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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요충지에 집성촌 매원마을 전해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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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낙동강변 요충지에 집성촌 매원마을 전해오는 곳

[2020년 7월 고을학교]

*참가자는 코로나19 관련,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와 대화 자제, 꼼꼼하게 손씻기, 기침-재채기 예절 등 예방수칙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또는 본인이나 가족이 14일 이내 국내외 전염지역 방문을 한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7월의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연구전문가) 제77강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영남대로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시대를 달리하는 고택들이 즐비한 광주이씨 집성촌인 매원마을이 있는 칠곡고을로 갑니다(코로나19 상황으로 7월 예정했던 화순고을은 뒤로 미루고 칠곡고을을 먼저 갑니다).

▲칠곡고을의 가산산성 안에 칠곡도호부가 있었다.ⓒ칠곡군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고을학교 제77강은 2020년 7월 26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77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 답사 코스는 서울-남구미IC-북삼읍(선봉사 대각국사비)-약목면(신유장군유적지)-왜관읍(묵헌종택/동산재/해은고택/감호당/지경당/진주댁)-지천면(경수당/사양서당)-동명면(송림사/가산산성)-왜관IC-서울의 순입니다.

*답사 도중 점심식사 겸 뒤풀이 시간을 갖습니다.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답사 코스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칠곡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77강 답사지인 칠곡고을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영남대로의 요충지

경북 칠곡고을의 지형은 동부와 서부에는 산지가, 중앙에는 경호천과 강정천의 하구가, 낙동강 연안에는 구릉지와 범람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줄기는 칠곡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낙동강의 동쪽에는 가산, 유학산, 황학산, 백운산이, 서쪽에는 금오산, 영암산, 서진산이 높이를 달리 하며 이어집니다. 물줄기는 가산, 소학산, 장원봉의 산줄기에서 발원하는 동부하천과, 금오산, 영암산의 산줄기에서 발원하는 서부하천으로 나눠집니다. 고개는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한티재가, 가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소야고개가, 건령산에서 명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여울재가 있습니다. 특히 소야고개는 예로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어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곳이었으며, 고개 아래에는 다부원(多富院)이 있었습니다.

칠곡은 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 대목현 또는 칠촌은 계자현으로, 사동화현은 수동현 또는 옥산으로 각각 변경되어 성산군(지금의 성주군)에 소속되었고 팔거리현은 북치장리 또는 인리라고 불렀으며 팔리현으로 변경되어 수창군(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소속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940년(태조 23) 계자현은 약목현으로 변경되어 경산부(지금의 성주군)에 소속되었으며, 수동현은 인동현으로, 팔리현은 팔거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018년(현종 9) 인동현과 팔거현이 경산부에 소속되었고, 1391년 약목현은 인동현 소속이 되었습니다.

조선 초까지 약목현은 여전히 인동현의 속현으로, 팔거현은 성주목의 속현으로 있었고 1593년(선조 26)에 경상도 감영이 일시 팔거현으로 옮겨온 적이 있었습니다. 1601년(선조 34) 인동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조방장을 두어 부사가 겸임하였고 1640년(인조 18) 팔거현은 가산산성이 축조되면서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었습니다.

좁은 지역에 두 개의 도호부가 설치된 것은 칠곡이 경상도의 중심으로서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이 아니라 감영인 대구를 방비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1896년 전국을 13도 7부제로 개편하면서 인동군과 칠곡군은 대구부에서 분리하여 경상북도 소속으로 변경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동군이 칠곡군에 병합됨으로써 오늘의 골격을 갖추었으며 현재 3개 읍, 5개 면, 73개 법정리, 203개 행정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제189호)은 현존하는 몇 기 안 되는 전탑 중 가장 규모가 큰 데다 균형 잡힌 세련미를 갖춘 빼어난 전탑이다.ⓒ칠곡군

가산산성·금오산성·관호토성과 봉수대들

칠곡의 관방유적은 가산산성, 금오산성, 관호토성, 그리고 박집산 봉수대 터와 각산리 봉수대 터와 건대산 봉수대 터가 있습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석축 산성으로 내성, 중성, 외성을 각각 다른 시기에 쌓았습니다. 하양, 신령, 의흥, 의성, 군위의 군영과 군량이 가산산성에 속하며 칠곡도호부도 이 산성 안에 있었습니다. 내성에는 중요시설이 있었으며, 중성에는 4개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를 보관해서 유사시에 사용하였습니다.

