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가 끝났다. 국무총리, 국회의원, 시도지사, 교육감, 시민사회인사 등이 포함된 1,565명의 장례위원회가 주관한 서울특별시장(葬)이었다. 5일 동안 시청광장 분향소와 온라인 분향소에서 박 시장에 대한 추모와 애도가 이어졌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박 시장의 생애와 공적을 보도했고, 칼럼 필자들도 박 시장에 대한 애도로 지면을 채웠다. SNS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박 시장의 죽음 이전에, 4년 동안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있었다. 성추행 혐의에 대한 박 시장의 응답은 죽음이었다. 서울시와 한국사회의 응답은 박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공적-사회적 애도와 추모였다.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피해자의 호소는 서울특별시장(葬)으로 공적 추모의례가 과시될수록 언급되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가족에게 상처 주는 행위가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부재를 확인하는 남은 자들의 의례로서 장례는, 서울시장 박원순에 대한 공적-사회적 애도와 추모를 통해 성추행 혐의를 부정하는 국가적 의례가 되었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피해자에 대한 지지는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지난 5일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그 공적-사회적 애도와 추모 속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횡행하고 있다.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과 폭력의 문제는 망자에 대한 모욕이거나 박원순이라는 개인사의 과오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 누구도 고인에 대한 개인적 애도와 추모를 막지 않았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공적 의례를 통해 국가적으로 추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박원순은 시장으로서 폭력을 행사했고 목숨을 끊었다. 어떻게 공적-사회적 애도와 추모가 가능한가.
장례가 끝나자, 앞다투어 애도와 추모를 했던 이들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이제부터는' 피해자의 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장(葬)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때부터, 아니 피해자가 경찰 고소를 시작했을 때부터 피해자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폭력을 고발하고 바로잡기 위한 싸움은 경찰 고소와 57만 명이 모인 청와대 청원을 거쳐, 철저한 진상규명과 피해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한국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할지를 둘러싼 투쟁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는 인권운동을 해오며 그동안 숱한 죽음들과 함께 했다. 강제철거에 맞서던 철거민, 해고와 노조탄압, 괴롭힘에 맞서던 노동자,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지역주민, 세월호 희생자들, 여성혐오범죄의 희생자들까지. 우리의 인권운동은 이런 죽음들을 해석하고 남겨진 자들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실천해왔다. 그런데 박 시장의 죽음 앞에서 어떤 죽음은 진실을 덮고 은폐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남은 자들에겐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피해자의 호소와 진실을 덮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박 시장에 의한 성추행과 죽음이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우리는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피해자의 호소에 주목한다. 시장을 정점으로 하는 서울시의 완고한 위계와 그에 따른 폭력, 이에 대처할 역량도 권한도 부족한 노동자들의 상황은 숱한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 재임기간 동안 10여 명의 공무원이 목숨을 끊었으며, 그 중에는 언어폭력, 괴롭힘, 과로, 성희롱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공무원이 다수 있었다. 직장 내 성폭력이 벌어지는 일터에서 성폭력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성을 매개로, 누군가는 업무실적을 이유로, 누군가는 성격을 문제 삼아 괴롭힘과 폭력을 당한다. 시정 최고책임자의 비서이면서 여성이었고 공무원 노동자였던 피해자가 겪었을 폭력의 양상을 서울시라는 조직과 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2018년 미투 운동이 열어젖힌 연이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누군가에겐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처럼 보이겠지만, 우리는 희망을 본다. 박 시장에 대한 애도와 함께 시작된 2차 가해에 맞서, 수많은 이들이 피해자와 함께 할 것을 선언했다. 서울특별시장(葬)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은 순식간에 57만 명에 이르렀다. 박 시장에 대한 공적-사회적 애도와 추모가 크게 조직될수록, 다른 목소리들은 더 힘 있게 조직되었다. 이들과 함께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피해생존자 곁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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