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식천국 노회찬' 열세 번째 식당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부근의 한정식집 '호정(湖亭·마포대로14길 12-19)'이다. 골목 안쪽에 숨은 듯이 있어서 눈에 잘 안 띄지만, 1997년 문을 연 뒤 20여 년 동안 정관계·금융계 인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집이다. 정갈하고 신선한 음식으로 단골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어 이른 예약 없이는 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노회찬은 2012년부터 호정에 나타났다.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20대 국회 때는 자주 왔다고 한다. 이따금 주인장은 "예약 손님 중 의원님과 마주쳐서는 좀 서로 곤란한 분이 계시다"며 근처에 있는 별관으로 노회찬을 안내하기도 했다. 노회찬에 대한 배려였다. 이 집의 전통적인 고객들이 노동운동가 출신의 진보정치인과는 잘 매치가 안 되는 탓에 노회찬의 선택을 뜻밖으로 여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짐작건대, 노회찬이 정의당 원내대표로 당시 민주평화당과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당의 회합 장소의 하나로 호정을 고른 게 아닌가 싶다. 사정이야 어떻든, 호정의 음식은 금세 노회찬의 미각과 통했을 것이다. 노회찬은 맛집을 발견하면 집안의 '어른'처럼 보좌진들을 데리고 가 자랑하듯이 맛 경험을 시켜주곤 했다.
주인은 노회찬을 "신사"로 기억하고 있었다.
호정을 다시 찾은 것은 노회찬재단이 모처럼 회동하는 고문단 어른들의 점식 식사를 위해서. 재단 사무실에서 이동하기 쉬운 곳인데다, 연령대가 높은 분들에게 대접하기 좋은 음식이기에 재단 쪽에서 고른 듯했다.
7월 중순 노회찬 2주기 추모행사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고문단은 대부분 노회찬과 민주노동당(2000~2008) 시절을 함께 한 동지들이다. 요즘에는 웬만히 큰 행사나 집회가 아니면 한자리에서 보기 쉽지 않은 분들이다. 노회찬재단 고문단은 권영길(79·전 민노당 의원), 천영세(77·전 민노당 의원), 김혜경(75·빈민운동가) 등 민노당 대표를 지낸 원로를 비롯해 박순희(73·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 지도위원), 단병호(71·전 민노당 의원, 민주노총 위원장), 이수호(71·전 민주노총 위원장, 현 전태일재단 이사장), 최순영(67·전 민노당 의원) 등 '동지'들과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 이정미 전 대표 등 22인으로 구성돼 있다.
서로서로 동지이자 지인들이기도 한 이들은 허물없는 분위기에서 좋은 음식을 나누며 사전 시나리오도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무겁게. 재단에서 선물한 "멋쟁이 진보"를 상징하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기념 촬영도 했다.
기자는 가능한 한 기록만 했다. 이하, 호정의 정담(情談) 또는 정담(政談).
2.
우선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노회찬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당에서 먼 순서로 몇 분이 얘기하지." 천영세 전 의원이 가닥을 잡아주었다.
먼저 단병호 의원 이야기
단병호가 노회찬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 일은 2004년 총선 민노당 비례대표 후보를 정할 때였다. 성향이나 당내 지지기반이 비슷해 흔한 말로 ‘쫑이 나는' 상황이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지도위원 박순희는 노회찬의 부인 김지선이 천주교 영세를 받을 때 대모를 섰다. (노회찬의 어머니는 집안이 화합하려면 종교가 같아야 한다며 노회찬의 부친과 누나, 두 며느리를 가톨릭 세례를 받을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노회찬을 "영적인 사위"로 여겼다.
박순희는 그날 아내의 영세식에 참석한 노회찬에게도 종교를 가져볼 것을 권했다.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가 때로는 버팀목이 되어줄 때가 있다'고. 노회찬은 박순희가 떼쓰듯 언제 (영세) 할 거냐고 다그치자, "시간이 나면 공부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했던 것 같다. 결국 노회찬은 시간을 내지 않은 건지, 못 낸 건지 종교적 신앙을 갖지 않고 아내 곁을 떠났다.
