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대응과 그린뉴딜 바람이 뜨거운 상황에 지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6월 5일 전국 기초지자체 226곳 중 지자체장이 부재중인 2곳을 제외한 224개와 제주시, 서귀포시를 포함한 226개 기초지자체가 기후위기비상선언을 했다. 참여한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선언문을 통해 지금이 기후위기비상상황임을 명확히 선포하고, 지구 평균온도가 1.5℃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감축을 실천할 것이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에너지자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 기초지자체가 동시에 조직적으로 기후비상선언을 한 것은 국제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대한민국 전체가 기후비상 상황임을 선포하게 되었다.
한 달 뒤인 7월 7일,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63개 기초지자체가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 발족식을 가졌다. 환경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발족한 실천연대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환경부와 함께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그 자리에서 환경부와 실천연대는 탄소중립의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한편 작년 10월 22일 지방정부 최초로 기후비상선언을 했던 충청남도는 6월 5일 탈석탄과 정의로운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지구는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충남형 그린뉴딜 정책'을 제안했다. 10개 과제와 50개 세부사업으로 구성된 충청남도의 그린뉴딜은 전국 석탄발전소의 50%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지만, 그런 특징으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원전하나 줄이기 등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에 앞장섰던 서울시는 서울시 기후행동포럼이 제안한 '2050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전략방안'을 토대로 탄소배출 제로도시를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7월 8일 '서울판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그린뉴딜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효율을 높임으로써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경제위기와 기후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최초로 탄소배출 제로라는 명확한 목표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으로 정책의 실행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여간 전국적으로 기후위기대응과 탄소배출 제로를 향한 지방정부의 의지는 충분히 표출되었고, 이제 우리에게는 '비상선언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부터 지방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해본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첫 번째 원칙은 기후위기 대응 최우선 원칙이다. 이제 지방정부의 모든 정책 우선순위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도시계획을 비롯한 모든 계획과 정책의 1순위가 되어야 한다. 개별 정책과 사업들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원칙에 맞게 통합하거나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특히 비상선언과 모순되는 개발·토건 사업은 즉시 멈추거나 수정해야 한다. 공항 건설계획이나 지역의 대단위 토목사업이 있다면 다시 점검하고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대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고,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2100년까지 1.5℃ 상승이 아니라 4℃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 지금은 지방정부가 질문할 시간이 아니라 행동할 시간이다.
두 번째 원칙은 반드시 지역의 의회와 시민, 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행정적인 권한으로만 기후위기대응을 할 수는 없다. 지방정부는 지구 평균온도 1.5℃ 상승 억제를 위한 넷제로 목표와 달성 시기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하고, 온실가스감축을 위한 세부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 지역의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 감축 목표 달성을 어떻게 실행할지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합의된 내용은 의회와 논의하여 조례를 통해 제도화하고, 과감한 예산을 투자해 현실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제도화되지 않은 계획과 예산이 없는 정책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지역의 모든 구성원이 논의하고 합의해서 결정해야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고 실행 속도도 담보할 수 있다.
세 번째 원칙은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거버넌스를 통해 과감한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2050년 넷제로를 향한 장기적 목표만이 아니라, 5년 혹은 10년 내에 감축할 수 있는 목표량을 도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지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상황을 파악하다보면 제도적 한계와 재정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심지어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 부딪힐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발표한 서울시도 여러 계획에 제도적 한계를 거론하고, 추후 개선작업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많은 권한과 예산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도 그러한데, 다른 지역은 더할 것이다. 지역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실행 계획의 제도적 한계를 인지하고, 국회와 정부에 구체적으로 개선과 예산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현실 가능한 목표만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어렵다. 지금은 아무리 과감한 목표도 과감하지 않다.
지역의 시민사회와 기후에너지 전문가들도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의회에 구체적으로 협력 의사를 밝히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지방정부를 압박하고 견제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예산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해 기후/환경/에너지 예산을 들여다보자. 상하수도관거나 미세먼지 관련 예산이 전부일 수도 있고, 수소자동차나 전기자동차 관련 지원예산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 지역의 온실가스감축이 그런 예산으로 가능한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예산계획 수정을 요구하고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우선임을 명확히 요구해야 한다. 정책은 제도와 예산으로 실현된다. 시장, 도지사, 군수, 구청장의 의지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기초 지방정부의 역할도 기대해 본다. 코로나19 상황으로 기초지방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빛났던 상반기였다. 시민들과 대면하여 직접적으로 정책을 실현하는 단위가 기초지방정부다. 전국 곳곳에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에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광역시도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동시에 한계를 인식시켜,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가져와야 한다. 자치와 분권에는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지방정부들이 앞 다투어 기후비상선언을 하고 탄소중립 도시가 될 것을 약속했지만, 이후 대응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대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8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야 한다. Ac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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