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앞에 현실로 닥쳐왔다. 역대 최장의 54일 장마는 선발대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역대 최악의 한파 또는 겨울이 실종된 역대 가장 따뜻한 겨울, 역대 최악의 가뭄, 역대 최악의 태풍 등등 기록을 경신하는 무수한 기상 이변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는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를 줄여야 파국을 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사태도 성장과 개발이라는 산업화 패러다임 아래 국가와 기업이 생태계를 마구잡이로 파괴한 결과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금 진행 중이다. 코로나가 수류탄 한 개라면 기후위기는 핵폭탄에 비견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은 이미 다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에너지 소비를 혁명적으로 줄이고 햇빛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에너지전환 방책도 이미 실행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특히 한국 언론들에게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어보인다는 데 있다. 결국 열쇠는 시민에게 있다. 시민들이 정치와 경제, 언론을 바꿔야 다음 세대가 누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농업먹거리모임과 <프레시안>은 지금 무엇보다도 화급한 기후위기와 식량문제를 성찰해보는 연재를 기획했다. 이상기후는 곧바로 식량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농업 농민 문제를 성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가장 긴급을 요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식량안보론 / 윤병선(건국대 교수)
2. 기후위기, 왜 농업-먹거리의 전환이 필요한가 / 이근행(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3. 농민, 기후위기 가해자에서 정치위기 해결자로 / 박승옥(햇빛학교 이사장)
4. 나의 먹거리 소비가 기후위기를 극복한다고 / 민정희(기후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5. 기후농정으로의 패러다임 대전환 / 송원규
6.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농민기본소득 / 박경철(충남연구원 연구원)
7. 지금처럼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 유룡(전주MBC 기자)
8.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 농민 / 김현우(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9. 유럽의회로부터 듣는다 / 유럽의회 농업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10. 토론회: 기후위기와 농업농민-소비자의 만남과 패러다임 대전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다시 상기함으로써, 기후위기와 농업농민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보자. 사람은 자유인으로 태어나 자유인으로 삶을 누리다 이 세상을 떠날 권리와 자유가 있다.
사람이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으로서 하늘이 준 천부인권을 갖고 태어난다는 생각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 존립,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키고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근대 국민국가 헌법은 이같은 주권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명시해 놓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또한 국가 권력은 오직 주권자인 국민만이 가지고 있고(헌법 제1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노예의 신분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삼성 재벌의 이재용과 충남 공주의 농민 이아무개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금수저 계급과 흙수저 계급으로 확연히 다르게 태어난다.
사실상 신분제 사회가 한국사회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인민의 앎과 함은 드넓은 광장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주권자 국민의 정치경제사회 직접 행동은 이 세상을 바꾸는 빛이자 핵심 동력이다. 현실의 신분제 계급사회를 깨부술 수 힘은 주권자 인민에게 있고 국가와 기업을 비꾸고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주체 또한 주권자 국민이다.
기후위기의 가해자 농업-농민
한국의 관행농 농업과 농민은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기후위기를 조장하는 범죄자다. 불편한 지적이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논밭에 뿌려지는 농약과 비료는 화석연료로 만든 온실가스 배출원 그 자체이다.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농약과 비료를 주고 수확하고 보관하고 운반하는 데 모두 화석연료가 투입된다. 곡물을 담는 포대도 볏짚으로 만든 가마니가 아니라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이다. 우리가 먹는 한 끼 식사의 90%가 사실은 석유고, 우리는 석유를 먹고 살이 찌는 석유 인간이다.
물론 이런 석유농업은 국가가 농민에게 강요한 것이었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IRRI)는 석유메이저의 자금 지원으로 농약과 비료가 반드시 필요한 쌀 품종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국제쌀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 바로 1970년대 유신 통일벼였다. 박정희는 ‘녹색혁명’을 부르짖으며 농민에게 강제로 유신 통일벼 재배를 강요했다. 박정희와 농식품부 관료들은 이같은 석유농업의 도입을 통해 오늘날 한국 농업을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거점으로 만든 주범들이다. 한국 농업과 농민은 이들에 의한 석유중독의 경로의존성으로 결국 석유 관행농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농업정책 아래서 지금까지 한국의 농민운동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농산물 수입개방의 피해자 신분을 강조하면서 주로 국가의 정책에 저항하는 아스팔트 농사에 집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 이제 이런 피해자 신분은 더 이상 면책특권이 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정치위기다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협상만 하고 있습니다.”
20살의 캐나다 대학생 안잘리 아파두라이가 2011년 11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유엔 기후회의에서 비정부기구를 대표해 한 말이다. 유엔 기후회의는 그녀가 태어나던 해인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처음 열렸다.
2019년 9월 23일 16살의 그레타 툰베리는 뉴욕의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주행위자는 국가와 기업이다. 한국 온실가스 배출의 90% 이상을 국가 공기업과 재벌 대기업이 저지르고 있다. 경제성장과 개발의 근대 산업화 체제 주역인 국가와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두 공동정범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가와 기업을 바꾸고 산업화 체제를 바꾸어야 할 현실정치가 오히려 기후위기를 심화시켜 왔을 뿐이라는 데 있다.
