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최근의 6.17 부동산 대책, 7.10 부동산 대책을 포함하여 지난 3년간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많은 시민이 큰 불안과 절망에 빠졌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으니 공급 확대가 빠진 반쪽 정책이라는 비판, 공급 절벽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예측, 2030과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는 등의 보도가 잇따른다. 특히 보수 언론은 부동산 문제의 원인을 공급 부족으로 진단하며,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풀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서울, 수도권과 같이 이미 과밀화된 도시 지역에서 신축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재개발, 재건축이다.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부동산 가격의 지속 상승이다. 부동산 시장의 원리는 수요 공급의 원리와 함께 돈의 흐름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재개발, 재건축 자극은 좋은 공급 아니다
경제학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시장가격과 거래량을 설명한다. 공급이 많으면 상품이 남아돌아 가격이 하락하고, 반대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탄력적인 생산이 가능한 일반 재화와 달리, 공급에 긴 시간이 걸리고 공급이 무한정 가능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가격이 상승할수록, 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누리는 불로소득의 크기가 커질수록 불안심리, 투기 심리에 따른 투기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가격은 더 올라가고, 가격이 올라갈수록 수익률이 상승하기 때문에 공급은 더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멀쩡한 아파트를 부수고 새로 짓는 데도 계속 새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진단이 이어진다.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의 소유자들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바라는 이유는 낡은 집에 거주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개발 사업으로 불로소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발은 정작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내몰고, 투기를 유발해 부동산 가격을 계속 올리고, 나중에 들어오는 수요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 약탈적인 개발 방식이다. 따라서 소득수준과 아파트 가격의 균형에 관계없이 새 아파트의 총량을 늘리는 것 자체가 정책의 목표라면 몰라도, 재개발, 재건축의 규제 완화가 바탕인 부동산 공급 증가로는 부동산 시장과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다. 투기수요와 가수요가 잦아 든 이후에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사라지면 사업은 오히려 지지부진해진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35평형의 경우 2019년 말, 실거래가 23억 원을 돌파하고 올해는 1~2억 원가량의 등락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세가격은 5~6억 원 전후에 형성되고 있다. 반면 인근의 2015년 신축아파트인 래미안 대치팰리스 34평형의 경우 2020년 6월 실거래가 30억 원, 전세가격은 16억 원 전후에 형성되어 있다. 은마아파트가 재건축되어 신축아파트로 탈바꿈한다면 5~6억 원대에서 35평 전세로 거주하던 세입자가 재건축후의 은마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을까? 오래된 주택은 나름대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거주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재개발, 재건축이라는 공급방식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도심지역에서 유일하게 신규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낮은 지불능력의 임차인이 거주할 곳을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유자의 재산가치 극대화라는 유일의 목표만을 달성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이 동원되는 욕망의 분화구가 된지 오래다. 명분은 주택공급의 확대, 주거환경 개선이지만, 실제 거주자인 임차인들은 재건축이 완료되면 급격히 높아지는 주거비용으로 인하여 주거환경 개선의 편익을 누리지 못하고 모두 내몰리게 되고, 부동산 소유자의 재산가치 극대화 목표 달성을 위하여 건설사와 한배를 타게 되는 구조다. 재건축 사업이 시행되면 소유자의 조합원 분양가보다 늘어나는 물량의 일반분양가가 월등히 높다. 재산가치 극대화 목표를 위하여 일반분양가를 턱밑까지 최대한 올리게 된다.
부동산 투기대열에 올라타지 않으면 낙오될까 두려운 2030
이처럼 재개발,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면 부동산 시장은 더 강력한 자극을 받게 된다. 투기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연 정부는 그간 투기수요를 잘 억제했나?
문재인 정부 초기의 부동산 정책인 2017년도 8.2 부동산 대책의 주요 목표는 '실수요자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다. 가장 최근의 2020년도 7.10 부동산 대책 중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의 세부내용은 서민 실수요자 부담 경감으로 생애최초 특별공급확대, 신혼부부 소득기준 완화, 취득세감면, 중저가주택 재산세율 인하 등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투기수요'와 '실수요자'를 분리하고, '실수요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주택 구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아직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2030세대들이 '영끌'해서 집을 구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불안 심리 때문이고, 이것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서울 외곽지역뿐만 아니라 수도권 저가주택까지 모두 상승하는 요인이 된다('영끌해서 산다... 2030은 왜 아파트에 올인하는가' MBC뉴스 7.9.). 부동산가격이 계속 오를 것만 같아서 하루라도 빨리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부동산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수요를 투기 수요와 실수요로 구분할 수 있을까?