김혜경은 1997년 국민승리21 여성위원장을 맡았을 때 정책기획위원장이던 노회찬을 처음 만났다. 당시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노회찬의 부인 김지선이었다. 김지선과는 1982년 난곡에서 처음 만났다.
교사운동(전교조)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합류한 이수호 이사장의 이야기.
3.
칠순의 노(老)운동가들이 간단한 회고에 이어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은 옛 민노당 시절을 추억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천영세 전 의원이 꺼낸 비화. 민노당 국회의원 10명(보좌진을 포함하면 수십 명이었지만)의 점심 회식비로 무려 370만 원을 지출한 '호화판' 회식 사건의 전말.
2007년 여름 '원내 투쟁'이라고 부른 의회 일정을 마치고 2주간 국회가 여름방학에 들어갈 때였다. 보수 여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외유나 가족 여행으로 휴가를 보내지만, 민노당 의원들은 사정이 달랐다. 휴가라고 해도 국회를 벗어나면 다시 당원으로 돌아가 전국의 파업 현장으로, 농민들의 농성장으로 지원 활동을 나가던 때였다. '원내 투쟁'에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장외 활동을 하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짧게라도 서울 밖으로 나가 콧바람이라도 쐬고 오자"는 쪽으로 중의가 모였는데, 뭘 먹으며 놀아야 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노회찬이 동료 의원실에 제안한 곳이 강화도 황복집이었다. 황복이 뭔지도 모르는 의원이 수두룩했다.
노동자들의 당이라고 하는 민노당 의원들이 어떻게 그렇게 호화판 회식을 할 수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에 들어온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10명. 권영길, 조승수 두 지역구 의원과 심상정, 단병호, 이영순, 천영세, 최순영, 강기갑, 현애자 그리고 노회찬까지 8명 비례대표 의원들의 한 달 월급은 180만 원(임기 마지막 1년은 50만 원이 올라서 230만 원)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월급은 약 840만 원. 그러나 민노당에서 소속 의원들의 세비는 모두 당 공동의 재원으로 간주되었다. 보좌진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1인에게 붙은 6명의 보좌진(4급~9급 공무원에 준한다) 월급은 4급 보좌관 490만 원에서부터 9급 비서 180만 원까지였다. 민노당 국회의원 봉급 180만 원은 9급 공무원에 준해 책정된 것이다. "뭘 좀 멕여가면서 부려 먹어라"는 푸념은 엄살만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날 난데없는 황복 회식비 370만 원 폭탄을 맞은 것은 천영세 의원실. 의원들의 단체 회식비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결국 원내대표인 천 의원실에서 카드를 긁었던 것.
모시는 의원이야 원내사령탑으로서 거금 한 번 폼 나게 '쏜' 것이 됐지만, 의원실 보좌진들은 아끼고 아껴둔 '복지비'가 한 번에 날아간 것이었다.
민노당 국회의원 봉급 이야기가 나오자 또 한 사람의 "맺힌 한"이 제풀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두 차례 지급됐던 민주화운동보상금(지원금) 못 받은 노동운동가 단병호 식구네 이야기.
4.
회식 이야기가 돌고 돌아 노회찬의 술 실력 이야기에 이르자, 화살이 권영길 전 의원에게로 돌아간다. 민주노동당에서 큰 술통으로 권영길을 빼놓을 수 없었다는데, 정작 두 사람의 술 실력을 가늠해볼 전설은 전해지지 않고 있었기에. 대표 술꾼 권영길과 또 한 명의 대표 술꾼 노회찬이 술로 일합을 겨루어 노선이든 인물이든 결정을 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있을 것도 같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는 소문조차 들어본 바 없는 사람과 나를 같은 저울에 달지 말라. 아무래도 그런 전략이시다.
천영세와 노회찬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옥상 삼겹살타운에서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장장 8시간 합을 겨룬 적이 있다고 한다. 결과는 무승부. 둘 다 맨정신으로 택시 타고 잘 헤어졌다나? 2차를 누가 먼저 가자고 했느냐는 추궁에 천 전 의원은 "기억에 없다"고 한다.
다시 권영길.
5.