오늘날 한국의 대의정 극장정치를 연기하는 대부분의 그 잘나고 똑똑한 여의도 엘리트 정치인들이나 유럽과 미국의 기득권 대의정치 정치인들은 정확히 기후위기를 더욱더 악화시켜 왔던 뻔뻔한 기후 범죄자들이다. 엘리트 정치인들이 유엔 기후회의에서 끊임없이 회의와 협상만을 하고 있는 동안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기만 했다. 지난 9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관측소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이라고 알려진 400ppm을 훌쩍 넘어 411.29ppm을 기록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 오랫동안 약 280ppm이었던 수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서구와 한국의 엘리트 대의정 정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기후위기는 정확히 정치위기다. 기후위기는 결국 주권자 기후정치, 주권자 풀뿌리 민주주의 정치를 부른다
기후는 정치다. 그것도 지금까지의 정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기후생존 정치다. 대한민국 국민이 멸종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격렬한 신기후 체제 전환과 이행의 정치투쟁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거나 적응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하고 실천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다. 주권자들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기업의 성장 정치, 가면을 쓴 음습한 여의도 극장정치를 끝장내야만 하고 끝장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주권자에 의한, 주권자를 위한, 주권자의 풀뿌리 민주주의 기후정치, 그것이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다.
기후정치는 전시 체제와도 같은 전쟁 정치의 성격을 띄게 될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 호주, 유럽 등 근대 산업국가의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이 국가 안보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책을 수립하면서 상수로 전제하는 것은 기후위기-식량위기로 인한 전쟁이다. 기후 파시즘의 등장은 점점 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주권자들이 나서서 연대와 연합의 풀뿌리 촛불 민주주의 정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시급하고도 당면한 주권탈환의 정치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 해결자로서의 농업-농민
기후위기는 한국의 농업-농민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한국의 농민들은 농업의 시장개방에 맞서 농업농민 보호와 식량주권 투쟁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국제무역기구(WTO)와 국가에 맞선 투쟁에 앞장 서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능동의 기후농업, 새로운 기후 농민운동의 개척자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벼락보다도 더 센 충격과 발상의 전환을 강요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피해자-가해자 구도에 갇혀 논쟁이나 하고 있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는 기후위기의 적응과 극복은 전혀 모색될 수 없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농민은 사회와 국가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지금 농업농민은 우리 사회의 가장 천한 직업, 혼인조차 할 수 없는 가장 밑바닥 하층계급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데 기후농업은 농민들에게 다가오는 식량전쟁과 식량위기의 해결자이자 주체로서 소비자와 함께 새롭고 당당한 천하지대본의 신분을 탈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후농업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해서 대규모로 새롭게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최고의 직업으로서의 농업농민 위상을 재정립해 나갈 수 있게 만든다. 한마디로 가족농 소농 중심의 자연순환농업, 기후 재생농업은 기후 비상사태 시대 청장년 귀농귀촌의 새로운 시대 흐름으로 거대한 전환을 주도할 수 있다.
정의로운 농업농민의 전환 사례: 영농형 햇빛발전
사람은 식량을 에너지로 생명을 이어간다. 곡물과 채소, 과일 등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1차에너지로서 우리 몸 안에서 불타 생명의 에너지로 바뀐다. 석유농업에서 온실가스 흡수의 유기농 지역순환농업으로의 전환은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의 석유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과 똑같은 생명살림의 에너지 전환이기도 하다.
석유농업에서 기후농업으로의 정의로운 전환 가운데 하나가 영농형 햇빛발전이다. 2018년 12월 산자부와 농식품부, 국회는 농지법을 개정해 2019년 7월 1일부터 염해농지 햇빛발전에 대해 일시사용기간을 8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햇빛발전 전력 판매 기간이 20년이기 때문이다.
염해농지 기준인 염분 농도도 6.3에서 5.5로 낮추어 주었다. 햇빛발전 설치 가능 규모도 10만㎡(3만평) 이상, 농업인의 경우에도 5만㎡ 이상으로 대규모 사업자만 가능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문재인정부가 나서서 햇빛발전 떳다방 납시오 하고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대규모 농지를 훼손하는 농지법 개악과 투기를 조장하고 나선 것이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법개정으로 시작된 임야태양광의 숲파괴 사태와 어쩌면 그리 판박인지 모르겠다. 지금 서산, 당진 등 서해안 간척지 염해농지 대상지는 이른바 태양광 떳다방 업자들에 의해 햇빛발전 임대계약 작업(!?)이 거의 끝난 상태라고 한다.
오늘날 햇빛발전 사업은 부동산 떳다방과 똑같은 여의도 금융자본 중심의 한탕주의 떳다방 투기사업으로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 사업인 소형 주택보급사업과 미니태양광 사업 또한 텔레마케팅까지 동원한 한탕주의 먹튀식 떳다방 사업으로 편입되어 버린 지경이다. 논과 밭에 들어서고 있는 농촌형 태양광 또한 임야태양광과 함께 전국에서 극심한 민원과 주민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투기가 아닌 적정한 시장경제와 적정한 영리기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토지공개념과 똑같은 해바람물 공개념을 적극 도입할 시점에 이르러 있다.
영농형 햇빛발전소는 이같은 해바람물 공개념에 부합하는 농민 주체의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사업이 될 수 있다. 농민이 농사꾼으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기후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에너지절약과 에너지전환 선도자로서의 정체성도 갖는 사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농형 유기농 햇빛발전소는 ① 반드시 유기농 영농의 주기적 확인 검증을 전제로 ② 농지 훼손 없이 ③ 농지 전용과 지목 변경 없이, ④ 농민 1인당 100kW 이하로 제한해서 건립한다면, 주민반발과 농지훼손 문제를 일으키는 염해농지와 농촌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햇빛발전 사업이 될 수가 있다. 영농형에 새로운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20년 동안 농가 1호당 연간 1천만원 가량의 안정된 순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영농형 유기농햇빛발전소는 이처럼 농민에게 농민기본소득과 같은 고정 수익을 안겨줌과 동시에 청장년 귀농귀촌 촉진, 공익성을 띈 기후위기 대응의 청장년 일자리 창출, 식량안보 확보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영농형 햇빛발전소는 농지를 없애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후 농업농민 세상으로의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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