재 사망, 대우버스와 아시아나케이오 등에서 일어난 정리해고를 언급한 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서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라고 물었다.

김 위원은 또 "그저께는 세월호 유족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라며 "우린 언제까지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김 위원은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라며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라고 편지를 맺었다.

한편, 이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명진 스님 등 137명의 원로 인사는 전태일다리에서 김 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1986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의 어용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회사에서 해고된 김 위원이 "그 뒤로 35년, 고통당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벗이 되어 함께 울고 웃으며 어깨"를 걸고 살아왔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사회는 김진숙에게 빚을 졌다"며 "공돌이, 공순이로 천대받던 노동자의 삶이 개선되고 노동조합이 시민권을 얻고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해고자 김진숙은 자기 역할 그 이상을 했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이제 사회가 나서야 한다"며 "김진숙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해고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김진숙이 단 하루라도 복직이 돼서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회사에) 걸어 나오게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김진숙의 복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요청했다.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을 향해서도 김진숙 복직 결정을 촉구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진 걸까요.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요. 세월이었을까요.

배수진조차 없었던 노동의 자리, 기름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가 최후의 보루였던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 전 지났습니다.

노동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

실습생이라는 노동자의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아이들이 죽고, 하루 스무 시간의

노동 끝에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카톡을 유언으로 남긴 택배 노동자가 죽고,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고, 대우버스 노동자가 짤리고, 아시아나

케이오, 현중하청 노동자들이 짤리고, 짤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년째 거리에 있습니다.

연애편지 한 통 써보지 못하고 저의 20대는 갔고, 대공분실에서, 경찰서 강력계에서,

감옥의 징벌방에서, 짓이겨진 몸뚱아리를 붙잡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청춘이 가고,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서,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의

추모사를 쓰며 세월이 다 갔습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

그저께는 세월호 유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

2020. 10. 20.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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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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