금오산성은 구미시,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 있는 금오산(997m)의 정상부를 테뫼식으로 두른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산성으로, 둘레는 약 3,500m에 이르며 현재 남문, 서문, 중문, 암문 및 건물 터가 남아 있습니다. 금오산성은 고려 말에 선산, 안동, 개령, 성주 등지에서 많은 주민을 징발하여 축조하였습니다.

관호토성은 관호리 임강마을 뒤쪽 백포산에 삼국시대에 축성된 토성으로 ‘백포산성’으로도 불립니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성은 동서의 길이가 18m, 폭이 50m 가량이고, 북쪽으로 구릉지대를 따라 100m 정도 바깥에 외성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서쪽 성벽과 낙동강에 접한 북쪽 성벽이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박집산 봉수대는 박집산(347.7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심토축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인동읍에서 서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남쪽 12㎞ 지점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각산리 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12㎞ 북쪽에 있는 건대산 봉수대로 보냈다고 합니다.

각산리 봉수대는 칠곡군 기산면 봉산리와 성주군 월항면 용각리의 경계에 있는 봉화산(468.3m) 정상에 있었으며 고령에서 올라오는 봉수와 현풍에서 올라오는 봉수를 합하여 박집산 봉수대로 전해주는 역할을 하였던 봉수대입니다.

건대산 봉수대는 칠곡과 구미의 경계에 있는 건대산 정상에 있었던 봉수대로 남으로 박집산에, 북으로 선산 석현에 응하면서 성주와 상주 지역을 연결하였습니다.

칠곡향교와 사양서당

유교유적은 칠곡향교, 사양서당 강당, 녹봉정사지, 소암서원, 봉양서원, 어필각, 신유장군 유적 등이 있습니다.

칠곡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고증할 수 있는 상세한 문헌이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1642년(인조 20)에 건축되었습니다.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등이 남아 있습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동국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양서당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학문 연마와 강학 장소였습니다. 현재 대구 북구 옛 칠곡면 사수동에 한강을 기념하기 위해 1651년에 창건하여 한강을 주벽으로 하여 석담 이윤우를 배향한 서원으로, 1694년(숙종 20)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면서 송암 이원경을 별사에 함께 모시게 되었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묘우와 강당, 폄우제, 정완재, 봉하문, 양현청, 주고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강당인 경희당만 남아 있습니다.

녹봉정사는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 이곳에 녹봉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전국의 사적(寺籍)을 보관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다가 1561년(명종 16) 성주 목사 황준량과 오건 등이 중심이 되어 절터에 녹봉정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창건 당시에는 성정당, 시습재, 양정헌, 양호루, 관물대, 천연지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봉양서원은 장용한과 장유를 향사한 서원으로 원래 1789년(정조 13) 기산면 죽전리에 건립되었으나 중건 때 석적읍 중리로 이건되었다고 합니다. 장용한은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1781년에 비안의 귀천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장유는 장용한의 증손인 장희달의 아들로 1705년에 진사에 등제하여,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권상하 등과 사귀면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암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채몽연, 채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습니다. 1847년(헌종 13)에 장내범을 추가 배향하였고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어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였는데 철거 전 경내 건물로는 사우·신문·강당·동재·서재·전사청·주사 등이 있었습니다.

어필각은 조선 태종이 ‘공심일시(公心一視)’ 네 글씨를 직접 써서 개국공신인 유창에게 하사한 어필묵서를 보관한 곳으로 유창의 영정도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신유장군은 1658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사를 무찌르고 그 원정기록으로 <북정일기>를 후세에 남겼다.ⓒ칠곡군

신유장군의 <북정일기>

신유장군 유적은 조선 후기의 무신 신유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신유는 함경북도 병마우후로 있을 때 청나라의 요청으로 1658년(효종 9) 군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신유는 이 원정의 내용을 <북정일기>로 후세에 남겼는데, <북정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에 최초의 접촉으로 현지 사령관이 쓴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사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칠곡의 매원마을은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으로 꼽힙니다. 용두산, 죽곡산, 아망산, 금무산, 산두산, 자고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매화꽃과 같아 매원마을이라 하였는데 풍수지리적으로는 매화낙지형에 속합니다. 처음에는 야성(야로)송씨와 벽진이씨가 살았으나 1623년 조선 인조 때 광주이씨 석담 이윤우가 신동 옷갓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번성기에는 400여 채의 가옥이 있었다고 하나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이 소실되고 현재는 60여 채만 남아 있습니다.

