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시대의 건강불평등,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역별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격차가 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이런 격차가 소득계층별로도 뚜렷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서울·경기·인천을 포함하는 수도권의 건강수명 및 기대수명은 비수도권의 그것과 차이가 있었는데, 수도권은 비수도권보다 건강수명은 2.6세, 기대수명은 1.1세 더 길었다.
뿐만 아니라 기대수명이 가장 긴 10개 시·군·구, 건강수명이 가장 긴 10개 시·군·구는 모두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속한 수도권 지역이었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모두 가장 긴 지역은 서울이었으며, 필자가 거주하는 경상남도는 건강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짧았고, 기대수명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짧은 지역이었다. 이런 격차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근원적 해법을 최대한 강구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때다.
거의 '재앙 수준'인 서부경남의 건강 및 의료이용
경상남도는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으로 본 건강 수준이 매우 좋지 않은 지역이다. 건강 격차는 시·도 간에도 발생할 수 있지만 시·도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 부산의 동부산과 서부산 간 건강 격차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상남도도 예외는 아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경상남도는 평균적인 건강 수준이 전국에서 가장 좋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특히 서부경남은 경상남도 내에서도 건강 수준과 의료 이용의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는 경우가 있지만, 서부경남은 일반적으로 진주시, 사천시, 남해군, 하동군, 산청군, 거창군, 함양군, 합천군의 8개 시·군을 의미한다. 올해 종료된 '경상남도 보건의료체계 진단 연구'에 의하면 서부경남은 경상남도 내에서도 입원 진료, 응급 및 외상 진료, 심·뇌혈관질환 진료, 모자 의료 등 필수 의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 합천군, 산청군, 하동군은 응급 의료와 분만, 소아청소년과, 외과 의료의 영역에서 모두 의료 취약지로 분류되고 있다. 산청군은 2018년 현재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0.12개로 전국에서 가장 적다. 그리고 서부경남 8개 시·군 중 진주시를 제외하고는 종합병원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 이와 함께 입원 사망비와 중증도 보정 응급 진료 및 외상 진료 사망비, 심·뇌혈관질환 중증도 보정 사망비, 치료 가능 사망률, 출생 전·후기 사망률(임신 28주 이상 태아 및 생후 7일 미만 사망률)의 지표에서도 서부경남 지역은 경상남도 내에서 가장 열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들은 건강수명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건강수명이 가장 짧은 10개 시·군·구 중 서부경남의 하동군, 남해군, 함양군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중 하동군은 전국에서 건강수명이 가장 짧은 지역으로 보고되었다. 그야말로 건강과 의료이용의 측면에서 서부경남의 상황은 거의 재앙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수 지사의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구축 전략
2018년 취임한 김경수 지사는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구축을 통해 경상남도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경상남도는 단일 시·도 내에 국립대병원 3개소가 있는 유일한 지역인데, 경상대학교 병원, 창원 경상대학교 병원, 양산 부산대 병원이 각각 서부경남, 중부경남, 동부경남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권역별 통합의료벨트는 경상남도의 세 개 권역에 분포되어 있는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각 권역 내의 공공병원 및 민간병원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하여 각 권역 내에서 중증 응급 진료, 모자 의료 등의 필수 보건 의료를 완결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경상남도의 서부, 중부, 동부 간 필수 의료 이용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지역 간의 건강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전략의 궁극적 목표이다. 2018년 8월,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구축 계획은 '경남 도정 4개년 계획'에 공식적으로 포함돼 발표되었다. 이 계획은 이후 보건복지부가 2018년 11월 11일 발표한 '공공의료 발전 종합대책', 2019년 10월 1일 발표한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 대책'에 의해 더욱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이 두 가지 대책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국정과제 중 45번 과제였던 '의료 공공성 확보 및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 제공'을 구체화한 중장기 공공보건의료 강화 정책이었다. 이 45번 과제는 100대 국정과제의 5대 국정목표 중의 하나인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실현하는 5가지 전략 중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전략에 속하는 과제였다.
