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주둔한 미군을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사실상 전 세계 미군의 재배치 계획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17일(미 동부 현지시간) 국방부 홈페이지에 공개한 '국가국방전략(NDS) 이행 1년의 성취' 제하 보고서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와 미북부사령부 등에서 '백지 상태의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주한미군사령부의 상급 제대다.
에스퍼 장관은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및 임무 재분배 작업이 현재 미 국방부의 역점 과제 중 하나라면서 "각각의 전투사령부가 작전 공간을 최적화하기 위해 기존 임무와 태세를 통합하고 축소하는 백지상태의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같은 '재검토'가 아프리카사령부, 유럽사령부, 미 중부 및 남부사령부 등에서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몇 달 내(in the coming months)"에는 인도태평양사령부 등에서도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이 자료에서 "미군은 (미국과) 거의 동급의 경쟁자인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뿐 아니라, 북한과 이란 등 불량국가의 공격적 행동을 억제해 왔다"며 북한을 또 한 번 '불량국가'(rogue state)로 칭하기도 했다. 이 표현이 담긴 문단의 소제목은 '불량 레짐들의 안정 저해 행동에 대한 대응(Responding to Destabilizing Activities of Rogue Regimes)'이었다.
에스퍼 장관의 '미군 재배치' 관련 언급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진행돼온 일종의 미군 구조조정 계획에서 이어진 원론적 수준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최근 WSJ 보도와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WSJ는 지난 17일 보도에서, 미 국방부와 합참의 전세계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역시 검토 대상이 됐다고 미군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WSJ는 백악관이 지난해 가을 중동·아프리카·유럽·아시아 등지에 주둔하고 미군의 철수를 위한 예비적 옵션을 제시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국방부의 재배치 검토의 배경은 이같은 백악관의 지시라고 분석했다.
WSJ는 특히 지난 3월에 이미 국방부가 한국을 포함한 일부 '옵션'에 대해 백악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에스퍼 장관이 '아프리카·유렵 등은 이미 검토가 진행중이고 아시아는 몇 달 내로 검토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내용과는 배치된다. WSJ는 백악관의 지시는 독일·한국과의 방위비분담금 흥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WSJ는 또 같은날 사설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독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국방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두어 달 전에 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병력 감축을 포함한 옵션들을 검토 중"이라면서 "그러나 동아시아의 화약고(한국)에서 부분적일지라도 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세계에 미국의 나약함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미 당국은 WSJ 보도에 대해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국 언론의 문의에 즉답을 피한 채 방위비분담금 증액 필요성만 재강조했다고 한다. 이날 <연합뉴스>는 미 국방부가 자신들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언론의 추측에 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전세계 군사 태세를 일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만 했다고 보도했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한국과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는 기대를 분명히해 왔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현재 한미가 협의하는 것은 없다"며 "미국에서 주한미군 얘기가 나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군 관계자는 "전혀 모르는 얘기"라면서 "보도 경위 등을 먼저 정확히 파악해 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외교부도 주한미군 규모는 방위비분담금 협상 이슈와는 무관하며 양국 간 전혀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기자 간담회에서 "방위비 협상 중에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논의된 바 없다"며 "한미안보협의회에서 '현재 규모로 유지한다'는 공약을 매년 확인하고 있다"고 했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는 WSJ 보도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인 애덤 스미스 의원(민주당)은 17일 '신민주네트워크(NDN)' 화상회의에서 "하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협력해 북한의 전쟁 개시를 막아 왔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스미스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매우 공격적이었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스미스 위원장은 "(주한미군은) 우리가 단순히 한국에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세계 평화와 안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미군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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