고택들이 즐비한 매원마을

매원마을에는 감호당, 동산재, 박곡종택, 진주댁, 해은고택, 묵헌종택, 지경당, 경수당 등의 고택이 남아 있습니다.

감호당은 석담 이윤우가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합니다. 후에 아들인 이도장에게 물려주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독서와 강도에 힘써 건물의 주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10년(광해군 2) 이윤우가 사직 후 향리에 돌아온 때부터 1624년(인조 2) 담양부사로 부임한 1610~1624년 사이로 보입니다. 여러 번의 보수와 최근의 중수로 옛 목 부재는 남아있지 않으나 초석과 건물의 평면 형태는 창건 당시와 많이 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윤우는 본관 광주, 자는 무백, 호는 석담으로 처음에는 이이로부터 수학하였으나 그 사후에 정구의 문인이 되었습니다. 1591년(선조 24) 진사가 되고,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거쳐 광해군 즉위 초 승정원주서를 지냈습니다. 1610년(광해군 2) 예문관검열로서 시강원설서를 겸임하고, 이어 사관으로서 정인홍의 비위사실을 직서하였다가 탄핵을 받아 사퇴하였습니다. 인조반정 후 예조정랑, 홍문관수찬, 교리를 거처 이괄의 난 때 초유어사로 특배되었고 예문관응교, 사간, 성균관사성, 공조참의에 이르렀습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칠곡 사양서원과 성주 회연서원에 제향 되었습니다.

동산재는 광주이씨 석전문중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낙촌 이도장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세운 낙촌정, 장자 귀암 이원정의 유덕과 공적을 알리기 위해 1903년에 세운 경암재, 장손 정제 이담명의 별사봉향을 위해 세운 소암재와 묘실, 대문채, 관리사를 일괄하여 이름 붙인 것입니다. 재사와 정사가 하나의 일곽을 이루면서 건립순서와 세계(世系)가 역순이면서도 건축구성상 정연한 위계성을 갖는 특이성을 갖고 있고, 대부분의 건물이 창건 이후 큰 변형이 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도장은 본관 광주. 자는 태관, 호는 감호. 아버지는 이윤우이며, 정구와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경사를 깊이 연구하고 문장이 뛰어 났으나,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는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고 향리에서 향약을 제정, 시행하고, 사양서원을 세워 후학을 교육하였습니다.

박곡종택은 이원록을 불천위로 모시는 사당과 안채, 별채, 대문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원록은 본관 광주, 자는 사흥, 호는 박곡입니다. 1629년 이도장의 아들로 태어나 미수 허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651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663년(현종 4) 식년시 을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이천현감, 장연부사, 의주부윤, 부승지 등을 거쳐 예조참판, 호조참판,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1680년(숙종 6) 경신출척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안동에서 은거하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매원마을의 지경당은 전체적으로는 건립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칠곡군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진주택

진주댁은 이원록의 9세손 이상립이 건립하였는데 농경지와 동정천, 못안들과 안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래 안채, 사랑채, 곳간채, 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진 부유한 양반가의 주택으로 보이는데, 현존하는 안채와 사랑채는 일제강점기의 새로운 양식이 부분적으로 수용되긴 했지만, 대체로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계승,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안채는 좌우 측면에 눈썹지붕을 달아 실제공간을 효율적으로 확장했고, 대청 전면에 문을 달아 외기를 막도록 했습니다.

해은고택은 이동유가 1788년(정조 12)에 안채를 짓고 사랑채는 1816년(순조 16)에 지었습니다. 그의 후손 이철연의 호를 따라 ‘해은고택’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건물 배치는 사랑채, 고간채, 정침이 아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침의 우측에는 사당을 설치하였습니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로는 안방과 부엌을, 우로는 건넌방을 두었습니다. 곳간채는 일반적으로 수장 공간으로 꾸미나 여기서는 좌측부분에 온돌방을 들여 아래채의 기능도 담당하였습니다.

