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뉴딜은 한 달 반 동안 온갖 비판을 불러일으키다가 '녹색 경기부양책'에 가깝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 같다. 어쩌면 '그린뉴딜이라는 비전을 훔쳐서 지옥으로 가는 아스팔트를 깔았다'는 분석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기후위기를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이고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청년의 입을 통해 나온 '언어를 빼앗겼다'는 판단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린뉴딜이라는 언어를 빼앗아 갔을까? 그들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짧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을 무시할 수 없다. 코로나19는 지구를 정지시켰고, 마스크가 양말이나 속옷처럼 일상적인 착용품이 되게 했으며, 이제 누구도 어디에서도 코로나 발생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무의식중에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새로운 정치와 경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그즈음 한국 정치인들의 눈에 들어온 한국의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대전환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외면되었고(실제로 실행하기를 결정하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인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큰 책임과 모험을 결심해야 가능한 일이므로) '탈탄소 사회 지향'이라는 적정한 수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린뉴딜을 향해 들려오는 비판에 '탈탄소' 사회 지향이라는 목표가 들어갔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정부 부처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며, 지금껏 진행해온 과정들과 좌초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이 없어 비판받는 것만큼 속도를 못 낼뿐, 애를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기후위기 대응·에너지 분야 공무원들이 실제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지점을 모르지는 않으니, 이들의 변명 아닌 변명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더불어 그린뉴딜 관련 주식이 살아나고, 오랫동안 환경을 생각해 왔으나 돈벌이는 되지 않아 기회를 보며 버티고 있었던 관련 기업들이 뭔가 변화할 것 같은 기대 속에서 전환을 꿈꾸고 있는 흥분된 모습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린뉴딜을 발표한 정부에는 긴급성이 느껴지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인지 그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업인지 판단이 힘든 사업들과 공항건설계획, 해외 석탄 화력발전 투자, 그리고 말뿐인, 아니 그것마저 공정한 전환으로 바꾸어 버린, 정의로운 전환까지 생각하면 울컥울컥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앗아간 그린뉴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고 입을 대야하는 이유는 예산이 실렸고, 제도가 만들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를 작동하게 하는 방식은 단순하게 말하면 제도와 예산이다. 지금 여당은 기후위기 대응과 그린뉴딜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180여석의 다수당이 발의하게 될 정책은 아마도 당내에서 합의한 수준이면 통과될 확률이 매우 클 것이다. 이후 시행령과 규칙이 제·개정되면 본격적으로 그린뉴딜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지금 발의 준비 중인 가칭 '그린뉴딜 기본법' 내용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두 번째는 예산인데, 지난주에 2021년 정부 예산안이 확정 발표되었다. 그린뉴딜의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나란히 예산을 홍보하면서 그린뉴딜 예산을 밝혔다. 환경부 소관 예산 및 기금안은 처음으로 10조가 넘는 11조777억 원 규모로, 지난해 대비 총지출 16% 증가해 편성되었고, 그 중 그린뉴딜 예산은 4조5000억 원으로 2021년 정부 전체 그린뉴딜 예산인 8조 원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환경부는 그린모빌리티 보급 확대, 스마트 그린도시 25개 지역 시행, 녹색융합클러스터 조성, 국토생태계 복원, 물 관리, 자원순환 전 과정 체계전환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74조의 예산이 그린뉴딜에 투자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굳이 유럽의 그린딜과 비교하지 않아도 기후위기 대응과 전환을 위한 비용으로는 매우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린뉴딜이 애매모호한 비전으로 사업프로젝트 중심의 계획으로 발표되었기에, 지역에서 온실가스 감축이나 지역 산업 시스템의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며, 지방정부의 국비 경쟁으로 치우칠 우려도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와 지역의 산업은 중앙정부와 다른 정책 방향을 가지기 힘들고, 부족한 예산을 국비를 통해 지원받아 지역 살림을 꾸려 나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제도적·재정적 권한은 지역에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이고 지역은 권한과 예산을 지역으로 가져오려고 자치·분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 6월 5일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가 기후비상선언을 했고, 7월 7일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63개 기초지자체는 "2050년에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탄소중립 시점을 발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기후위기 대응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시민사회에서는 이 선언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 같다. 그 와중에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지역주도형 뉴딜을 추진한다고 했고, 지자체와 소통을 강화하고 중앙과 지방간에 강력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대통령과 시·도지사가 함께하는 한국판 뉴딜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아마도 조만간 개최되지 않을까 싶다. 지역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지역주도의 정책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지방정부는 지역주민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면서 일을 한다. 중앙정부와 다르게 종합행정을 하는 곳이라 중앙정부의 이곳저곳 나뉘어 있는 사업들에 대해 통합 정책의 필요성 요구도 많다. 그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전환만이 아니라 교통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며 건물의 리모델링과 도시재생을 연결해야 하고, 지역 산업과 기업들이 살아야 우리 지역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기후 재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았듯이 현장에서 지역주민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알고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곳이 지방정부다. 지방정부는 역량이 없지 않다.
국회에서는 법을 바꾸겠다고 하고, 중앙정부 부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지방정부는 앞 다투어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외치고 중앙정부가 못하는 것들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과학자들이 말한 탄소 예산이 8년 정도 남은 시점에 이들의 노력이 너무나 더디고 미약하고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알라딘의 램프도 없고 마술 지팡이도 없다. 그저 한발 한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그린뉴딜이 아니라도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하고 탄소중립을 전면에 내세우면 법을 제·개정하고 이렇게 급박하게 예산을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린뉴딜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이유가 있다.
시민사회는 여전히 목표에 집착하고 있다. 목표는 중요하다. 어떤 길로 갈 것인지 명확하게 보고 갈 수 있으니. 아마도 정부가 어떤 목표를 수립해야 되는지 몰라서 선언하지 않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17개 광역시도지사는 명확하게 목표를 정했다. 2050 탄소중립 실현! 이제 지역에서 그들과 무엇을 할지 어떻게 견인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지방정부의 속도가 같지는 않지만, 중앙정부보다 훨씬 저력 있게 기후위기 대응을 추진하고 있는 지방정부가 있고, 그곳의 시민이 있다.
진짜 정치는, 진짜 그린뉴딜은 지역에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힘으로 가능하다. 어떤 정책이 처음의 상황과 다르게 펼쳐질 때 우리는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부터 지역에서 제도와 예산으로 디테일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 연구활동가들이 말하는 보텀-업의 정치를 정말로 바닥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정권과 상관없이 연속성을 가지고 진행될 것이며, 굳건한 전환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가장 긴급하고 가장 혁명적인 시스템 전환을 이제부터 지역에서 시작해야 한다.
*첫 문단의 첫 문장은 이유진의 '차라리 그린뉴딜이라고 하지 말지'를, 두 번째 문장은 장윤석의 '코로나와 그린뉴딜'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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