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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쏘아올린 '스푸트니크' 백신, 사실은 '러시안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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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쏘아올린 '스푸트니크' 백신, 사실은 '러시안 룰렛'?

패권 전쟁으로 변질된 백신 개발...필리핀 등 일부 국가는 벌써 수용 의사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만 명, 사망자가 70만 명이 넘어선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젝트가, 돌연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패권전쟁 국면으로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원격 내각회의에서 “오늘 아침 세계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이 등록됐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3일 대선 직전까지 세계 최초의 백신 개발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보란 듯이 뺏은 것이다. 러시아제 백신은 국가가 양산이 가능한 백신으로 승인 등록한 최초의 백신이 됐다.

러시아제 백신 명칭도 냉전시대 소련의 인공위성의 이름을 딴 '스푸트니크 V'다. 1957년 당시 소련은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려 미국을 패권경쟁에서 패배했다는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백신을 8월말이나 9월 초에 의료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한 후 내년부터 외국에까지 시판하는 양산체제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가 11일 세계 최초 국가승인 코로나19 백신이라고 발표한 '스푸트니크V' 백신. ⓒAP=연합

임상 1단계 거쳤는데, "모든 필요한 테스트 통과"했다는 푸틴

푸틴 대통령은 "이 백신은 면역력을 안정적으로 생성한다"면서 "반복해서 말하겠다. 이 백신은 모든 필요한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두 딸 중 한 명에게도 이미 이 백신을 접종했다는 사실까지 공개하면서 백신의 안전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권고하는 국제적인 백신개발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은 백신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제 백신은 3단계 임상 중 1단계 임상만 거쳤다. 안전성과 효과 등을 최종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3단계 임상이 필수적이라는 의학계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다. 앞서 6월 말 중국군사의과학원과 생명공학기업 캔시노가 개발 중인 백신 후보물질을 중국 정부가 임상 3상 이전에 승인한 사례가 있지만, 중국군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승인이었다.

바이러스 대응체제를 연구하는 국제단체 '글로벌 바이러스 네트워크'의 콘스탄틴 추마코프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임상 3상을 거치지 않고는 안전하고 효과 있는 백신임을 보장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임상 3상의 결과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일반인들에게 백신을 접종한다는 것은 도박이며, '러시안 룰렛'이라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임상3상을 건너 뛴 백신을 건강한 젊은이들에게 접종할 경우 부작용이 심하지 않다고 해도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층 등 다양한 건강상태의 일반인들에게 접종할 경우 어떤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지, 더 나아가 과연 면역력 형성이나 면역력 지속력이 유의미하게 있는지 전혀 과학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장관은 즉각 ABC방송 인터뷰에서 “백신에 있어 중요한 것은 최초인지 아닌지가 아니다”면서 “중요한 것은 전 세계인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러시아의 '세계 최초 코로나19 백신' 발표의 의미를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FDA의 승인을 받는 대로 미국인에게 백신을 전달할 준비가 돼 있다. 현재 그 승인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강조해 임상 3상까지 완벽하게 거친 백신이 막바지 단계에 와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는 " '스푸트니크 V'라는 명칭에서 보듯, 푸틴은 백신 개발을 미국, 유럽, 중국 등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국가 위상을 높이려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러시아 보건부 산하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연구소에서 이뤄졌다. 이 백신은 영국의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함께 개발중인 백신과 비슷한 방식을 사용해 개발됐다.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아데노바이러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임상 1단계 결과를 발표했던 미국의 제약업체 모더나는 핵산(mRNA)을 이용한 방식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미 20개 국으로부터 10억 회분 이상의 백신을 공급해달라는 '사전 요청'을 받았으며, 5개 국과는 연간 5억 회분의 백신 생산 계약을 맺었다고 자랑했다. 두테르테 로드리고 필리핀 대통령은 11일 TV연설을 통해 "양산체제에 들어가면 백신을 무상 공급해주겠다는 러시아의 제안을 수용했다"면서 "나도 접종하겠다. 내가 백신을 접종하고 이상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WHO는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에 대해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엄격한 검토와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러시아제 백신 수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12일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러시아 백신의 안정성에 대한 기본적 데이터가 확보돼야 국내 도입 및 접종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1총괄조정관은 “안전성에 대한 자료가 확보되면 질병관리본부, 식약처와 함께 검토해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백신 개발 발표 속도전'에서 보듯 백신 개발 자체가 '희망 고문'일 뿐, 정치와 머니게임에 오염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 WHO에 보고된 적이 없는 신종 변이 3종이 확인되고, 지난 5일 기준으로 WHO가 운영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GISAID)에만 7만8810건이 등록돼 있는 등 변이가 심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다양한 변종에 대해 동일한 면역력 형성이나 지속력 등이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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