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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은 기업에선, 반드시 다음 노동자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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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죽은 기업에선, 반드시 다음 노동자가 죽는다

[박병일의 Flash Talk]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

2015년 8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20대 직원이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어처구니없게도 2016년 구의역에서 동일한 사고가 재발되었다. 2018년 12월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는 야간근무를 하던 중 연료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숨을 거뒀다. 2020년 2월에는 안전 그물망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강풍 속 트러스트 작업을 강행하다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불과 석 달 뒤 5월에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파쇄기를 살피던 한 청년이 중심을 잃고 파쇄기 쪽으로 넘어져 사망했다.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될 때마다 정부는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재범률은 무려 97%에 이른다. 즉, 사고가 일어난 기업에서 반복적으로 사고가 재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만2000여 명, 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100만여 명에 이른다. 이 중 사업주가 구속된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했고, 대부분 약식기소에 의해 평균 400여만 원의 벌금형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선진국에 먼저 진입한 다른 국가들의 사례는 이와 상반된다.

영국은 2007년 노동자·시민의 사망사고가 일어날 경우 기업 및 정부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일벌백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의 매출과 자산을 넘어서는 강력한 처벌이 이뤄졌다. 2011년 '이튼 앤 코츠월드 홀딩'이란 회사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나자 385만 파운드(약 70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이 금액은 기업 연 매출액의 250%에 해당했다. 산재기업을 처벌한 결과, 2015년 기준 10만 명 당 치명적 산업재해 노동자 비율이 0.8명으로 줄었으며, 그 비율이 무려 5.3명인 한국과 크게 대비된다. 기업살인법 제정 이후 영국은 스웨덴(0.7명)과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가장 산재발생 비율이 낮은 국가가 됐다.(☞관련 기사 : <민플러스> 2018년 12월 18일 자 '중대재해·살인기업 처벌’ 외국은 다르다')

미국 역시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엄격한 사전 점검과 강력한 사후 처벌이라는 정책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2016년 6월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인 아진USA 공장 조립라인에서 현지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자, 미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앨라배마 주에 있는 해당 기업과 이 회사에 인력을 공급하는 파견업체 2곳에 대해 안전관리 의무이행 소홀 등을 사유로 총 256만 5000달러(약 30억 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2019년 한국을 방문한 미 산업안전보건청 전(前) 청장인 마이클스 박사는 "사업주만이 노동자가 안전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직장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당근'과 '채찍'을 제시해야 하며, 정부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주들에게 작업장 내 위험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응당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은 한국 정부와 의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는 영국의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과 유사한 산업살인법(Crimes(Industrial Manslaughter) Amendment Act)을 2003년에 제정하여 실행하고 있다. 이 법은 기업 종업원, 하청 노동자, 재택근무자, 견습생, 수습생, 자원봉사자 등을 망라해 피해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처벌 대상으로는 원청 및 하청기업, 정부 상급관리자 모두를 대상으로 두고 있다. 양형 시 개인에게는 25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까지 벌금을 부과하지만, 기업에는 125만 달러(약 14억 원)를 부과할 수 있고, 징역은 25년 형까지 가능하며, 두 가지 처벌을 동시에 선고할 수도 있다. 캐나다 역시 기업 형사책임법(Criminal liability of organizations)을 제정하여, 피해자가 부상을 입을 경우 사업주에게 최대 10년의 징역을, 사망의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고, 무한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참고로, 호주와 캐나다 모두 2015년 기준 10만 명 당 치명적 산업재해 노동자 비율이 1.7명으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이들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GDP규모 세계 12위라는 경제 위상에 걸맞지 않게, OECD 회원국 중 10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노동자 비율에 있어 터키(6.9명), 멕시코(8.2명)를 제외하고,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보수언론에서는 ''사업주 최소 징역3년' 산재처벌법 만들자는 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용부의 처벌 만능주의', '회초리만 답인가 우려' 등 반(反)인권적이면서 동시에 재해를 일으키는 기업에게 아부하는 비합리적인 기사만 쏟아내고 있다.

다행히 정의당이 21대 국회 법안으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와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기업 및 책임자 처벌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유사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폐기되기를 반복한 만큼, 21대 국회에서는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사망 등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의 발생이 이 땅에서 현저히 감소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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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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