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바'는 성경의 여러 부분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사사 사무엘이 이방 신을 섬기던 백성들을 미스바 광장에 모아놓고 회개를 촉구해 멸망할 뻔했던 민족을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구해냈던 장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의 위기를 두고 위해 기도할 때 미스바의 이름을 붙이곤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교회의 위기를 두고 미스바 성회를 열어야 할 때다.
많은 목사들이 "차별금지법(평등법)이 통과되면 교회와 나라에 위기가 닥친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성경 관련 사이트에서 '차별'을 검색하면, 새 번역 기준으로 차별에 반대하는 12개의 구절이 나온다. 단순 검색만 해도 차별을 반대하는 구절이 (우회적 표현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구절보다 많다. 여기에 맥락 상 평등을 지지하는 구절까지 더하면 성서는 압도적으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지지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개신교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차별하자'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보일까?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의 역사
일부 개신교인들이 조직적으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교수(에스더기도운동 대표)는 강의안 '동성애 합법화 저지의 역사'에서 2007년 10월 법무부가 입안했던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기 위해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를 위한 국민연합'을 출범하고 민원과 서명운동, 1인 시위, 기자회견, 시민궐기대회, 국민대회 등을 벌인 결과 법무부의 상정 포기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2017년 2월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 주최로 백석대학교에서 열린 '기독교 동성애 대책 아카데미' 자료집 153쪽)
그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동성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교회나 학교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거나 죄라고 언급할 경우, 최고 2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인권위원회 초안에 포함되어 있던 시정명령권과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모두 법안에서 빠져 있는 상태였다. 고(故) 노회찬 의원 등 10인이 위의 내용을 보완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2008년 5월,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결국 모두 폐기되었다.
에스더기도운동은 북한선교, 이슬람권선교, 이스라엘선교, 인터넷선교, 다음세대성결운동에 중점을 둔 선교단체로 2007년 1월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가졌던 '에스더 단식구국성회'를 기점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기도운동을 중심으로 통일한국, 북한인권 등을 주제로 삼아 두각을 나타냈다. 각종 기도모임과 어린이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저스 아미(Jesus Army)캠프 등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통일운동에 대한 우파적 시각을 교육하는 한편 인적 자원을 확보했으며 인터넷/방송/미디어 역량을 키우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형성한 네트워크는 차별금지법 및 성소수자 반대 운동을 벌이는 데 핵심적인 소통라인이 되었다. 2018년 <한겨레> 기획보도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는 에스더기도운동의 이런 활동을 비판적으로 다룬 기획이었다.
2010년 법무부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가 재차 입안을 시도했으나 역시 이들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되었다. 이때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나라사랑학부모회', 바른교육교수연합',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이하 바성연)' 등의 단체가 생겼다.
바성연은 '일부일처제의 결혼 내의 성(性) 만을 허용한다', '동성애, 근친상간, 수간 등의 왜곡된 성행위를 반대한다', '혼전순결을 지지하고, 낙태와 음란물 제작·배포를 반대한다' 등의 기치를 내걸고 성소수자 인권 관련 입법, 인권조례, 교과서 및 성교육 교재,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성명, 민원, 시위 등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위의 기치에서 볼 수 있듯 바성연은 인간의 성에 대해 극도로 순결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동성애 관련 내용은 물론 성기, 체위, 콘돔 등 피임법, 성적 자기결정권 등 일반적인 성교육 일체가 불필요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바성연 대표와 K교수는 동성애의 유전적·선천적 요소를 부정하고 후천적 성적 타락과 음란의 결과라고 강조하며 '건전한 성윤리 의식'의 확립을 통해 동성애 확산을 막고 기독교 신앙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기존 교회의 성적 보수성향과 맞물려 매우 강력한 확산성을 가지고 퍼져나갔다.
2011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 10명, 2012년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차별금지법도 각기 국회임기만료를 넘기면서 폐기되고 2013년에는 UN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힘입어 김한길, 최원식 의원 대표 발의로 66명의 국회의원이 대거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때도 에스더기도운동은 발의 의원들의 명단을 4대 일간지에 전면광고로 공개하면서 반대 의견을 펼쳤다. 이후 입법예고 기간 동안 10만 건에 달하는 반대의견을 제출해 결국 발의가 철회되었다.
그 해 '동성애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동성애에 대한 비밀' - 동성애자의 양심고백'(김정현, 가명)'이라는 글이 일간지에 전면광고로 실렸고 만화로도 제작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게이들의 하위문화를 자극적인 묘사로 폭로한 위의 내용은 Y원장과 K약사 등의 강의 및 활동으로 강력하게 확대·재생산되었다.
2013년의 입법시도가 무산된 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이 제안되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기까지 7년간 국회는 단 한 번도 차별금지법을 논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SNS에서는 주기적으로 '차별금지법이 입법예고 되었다'거나 '법안이 통과될 위기다'라는 루머가 떠돌았고, 각 지자체의 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 성평등조례 등의 제정이 차례차례 무산되거나 철회되면서 반(反)동성애운동 진영이 큰 세력을 획득해 나갔다.
