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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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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초록發光] 공론 없는 핵폐기물 공론화

공론을 통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공론이 진행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방사능 농도가 높아서 10만 년 이상 생태계로부터 철저히 격리해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 핵발전 후에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1미터 앞에서 17초만 노출된 이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이다. 이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관한 문제를 ‘공론’이란 이름으로 해치우듯, 그것도 슬그머니 해도 되는 것인가?

정부가 공론을 끌어갈 위원회도 독단적으로 구성하고 공론의 절차와 방식도 제멋대로 정했으니, 소리 소문 없이 서둘러 진행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이 원자력계의 이해만 대변된 수순밟기였다는 비판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집권 전 대선 공약으로 재공론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공약(公約)은 빈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 공론(公論)이 빈 공론(空論)이었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절차적 요식 행위, 궁색한 공론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안에 대한 공론이 필요한 이유는 다만 공론이란 형식을 빌려 과정상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다. 핵발전을 통해 전기를 사용한 모든 국민이 핵폐기물 문제를 책임지는 당사자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의 약 27%를 만들어 내는 핵발전소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전기가 어떤 경로를 타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송전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핵발전을 하면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얼마나 치명적인 물질인지, 핵폐기물이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임시 보관되어 있는지,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로 보관되어 있지만 10만년의 독성을 지닌 핵폐기물을 어떻게 영구적으로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핵폐기물의 처분 문제는 핵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온 현 세대, 전 국민이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어떻게 지역과 세대가 형평하고 안전하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라는 고준위핵폐기물의 문제를 숙고하고 방안을 찾기 위한 전제로 핵폐기물에 대한 정보와 심각성에 대한 사실을 함께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는 공론

그러나 정부는 급했다. 지금 당장 경주 월성핵발전소에 저장되어 있는 임시저장시설이 수년 내에 포화될 상황에 이르자 서둘러 ‘공론’이란 이름을 빌려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에 착수했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정부는 지역과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고, 지역과 시민사회가 재검토 준비단에 참여하여 설계하고 일부 합의한 사항은 아예 무시한 채 공론화를 시작했다.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전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후, 포화할 임시저장시설 확충 여부 문제를 풀어가기로 했던 약속은 뒤집혔다.

공론화위원회는 경주 월성의 임시저장시설을 증설하기 위해 지역 내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단을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임시저장시설에서 8킬로미터 거리에 인접한 울산 북구 주민들의 의사는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증설이라는 원하는 결과를 서둘러 도출하기 위한 시도와 각본만 있을 뿐이다.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경주 양남면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 증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의지를 모았다.

정부의 임시저장시설 지역 공론화는 절차적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사용후핵연료재검토위원회는 시민 참여단 549명을 모집했고, 온라인 학습과 두 차례의 토론회를 ‘공론’이라 부르며 핵폐기물 처분 방안을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핵발전을 해 온 나라들이 수십 년 동안 전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진지하게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정부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조용히, 하다못해 언론의 취재까지 막으면서 공론화에 착수했다.

공론이란 명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해법을 위한 것

공론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풀기 어려운 문제라면 더더욱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누군들 10만년 이상 독성을 지니고 있는 핵폐기물에 대한 해법을 쉽게 낼 수 있겠는가.

이미 핵발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엎어진 물이었다. 담을 수도 없고 내려보낼 하수구도 없는 그 물은 지금도 넘쳐흐르고 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핵폐기물에 대한 전문성도, 이해관계도 없는 공론화위원회가 단기간에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문제다. 시민참여단 549명의 온라인 학습과 두 차례의 토론회에 ‘공론’이란 이름을 붙여서 마무리 지으려는 발상은 이제껏 수없이 보아왔던 밀실과 졸속 행정의 반복편이다.

공론이란 모름지기 떠들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관심과 의제로 삼아 숙고하고 발언하고 토론해야 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그러나 풀기 어려운 중차대한 문제. 쉽게 도출한 해법은 언젠가는 다시 터질 봉합이지 해법이 아니다. 수십만 다발의 핵폐기물을 쌓아둔 가운데, 지금도 핵발전소가 핵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분 방안이지, 절차적 명분이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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