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월드뱅크)이 한국과 같이 세금 누진성이 낮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장제도가 될 수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기본소득이 고용 불안 문제 등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도 전했다.
코로나19와 더불어 일자리 불안 현상이 심화하리라는 전망이 거센 가운데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 기구인 세계은행이 기본소득에 전향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9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근 세계은행이 중·저소득국가 10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네팔, 러시아, 모잠비크, 브라질, 아이티, 인도, 인도네시아, 칠레, 카자흐스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모의실험을 실시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 <Exploring Universal Basic Income>의 요약본을 배포했다.
조 의원은 세계은행 동유럽 지역국 거버넌스 선임 전문관,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 등 세계은행에서 16년간 근무한 전문가다.
해당 요약본을 보면, 세계은행이 이들 10개국의 공공부조(취약 계층의 최저생활 보장을 위한 소득보장 제도) 예산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모의실험을 실시한 결과 이들 국가의 소득 최하위 20% 인구 중 70%가 이득을 보고, 전체 인구 중에서는 92%가 이득을 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결과는 국가 예산이 종전과 같은 상황(예산 중립적)을 가정한 실험을 통해 나왔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증세가 이뤄진다면 더 큰 효과가 나올 수 있음을 추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은행은 아프리카 4개국과 인도의 역진적인 부가가치세(VAT)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모의실험 결과, 소득 최하위 40% 가구가 기본소득의 혜택을 입었다고 전했다.
세계은행은 이 같은 실험 결과가 일부 복지 프로그램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거나, 간접세만을 기본소득 세원으로 삼아도 된다는 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세금의 누진성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것"이며 "사회보장이 고르지 못하거나, 심지어 역진적인 나라에서는 누진적 소득세나 에너지 보조금 폐지, 불로소득 재분배를 통해 기본소득 지급률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평가는 한국과 같이 고소득자의 세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사회보장 수준이 높지 않은 데다 부동산 등의 투기성 이익이 극소수에게 집중되는 국가에 기본소득이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의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한국의 지니계수 개선율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26위에 그칠 정도로 소득 불평등성이 크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기본소득 도입에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환경에 있다는 세계은행의 평가는 <프레시안>에 '기본소득 시대를 향해'를 연재하는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의 입장과 같다. (☞ '기본소득 시대를 향해' 칼럼 보기)
한편 세계은행은 "기본소득을 충분히 지급하기 위해서는 부유층 과세를 크게 늘리거나, 세심한 공공지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은 아울러 기본소득 도입 시 "특정 집단을 선별해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한들, 핵심적인 논쟁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서는 "속도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세계은행은 기본소득 도입을 향한 일부의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기본소득이 노동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우려,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리라는 우려는 과장됐다고 세계은행은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한편 부분적으로나마 기본소득제가 도입된 해외 사례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몽골과 이란은 1~2년간 완전한 기본소득제를 실시한 바 있다.
조정훈 의원은 △기본소득이 특정 국가나 상황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사회보장제도가 될 수 있다는 점 △한국과 같이 세금 누진성이 낮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사회복지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기본소득이 고용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이제 기본소득은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핵심 의제가 되었다"며 "대한민국이 기본소득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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