이런 맥락에서 이 과제의 목표 중의 하나가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였다는 것은 '모두가 누리는' 전략을 구현하는 핵심 방향이 '격차 해소'라는 점을 암시한다. 따라서 2018년과 2019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했던 두 정책의 중심 내용은 '격차 해소'이어야 했고, 실제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대책'의 비전은 '필수 의료의 지역 격차 없는 포용국가 실현'이었으며,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 대책'의 핵심 목표는 '필수 의료 분야의 건강 격차 완화'였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45번 국정과제와 보건복지부의 중장기 공공보건의료 강화 정책은 '격차 해소'라는 주제로 연결돼 있다. 경상남도의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역시 지역 간 필수 의료 이용 및 건강 격차의 해소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두 대책에서 제시한 핵심 정책 수단은 '책임의료기관'인데, 전국을 17개 시·도와 70개 중진료권으로 구분하여 권역 단위인 시·도에는 권역책임의료기관을, 중진료권 단위에는 지역책임의료기관을 지정·육성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필수 의료를 완결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간 필수 의료 및 건강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상남도의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전략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서부경남 공공병원, 김경수 지사의 공약과 7년 만의 기회
보건복지부는 책임의료기관의 지정·육성을 위해 공공종합병원도 없고 법인격의 역량 있는 민간병원도 없는 9개 중진료권에 공공병원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9개 중진료권 중에는 서부경남의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진료권과 합천·함양·거창 진료권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현재 합천·함양·거창 진료권은 기존의 거창적십자병원을 신축 이전한 후 거창적십자병원을 지역책임 의료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논의 중에 있다.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진료권은 보건복지부가 공공종합병원이 없고 법인격의 역량 있는 민간병원도 없는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 진료권은 적어도 2013년 2월까지는 103년의 역사를 가진 진주의료원이 있었던 곳이다. 2013년 2월 26일 홍준표 당시 경남 도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그해 9월 25일 청산 종결 등기를 완료하기 전까지 진주의료원은 공과에도 불구하고 서부경남의 유일한 지방의료원으로서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안전망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진주의료원은 민간병원이 돈 안 된다는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던 공익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할 정도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공공부문의 2차 의료기관이었다. 진주의료원은 경상남도의 중부와 동부를 책임지는 마산의료원과 함께 서부경남의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지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으로서 명백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제시돼 있듯이 공공보건의료가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이라 할 때, 그리고 '공공보건의료의 제공을 주요한 목적으로 설립·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을 공공보건의료기관이라고 정의할 때, 진주의료원은 그 자체로 지역적·계층적·분야별 의료이용 및 건강 격차를 제거 또는 완화하는 정책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권한 없는 자의 비민주적 방식에 의한 위법한 의사결정으로 공공보건의료의 지역 간 격차와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 및 건강 격차를 완화할 정책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지역적 차원을 넘어서 전국적 차원의 폐업 반대 투쟁을 촉발했다. 급기야 국회의 국정조사까지 시행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야말로 공공의료가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의제가 되는 사건이었고, 공공의료 강화와 관련된 법 개정 등 제도적 변화가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후엔 경상남도 내에서도 공공의료는 생명력을 가진 정치·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후보 시절 서부경남의 공공병원 설립을 공약했고, 실제로 취임 이후에는 도정의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보건복지부가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진료권을 공공병원 신축 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7년 전 폐업된 진주의료원이 진주시를 포함한 서부경남 5개 시·군의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또 지역 간,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과 건강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 수단이 생길 절호의 기회가 7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격차 해소' 진짜 이루려면, '의사결정 권력의 격차' 해소해야!
격차는 왜 발생하는 것인가? 근본적으로 격차는 '권력의 불평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도지사가 일부 관료집단과 지방의원들을 동원해 혈세로 설립한 103년이나 된 공공병원을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강제 폐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민사회를 권력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진주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취약계층과 그 가족들을 삶과 건강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진주의료원 폐업의 영향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부경남의 대부분 지역이 소멸의 위험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지역이 된 것도, 그 지역주민들이 오랜 기간 의료이용과 건강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킬 만한 권력과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부경남 지역주민들의 의료이용과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병원의 설립 및 관련 정책 방안을 만드는 이상적인 방향은 권력이 없어서 고통받았던 당사자들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세우는 것, 즉 서부경남 지역주민들이 의사결정 권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경상남도는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진료권의 공공병원 신축을 포함한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경상남도는 올해 1월부터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다.
공공의료 확충 관련 의사결정의 공론화 과정에서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에 거주하는 도민들의 신청을 받았다. 신청한 사람들 중에서 100명을 성·연령 비율을 고려해 무작위로 추출한 후 도민 참여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의 학습과 숙의 및 토론을 통해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 방안들을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7월 21일 정책 권고안의 형태로 김경수 지사에게 전달되었다.
이 공론화 과정은 서부경남 지역의 고질적인 의료 취약성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도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결정된 내용 중에는 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진료권 공공병원 신축 여부도 포함되었는데, 의사결정에 참여한 도민의 95.6%가 공공병원 신축을 지지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의사결정이었다. 향후 경상남도는 이런 공론화의 결과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실행해 나갈 예정이다.
그리고 서부경남 공공의료 확충방안은 경상남도의 권역별 통합의료벨트 전략에서 서부권역 필수의료 공급의 완결성을 높임으로써 의료이용 및 건강 격차의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경상남도에서 이번에 시행한 공론화 과정은 소득계층 및 지역 간의 의료이용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의사결정 권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수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이다.
그러므로 서부경남 공공병원 신축을 포함한 공공의료 확충 방안은 의사결정 권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지역 간, 소득계층 간 의료 이용 및 건강 격차의 해소 방안이라는 점에서 '격차 해소' 그 자체이다. 경상남도는 향후 정책 권고안을 실현하는 과정도 시민사회와 함께 공동 추진단을 구성해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책의 수립·집행·평가의 모든 영역에서 의사결정 권력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지역 간, 그리고 소득계층 간의 의료이용과 건강의 격차를 해소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경상남도의 사례가 잘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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