주요 교단들의 합류
2016년 12월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이하 한동협)가 출범한 이후로는 이들의 주장이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 번져 나갔다. 이에 따라 2017년 7월에는 한국교회교단장회의(21개 교단)가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1면에 '한국교회는 헌법개정을 통한 동성결혼과 동성애의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싣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동성애대책협의회가 주최한 '기독교 동성애 대책 아카데미' 자료집(2017)을 보면 이들의 생각이 정치적·이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목사는 "반기독교 세력의 배후에는 네오맑시즘 사상이 있습니다. 네오맑시즘이란 무신론적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을 결합하여 만든 사상입니다. 그런데 네오맑시즘이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위 자료집 5쪽) 이러한 문제의식은 K장로(전 법무부 장관, 전 국정원장)의 글 '동성애 운동의 시작과 결말'에서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난다.(위 자료집 47쪽)
K장로는 동성애의 사상적 배경으로 성혁명 성정치,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다양성), 니체주의, 극단적 페미니즘, 젠더 이데올로기, 네오막시즘 등을 꼽는다. 또 프랑스 68혁명과 스톤월 항쟁 이후 동성애자인권운동이 도를 넘어 동성애 독재, 동성애 파쇼, 게이마피아의 면모를 띠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법, 차별금지법, 인권보도준칙, 학생인권조례, 지자체 인권보호 및 증진조례, 성교육센터, 여성가족부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정책 등을 모두 동성애 운동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혐의가 선전선동의 형태를 띠고 SNS에 퍼져 나갈 때는 명백한 거짓이나 사실의 확대, 정보의 왜곡이 동반되어 진보 진영 일반에 대한 정치적·이념적 공격으로 기능해 왔다.
한편 한동협 출범을 기점으로 각 주요교단의 총회에서는 웃지 못할 결의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동성애자 및 옹호자의 축출은 물론 요가와 마술을 금지하고 여성 목사 안수 반대를 재확인하며, 이혼 후 재혼은 간음이라는 결정도 나왔다. 고신, 기감, 기성, 기침, 백석, 통합, 합동, 합신 등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회가 기장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에 대한 이단 결의를 채택했고 주요 교단 총회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2019년에는 거의 모든 교단에서 동성애대책위원회 설치, 동성애자 지지자·퀴어축제 참가자 중징계 및 퇴출 등의 헌의안이 경쟁적으로 제출되었으며 김근주 교수, 김대옥 목사, 청어람, <뉴스앤조이> 등 성소수자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 온 개인 및 단체에 대해 이단 및 이단성 조사, 교류금지 등을 결의했다. 2016년부터 한국교회 주류 교단에서 반동성애 선전은 해를 거듭할수록 거칠 것 없어졌다. 이전에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지금은 성소수자 일반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반동성애 입장을 밝히지 않은 개신교단은 성공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교리는 정말로 차별을 지지하는가?
지난 6월 24일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기본법) 제정에 대한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리는 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감리회 교리 64단 사회신경(1930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기독교는 오래 차별과 박해를 받았던 종교이기 때문에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무엇 때문인지 교회의 역사를 잊고 교단의 본래적 정체성에 불합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말았다.
교회의 위기는 코로나19 이전에 당도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코로나 때문에 예배가 무너진다', '정부가 방역 핑계로 교회를 차별한다', '복음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등 큰 위기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진짜 위기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이미 당도해 있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8.15 집회를 강행해 감염 확산의 주범이 된 전광훈 목사와 극우 개신교 세력이 감염병과 여론의 심판대에 섰다. 이들은 반동성애·좌파척결을 기치로 모여들어 영향력을 갖게 된 강력한 우파 정치세력들 중 하나다. 이들의 독주를 방조하고 이용한 결과 교회는 신앙의 탈을 쓰고 힘을 동경해 온 치들에게, 세를 불리기 위해 성소수자를 이용해 왔던 치들에게 잠식당해 근본부터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제 전광훈 목사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차별금지법을 필요로 하게 생겼으니 아이러니하다.
그간 종교권력에게 반동성애는 이어령비어령(耳懸鈴鼻懸鈴) 갖다 붙여도 무기가 되는 만능키였다. 사람이 다치고 죽어도 차별을 근간으로 한 교권수호에 여념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남을 해하는' 죄가 무수히 쌓여왔다. 이러한 개신교 보수 우파의 폭주를 막을 가장 강력한 방법은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제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 통과가 두려울 법도 하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길 차별은 죄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야고보서 1장 15절)고도 하였으니, 그간 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 정죄와 혐오와 배제의 길을 걸어왔던 죄책을 고백하고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가 다 함께 사망 선고를 듣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미스바'에 모여 있다. 멈추고, 돌아보고, 말씀에 따라 다시 사랑과 환대와 포용의 길을 향해 방향을 잡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