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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섭씨와 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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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섭씨와 화씨

우리말에는 예전부터 쓰던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많다. 특히 한글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차용해서 사용하던 단어를 아직도 그대로 쓰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기하학(幾何學)이나 열반(涅槃) 등과 같은 단어들이다. 영문이나 범어로 된 단어들인데, 중국어로 발음하던 것을 그대로 한자화한 것이다. 기하학은 영어로 'geometry'를 말한다. 기하(幾何)는 중국식으로 ‘지허’ 쯤으로 발음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의미는 ‘도형 및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해야 한다. 기하라는 우리말 발음은 ‘지오메트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유래한 말을 그대로 차용하여 기하학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열반(涅槃)도 마찬가지로 범어인 ‘nirvana’를 중국식 발음으로 차용하여 쓴 것이다. 한자로 해탈(解脫)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열반과 해탈은 의미상 조금 다른 뜻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문적인 풀이는 스님들께 맡기고 여기서는 발음의 차용과 의미관계만 살펴보기로 한다.(예전에 어느 스님께 불교의 진언을 번역해서 하는 것과 원어로 하는 것, 한문으로 된 것, 한문으로 번역된 것 등의 차이를 물었다가 무지하게 욕을 먹은 경험이 있다. 돌아보면 그분의 말씀이 맞는 것이다. 따지지 말고 그냥 ‘수리수리마수리’ 해야지 그 의미는 따져 무엇하겠는가?)

우리가 흔히 기온을 말할 때 섭씨 몇 도라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섭씨 23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여름에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국에 있을 때는 화씨를 써서 처음에 엄청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그냥 한 가지로 통일했으면 좋겠는데, 나라마다 다르니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섭씨라는 말은 ‘물이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한 온도 체계’를 말한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섭씨온도라고 해야 한다. 이 체계를 고안한 사람은 스웨덴의 천문학자 ‘셀시우스’다. 그가 처음 이를 도입했을 때는 지금과는 반대로 물이 어는점을 100도, 끓는점을 0도로 정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온도 상승에 따라 수치가 내려가는 모순이 있어서 이듬해 린네라는 스웨덴의 학자가 지금처럼 바꾸어 일반화했다고 한다.(장진환, <신문 속 언어지식>) 이러한 온도 체계를 고안한 셀시우스를 중국인들은 ‘攝爾思(섭이사)’로 음역해서 불렀다. 그러니까 ‘섭씨’가 된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유래가 아닐 수 없다. 라틴어 표기 ‘Celsius’를 줄여서 단위기호는 ‘°C’라고 표기한다. 본의 아니게 셀시우스의 성이 ‘섭 씨’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는 섭씨(攝氏)라고 쓴다.

마찬가지로 화씨라는 말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다가왔다. 화씨(華氏)라고 한자로 표기하는데 이 역시 독일의 물리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에서 유래했다.(장진환, <신문 속 언어지식>) 화씨는 물이 어는점을 32도(섭씨 0도), 끓는점을 212도(섭씨 100도)로 하고 그 사이를 180등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섭씨보다 더 세분화한 것이다. 1724년에 독일에서 고안한 것이니 스웨덴에서 1742년에 고안한 섭씨보다는 시기적으로 조금 앞선다. 파렌하이트를 중국어로 음역할 때 ‘華倫海(화륜해)’라 한다. 그러므로 그는 ‘화 씨’가 되었다. 물론 기호로 표기할 때는 °F라고 쓰지만 음역할 때는 ‘화’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화씨’로 굳어졌다. 지금은 섭씨든 화씨든 상관없이 온도를 표기하는 체계가 되었지만 성씨도 아닌 것이 성씨인 것처럼 변하여 ‘셀시우스씨가 말하는 온도 체계, 혹은 파렌하이트 씨가 만든 온도 체계’라는 뜻으로 섭씨, 화씨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차문자라고 한다. 베토벤을 ‘배도봉’이라 하고, 커피를 ‘가배’라고 하였다. 다른 것들은 서서히 원음을 찾아가고 있는데, 셀시우스나 파렌하이트는 그냥 섭씨나 화씨가 더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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