묵헌종택은 안채와 사랑채는 이원정의 차자인 이한명이 건립하였고, 사당은 5대손인 묵헌 이만운이 별세한 후 1820년(순조 20년)에 건립하였습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일자형의 사랑채와 n자형의 안채로 튼□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채의 우측 후면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안채는 안방과 대청을 정면에 두고 좌, 우로 방을 배치하였는데 좌측에는 부엌과 아랫방을, 우측에는 고방과 건너방, 부엌을 두어 n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원정은 본관 광주, 자는 사징, 호는 귀암, 경산, 시호는 문익으로 한강 정구, 아버지 이윤우, 미수 허목의 문인입니다. 1652년 과거에 급제하여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홍문관제학을 지냈으며, 호조판서로 있을 때 윤휴와 함께 도체부의 설치와 조세제도의 개선, 인재 양성을 위해 힘썼고 숭정대부 판의금부사에 이르렀습니다. 2차 예송논쟁 당시 남인 측 주요인사의 한 사람으로 1680년 경신환국 때 서인의 맹공격을 받고 유배되었다가 배소로 가던 도중 체포되어 형문을 받던 중 장살 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아들 이담명은 청남(淸南)이 되어 송시열, 김수항 등을 집중 공격하게 됩니다.

묵헌 이만운은 퇴계, 한강, 문익공을 잇는 정통 성리학자로 국학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증보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습니다.

지경당은 이이종이 차남 이지연을 분가시키기 위해 건립한 주택으로, 하매마을에 있던 풍각댁 정침을 이건하여 정침을 삼고, 그 외 건물은 후대 건립하였습니다. 건물은 정침, 사랑채, 중문간채, 대문간 등 4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물 배치는 경북 남부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튼 'ㅁ'자 형식으로 대문채를 들어서면 좌측으로 사랑채, 우측으로 중문간채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안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외담 등 일부가 멸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립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경수당은 이윤우가 세거하던 자리에 지어진 주택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법무부 형사국장을 지냈던 김낙헌이 거주하다가 김낙헌의 친구인 후석 이주후가 매입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면서 벽진이씨 후석파 종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一'자형의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그리고 광채가 동향으로 나란하게 병렬 배치되어 있고 안중사랑채가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남향으로 직교 배치된 형식입니다.

▲매원마을 동산재 또한 대부분의 건물이 창건 이후 큰 변형 없이 유지되고 있다.ⓒ칠곡군

송림사·용화사·흥국사와 정도사지

칠곡고을의 사찰은 송림사, 용화사, 흥국사 등이 있고, 절터로는 1031년(현종 22) 기명(記銘)의 오층석탑 조성 형지기가 발견된 것으로 유명한 정도사지가 있습니다.

송림사는 544년(진흥왕 5)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이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1092년(선종 9)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했습니다. 1243년(고종 30) 몽골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중창했으나 1597년(선조 30) 왜병들의 방화로 가람이 소실되었고 1686년(숙종 12)에 기성대사에 의해 대웅전과 명부전이 중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송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605호)은 본존 석가모니불상과 좌우 협시의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의 3구로, 1657년의 조성 연대가 확인된 목조불상입니다. 협시의 지물과 보관은 후대에 보수한 것이나 대체로 조성 초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17세기 중엽 조선 중기 목조 불상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간략한 옷 주름의 표현과 약간의 부피감을 지니는 불신, 안정감 있는 하체, 결가부좌한 다리, 앞으로 길고 높게 흘러내린 부채꼴 모양의 법의 주름 등은 적당한 크기의 불두와 함께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성에 적당한 부피감과 사실성을 띠어 세련미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됩니다.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제189호)은 기단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사용하였고 상륜부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입니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형태와 재료,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9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보수 시 탑신의 몸돌 내부에서 목불과 사리장치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몇 기 안 되는 전탑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균형 잡힌 탑신의 세련미를 갖춘 빼어난 전탑입니다.

송림사 당간지주는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밭 가운데 있으며 윗부분이 부러진 채로 남아 있는데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과거 송림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해줍니다.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제251호)는 금오산 자락에 위치한 대각사라는 작은 암자 옆에 있습니다. 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인 대각국사 의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132년(인종 10)에 건립하였습니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였던 한림시독학사 임존이 짓고 인(麟)이라는 스님이 글씨를 썼는데 대각국사의 구법활동, 천태교를 확립하는 과정 및 교화, 그 외에도 국사가 남긴 유교명 등이 실려 있습니다. 개성의 영통사에도 1125년에 세워진 대각국사비가 남아 있는데 선봉사 대각국사비는 대각국사가 천태교를 수립한 시조임을 밝히기 위해 세운 것이고 개성의 것은 증시(贈諡)를 위해 세운 것입니다. 남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선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7월 고을학교 제77강의 자세한 내용은 인문학습원의 <학교소개>에서 안내 받으세요. 또한 기사 게재 이후의 변동사항도 인문학습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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