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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한국은 아동·여성·노인이 살기 좋은 사회인가

며칠 전 유엔인구기금(UNPFA)이 발표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조사 대상 198개국 중 198위로 세계 '꼴찌'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출산 관련 통계에서 최저 기록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2018년 합계출산율 0.98명은 전쟁과 같은 특수한 시기를 제외하면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떨어진 세계 최초기록이었다. 이는 2019년 0.92명으로 또다시 갱신됐고, 올해는 더 떨어질 전망이다. 저출산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이를 전하는 언론은 '인구 절벽', '꺼져가는 성장 동력' 같은 헤드라인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저출산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문제화 하는 방식은 이렇다. 출산율 저하로 생산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성장은 둔화하는데, 비생산 인구인 고령인구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 부양 부담이 커지고 복지비용이 증가하니 사회불안정과 갈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상 시나리오에서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방안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저출산이 문제로 지목된 2000년대부터 모든 정권은 이를 '극복'하는 것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아왔지만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정말 저출산이 다가올 위기의 원인이고 문제일까?

국가경쟁력을 위한 출산 정책

저출산 대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됐다. 출산과 양육 지원, 세금 혜택과 함께 신혼부부·다자녀 가구에 공공주택 우선 입주 혜택을 부여하며 난임 시술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저출산 대응에 나서기 불과 십년 전인 1994년까지 출산억제 정책이 이어져왔다. "둘만 낳아 잘 길러서 1000불 소득 이룩하자"던 국가는 이제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위해 "하나는 부족"하고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라 말한다.

현재의 출산장려와 과거의 출산 억제는 정반대의 정책처럼 보이지만,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출산정책이 설계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경제규모를 키우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과거에는 출산을 억제했다면, 지금은 출산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출산은 국가의 전략에 따라 통제되고 관리되어 왔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출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2005년 제정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출산·고령화를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문제로 보면서, 출산과 육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국민의 책무로 규정한다.

저출산 위기 담론에서 희망으로 호명되는 미래세대는 국가의 경제규모 유지에 필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희망이다. 생산 활동을 해나갈 미래세대가 도구라면,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복지비용을 늘리는 고령세대는 짐이다. 여성은 '출산할 몸'으로만 취급된다. 대중교통의 임산부석은 임신한 여성이 아니라 '내일의 주인공'인 태아를 위한 자리다. 그러니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출산지도'와 '출산력 조사'가 등장한 것이다. 혼인연령을 낮추기 위해 교육과정 단축으로 사회에 빨리 진출토록 하자거나, 고학력 여성 증가가 문제라며 채용에 불이익을 주고 미팅을 주선하자는 게 저출산 대책으로 제안되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게 대책이라며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국민을 대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 위기 담론은 저출산을 이미 문제로 전제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출생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으로 인한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전과 같은 사회경제시스템 유지를 목표로 할 때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국가는 저출산 해소를 목표로 내세우고 출산을 하지 않는 개개인들에게 위기의 원인을 돌리며 공포감을 조성해왔다. 하지만 저출산이 왜 문제이며, 누구에게 문제가 되는가?

저출산이 문제인 것은 기존 체계를 고수하려는 국가 입장에서다.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겐 출산과 양육에 따른 리스크가 더 크다.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삶의 조건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부양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저출산 대책에서 강조되어온 일·가정 양립의 현실은 어떠한가. 결국 일과 가정 모두를 챙기다가 여성만 골병 난다는 것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평생 동안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에 누군가를 부양하기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비혼과 비출산은 이런 조건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저출산이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생산/재생산 영역 모두에서 구조화되고 고착화된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전과 같은 대응은 실효성이 없음을 확인해서인지, 최근 다른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2019년에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정·재발표하며 정부는 삶의 질 개선과 성평등 확립을 목표로 한 저출산 대응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 저출산 문제를 여성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문제로 접근하겠다며 미래통합당의 저출생대책위원회 출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가 과거와는 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출산을 문제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과 변화로

한국사회는 아동이, 여성이, 노인이 살기 좋은 사회인가. 일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회인가. 출생 이후부터 시작되는 경쟁,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빈곤과 외로움, 돌봄의 공백, 심화되는 불평등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이다. 그렇게 위태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저출산을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로 읽으며, 출산율이라는 숫자가 아닌 한국사회의 불안정한 노동세계를, 아동과 여성, 노인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문제 삼고 이를 바꾸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해야 할 과제다.

그리고 저출산을 언제나 위기의 원인으로 만드는 현재의 사회경제시스템의 유지라는 목표를 바꿔야 한다. 지난 20여 년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한국의 인구구조는 이미 달라졌다. 내년부터 출산율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변화된 인구구조는 되돌릴 수 없다. 미래의 위기를 대비하려면 생산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며 그 짐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려고 할 게 아니라 지금의 조건에서 필요한 개편을 하고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출산과 육아를 독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다운 노동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의 안정적인 주거가 혜택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주택 비중을 늘리며 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시혜적 복지 차원에 머무르며 가치 있는 노동으로 존중 받지 못해 온 노인 일자리에 대한 접근도 전면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1인 가구 증가가 보여주듯 기존의 '정상가족' 범주와 이를 기준으로 한 정책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저출산에 대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미래를 시점으로, 국가의 입장에서 문제이자 위기로 이야기해왔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애국자'가 되고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할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삶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존엄과 지속가능성을 잣대로 한 질문이 필요한 때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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