정부가 해야 할 일이 하루라도 빨리 주택을 구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결국 정부가 '앞으로 계속 가격이 오를 테니 지금이라도 사다리에 올라타라'고 신호를 주는 것 아닌가? 지금 집값 상승의 원인은 다주택자들이 갖고 있는 집을 내놓지 않기 때문도 있지만, 무주택자와 2030세대가 불안 심리를 이기지 못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택구매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주택자들의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하겠다는 정책과 동시에 '실수요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주택구입을 장려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부동산가격이 정상화 되고 시장이 안정된다면 실수요자들은 오히려 구입을 미뤄야하는 것 아닌가?
건설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문재인 정부의 이중성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에서 다주택자에게 임대주택등록 제도라는 퇴로를 열어주면서 종부세, 양도세, 재산세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주었다. 8.2 부동산 대책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중 가장 큰 패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8.2 대책에서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시장에 매물로 던질 때 발생할 부동산 가격 하락, 미분양, 건설경기 침체, 부동산 경기 급락을 방지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세제 혜택을 마련했다고 봐야한다. 어차피 주택을 수요할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으니 공급되는 높은 가격의 주택을 받아줄 수 있는 시장의 누군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정부는 집값 하락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재 국토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부동산간접투자(리츠) 활성화 정책, 용산 정비창부지 개발정책, 잠실 마이스(MICE) 개발사업, 영동대로 복합개발사업, 재개발사업, 가로정비사업 등 각종 정비사업 지원정책, 3기 신도시개발정책 등 각종 개발사업 정책이 있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외치는 동시에 시장의 투기 심리, 기대 심리를 부추기는 이중성을 보이는 셈이다. 다주택자 및 고가주택 소유자에 대한 취득세, 종부세, 양도세를 다소 강화하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으나, 불평등의 정도가 훨씬 큰 상업용, 업무용 부동산, 기업소유 비업무용 토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대한민국은 경제성장률이 곧 정부의 경제 성적표로 인식되는 나라다. 지난해 초 한국은행은 전년대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7%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보수언론은 일제히 경제성장률이 6년 만에 최저치라고 보도했다. 이때 건설투자는 전년 대비 4.0% 감소하여 20년 만에 최저치였다. 문재인 정부는 건설투자를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지만, 이후 세부적인 정책들을 살펴보면 정부는 결국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하면서 '실수요자 보호'를 명분으로 부동산 시장의 불씨를 살려두기 위한 정책을 폈다.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 초과이익은 바로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투기 수요의 원천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생태계, 산업구조, 건설 산업이 우리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하에서 정부와 부동산 시장은 경기부양과 주거안정이라는 상반된 목표 달성을 위해 밀당과 눈치 보기, 부동산 투기와의 끝나지 않는 싸움을 벌여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의 끝없는 상승은 자산거품을 심화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파괴하고, 결국 언젠가는 극심한 침체의 늪으로 인도하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부동산의 공급은 공급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지, 어떤 목표를 위해 공급할지가 중요하다. 투기 심리에서 꽃피는 수요에 기대어 창출되는 약탈적인 방식의 공급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주택 공급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것이다.
강제수용을 통한 공공개발택지를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여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이 개입하여,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의 개발 사업을 모색해야한다.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분양이 가능한 토지임대부(토지는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 환매조건부(실거주자만 분양받게 한 후, 제3자에게 매각하지 못하게 하고 다시 공공이 되사는 방식), 장기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공 공급이 지속된다는 믿음이 형성돼야 부동산 투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은 언제고 반드시 환수된다는 믿음이 생기고, 불필요한 부동산을 과도하게 소유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확고해야 사람들은 부동산을 투기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집을 당장 구입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구매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집을 당장 구매하지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면 투기 수요는 복잡한 정책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부동산 규제정책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고 하는 태풍과 같다. 그러나 나그네의 외투을 벗긴 것은 강력한 태풍이 아니라 결국 대지에 골고루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었다. 쨍쨍한 햇볕으로 시장참여자들이 스스로 외투를 벗게끔 하려면 꽁꽁 얼어있는 얼음이 녹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건설 산업도 부양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강바닥을 파헤치는 것 말고는 없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라도 단단한 얼음은 살아남아 새로운 겨울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얼음이 녹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판단하여 선택하고, 꼭 필요한 단단한 얼음이 녹아 없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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