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여야의 대치 전선이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의 원(院)구성 협상이 불발로 끝난 이후 17개 상임위·상설특위 위원장을 단독 선출하고 3차 추경예산 심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1야당인 통합당은 "1당 독재"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30일 오전까지 16개 상임위에서의 3차 추경안 심사를 마무리하는 전격 속도전을 폈다. 전날 오후 본회의에서 16개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서다. 민주당은 이어 이날 오전에는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예산조정소위를 구성하고 종합정책질의까지 진행했다. 추경 등 예산안의 국회 처리 절차는, 정부가 제출한 안이 먼저 본회의에 보고되면 국회의장이 이를 소관 상임위에 회부해 예비심사를 하고, 상임위 심사 후 다시 예결특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게 된다.
16개 상임위에서의 추경안 심의는 전날 오후 본회의 직후부터 이날 아침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야당 등 정치권과 언론에서 '지나친 졸속 심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한 속도였다. 대부분의 상임위에서 추경안 심사는 1~2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심사를 완료한 상임위는 국회운영위원회로, 김태년 위원장 주재로 전날 오후 8시부터 열린 전체회의에서 무려 50분여 만에 일사천리로 추경안을 의결했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상임위는 기획재정위원회로 약 6시간 동안 심의를 진행했으나, 정의당 장혜영 위원이 사전 자료도 받지 못하고 설명도 부실했다며 "심의가 아닌 '통과' 목적의 상임위다. 졸속 운영"이라고 항의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일까지 빚어졌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추경안 내용에 대한 심의보다는 추미애 장관을 상대로 검찰개혁 등 현안 질의를 위주로 진행돼 약 4시간 만에 회의를 마쳤다.
상임위 심사 단계에서 추경안은 정부 제출 원안 35조3000억 원에서 3조 원가량이 증액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2조2800억 원이 증액됐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3160억 원가량이, 교육위에서 2600억 원가량이 증액됐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798억, 환경노동위원회는 374억 증액이었다.
기재위와 외교통일·정무·행정안전·보건복지·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국토교통위 등은 정부안 원안이 통과됐고, 법사위(4000만 원 감액), 국방위(9억여 원 감액)에서는 감액됐다. 과방위와 여성가족위원회는 전날 전체회의에서 추경안을 의결하지 못하고 이날 오전 9시대에 다시 회의를 열어 의결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은 주마가편의 태세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하루 빨리 국회에 복귀하라"고 야당을 압박하면서 " 3차 추경은 비상·긴급상황이어서 신속처리가 시급하다. 밤을 새는 일이 있더라도 6월 임시국회 내에 추경을 통과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추경이 통과되면 신속히 집행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까지 각 부처에 했다. 정 총리는 "국회가 조속한 추경안 처리로 경제 회복과 도약의 시기를 앞당기는 데 힘을 보태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이날 오전 국회 예결위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한 모두발언에서도 "재정지원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추경을 조속히 의결해 달라"고 재차 촉구했다. 예결특위는 이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민주당은 이날 예결특위 산하 예산조정소위를 구성하고, 소위원회 심사를 다음날부터 이틀 간((7.1~2) 진행한 후 3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의결하겠다는 입장이다.
통합당 "1당 독재" 격분…'1주일 늦추자' 지연전술도
제1야당인 통합당은 민주당의 이같은 '속도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연이어 의원총회를 열고 "우리나라는 모르는 사이에 일당독재 국가가 됐다"며 "집권세력의 오만과 일당독재를 견제하고 국민에게 이 실정을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은 민주당 의원총회장이 됐고, 대한민국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은 민주당 의원 간담회장으로 바뀌었다"고 비난하면서 "더 파렴치한 것은 장관을 거친 사람들을 바로 해당 상임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이 문체위원장으로,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의원이 농해수위원장으로 전날 선출된 데 대한 지적이다. 그는 "이 사람들이 장관 했던 기간도 국회 감사 대상인데 감사를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종배 통합당 정책위의장은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3차 추경안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의장은 "조속 처리만 강조하며 국민을 호도하고 야당을 겁박하는 상황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금번 추경은 현 경제상황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 근거해 잘못된 처방을 내린, 현실 인식이 결여된 추경"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장은 구체적으로 △11.4조 원 규모의 세수경정 중 6.5조는 본예산에서의 세입 과다계상 오류이므로 인정할 수 없고 △방역 관련 예산에 비해 임시직 일자리가 과다하며 △지역사랑상품권, 철도 스마트센서 등 코로나와 무관한 불요불급 예산이 책정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상공인 생존자금 지원, 대학생 특별장학금, 의료진 특별수당 등의 사업이 추가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이 이같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예결특위 심사에 참여해야 하지만, 이날 오전까지 통합당은 불참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브리핑에서 "(추경 처리 시한이) 7월 3일이라면 저희는 참여하기 어렵다"며 "7월 11일까지 시한을 준다면 추경을 심의해서 추경 목적에 맞는 예산을 함께 만들 것"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1주일가량 시간을 늦춘다면 추경안 심의에 참여하겠다는, 일종의 타협안인 셈이다. 통합당은 전날 의원총회 후 주 원내대표를 통해 "대한민국의 헌정 파괴를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저희는 일단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의사일정에 당분간 전혀 참여하지 않겠다"고 의사일정 전면 불참을 선언했었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보이콧이 길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의원들을 상임위에 재배치하기 위한 자체 명단 작성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해, 전격 복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통합당은 전날 본회의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통합당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를 일방 배정한 데 대해 반발하며 일괄 사임계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이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전날 "(상임위 명단을) 미리 안 내면 9월까지 사보임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다. 역대 이런 국회의장이 있었나"라고 박 의장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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