이날 노회찬재단 쪽은 고문단에게 대구 지지자가 보낸 선글라스를 하나씩 선물했다. 노회찬재단이 추구하는 멋진 진보, 세련된 진보, 친숙한 진보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정의당 이정미 전 대표와 심상정 현 대표도 선글라스를 썼다. 누군가 농담조로 한마디 한다.
김형탁 사무총장이 짐짓 걱정 비슷한 걸 한다.
정의당 분들이 자리를 뜬 뒤 몇 분들이 조심스레 정의당 걱정을 했다.
6.
노회찬은 호정의 녹두빈대떡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집은 빈대떡을 녹두와 숙주나물만 가지고 빚는다. 덕산막걸리 한 잔에 고소한 녹두빈대떡 한 조각의 앙상블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칼국수는 어디 내놔도 명품으로 손색이 없다.
참석자들은 모두 호정이 처음이라고 한다. 노회찬이 정의당 원내대표 시절 주로 온 집이라고 하자, "우리하곤 안 오고 누구하고 온 거야?"라며 시샘하듯 묻고는 "그 사람 이런 집을 좋아했지. 어딜 가도 정감 있는 집을 골랐어".
호정의 주인 박귀임(61) 씨는 전주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전북 고창의 삼양사 사택에서 성장하고 결혼 생활도 했다고 한다. 부모님과 남편은 물론 50여 가구에 이른 다양한 사택 구성원들이 벌이는 생일, 승진, 회갑 등 각종 잔치에서 음식을 배웠다. 서울에 올라와 찻집을 하다가 시간이 비어 어느 유명 한식당 주방을 1년쯤 책임지다시피하면서 지금의 주요 손님들과 인연을 맺었다. 한 단골손님이 "왜 이런 좋은 솜씨를 가지고 자기 식당을 하지 않느냐"는 말에 호정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호정이 단골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신선로니 구절판이니 하는 판박이 음식을 사절하고, 집에서 먹는 정갈한 음식을 추구한 것.
박 씨는 지금도 주방에서 밑반찬부터 주요 요리를 모두 직접 한다. 음식을 미리 해두거나 묵히지 않고 예약 시간에 맞춰 바로 만든다.
박 씨는 성공비결로 단골손님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꼽는다. 시간이나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는 계층들이 애용하다 보니 높은 가격대임에도 호정은 불경기를 모른다. 성공비결을 캐기보다는 이 집의 단골 명단을 살펴보는 게 빠를 것 같아 몇 분 거명을 청했다. 김황식, 이낙연, 이현재, 윤증현, 이계안 등등. 대부분이 정관계, 경제계 인사들이다. 어떤 모임으로부터는 현금 500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음식으로 '귀인'을 대접한 결과는 어땠을까. 박 씨는 남편 없이 삼남매 시집장가를 보내면서 아파트를 한 채씩 사주었다. 호정 근처에 건물을 짓고 중간 가격대의 식당을 따로 내 큰 아들에게 맡겼다. 비싼 가격 때문에 호정의 음식을 즐기기 어려운 손님들을 위해 매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운영 중이라고 한다. 식재료를 직접 조달하는 농장이 경기도 양수리와 강원도 홍천 두 곳에 있다. 4인용 테이블 9개를 운영해 이런 성공스토리를 썼다.
노회찬이 있었다면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정치가 따로 있나?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성공해서 자기 가족을 건사하고 이웃에게 베풀고, 그러고도 여력이 있으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 그것이 정치가 아닌가'라고.
덧붙임.
노회찬 2주기 추모제가 7월 18일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서 있었다. 추모식에서 노회찬은 여러 형태로 호출되었다. 부인 김지선 여사는 "나는 노회찬을 추모하는 이런 자리에 오는 게 솔직히 싫다"고 했다. "2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노회찬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참담한 마음을 누가 모르랴. 권영길은 추도사에서 노회찬의 이름을 세 번씩 모두 아홉 번을 외쳤다. 하늘을 향해, 땅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노회찬! 노회찬! 노회찬!".
추모제의 마지막은 노회찬이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 <그날이 오면>을 제창하는 것이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사람들의 헌화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노래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래 이어졌다. 이날의 노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흘러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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