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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혹여 게이인 게 들킬까 봐 무섭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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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태원에서 혹여 게이인 게 들킬까 봐 무섭다고 했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코로나가 이태원에 남긴 혐오의 흔적

그 어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연인, 가족, 친구의 문자보다 긴급재난 문자를 더 많이 받은 지 오래되었다. 5월의 황금연휴가 있던 주에 날아온 문자에는 그냥 읽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익숙한 클럽 이름들이 있었다. 이어서 서울시 용산구 홈페이지에는 이태원 주점 및 성소수자 클럽 세 곳의 상호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태원의 성소수자 클럽에서 일어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태는 한국의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5월 6일 이태원의 한 게이클럽은 페이스북에 '지역사회 감염환자가 클럽 방문 후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관할 보건소로부터 통보를 받았으며, 해당 확진자에 대한 추측성 소문 및 신상 공개 등은 자제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린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하지만 이 공지가 올라온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보도를 서슴지 않은 <국민일보>는 '[단독]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기점으로 언론의 혐오성 기사들이 연일 온라인과 TV 뉴스를 장식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5월 7일부터 5월 11일까지 네이버에 '게이클럽', '동성애', '게이', '블랙수면방', '찜방' 키워드를 검색하여 모니터링 한 결과, 이런 악의적인 보도들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흘 동안 총 1174건의 혐오성 기사가 집계되었고 코로나19 방역과 연관이 없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부추기는 보도들은 1000건이 넘었다. 연일 성소수자가 언급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나에게도 불안함과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태원에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 친구도 걱정되었다. 이미 나의 전화를 비롯해 수많은 안부 전화 세례를 받고 있었던 그 친구를 최근에서야 만났다.

"TV에서 게이클럽에 대한 보도가 나간 다음 날부터 연일 양복을 입은 기자들이 클럽 앞에서 촬영하느라 북적였어. 기자들이 얼마큼 많이 왔냐면, 마치 성소수자 문화 탐방 투어하는 줄 알았을 정도였거든. 매일 수많은 기자가 클럽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고 내 출퇴근 길이였던 그 앞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많이 불편했고 불안하기까지 했어. 동네 사람들도 그 주위를 삥 돌아갔고 혹시 나도 그곳을 지나가면 무슨 질문을 나에게 던질까 봐 무서워서 나도 그 주위를 삥 돌아가게 되었어.

이태원의 게이클럽, 성소수자가 많이 다니는 클럽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보도로 이태원에 사니까 엄마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의 많은 연락을 받게 되었어. "검사 받았니?"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거 같아. 이태원에서 발병했으니 너도 혹시 걸리지 않았는지 하는 의심의 눈총을 많이 받는 느낌이었고, 어느 순간에는 이태원에 사는 걸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어.

이런 것이 뜬금없이 순식간에 나의 삶에 펼쳐졌어. 평소에 편하게 이태원에서 만났던 게이 친구는 어느 날 좀 떨어진 한강진역에서 보자고 하더라고. 이태원에서 내가 혹여 게이인 게 들킬까 봐 무섭다고 했어."

SNS에서는 게이클럽 내부의 모습이 맥락 없이 가십거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당신이 게이인지 아닌지, 당신의 성적지향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으니 제발 검사를 받으라는 독촉의 말들이 넘쳤다. 게이라서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할 시점에 클럽에 가서 비난하는 것이며, 모두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이태원 클럽에 갔던 밀접 접촉자는 검사를 받으라는 독촉이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물론 이견이 없으나, 왜 사람들이 검사를 받을 수 없는지, 무엇이 검사받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지, 무엇이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 작용하는지 알지 못하는 발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태원 클럽 발(發) 집단 감염자 수가 늘어가고 있을 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 상담 전화 한 통이 왔다.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 가족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전화를 받은 동료 활동가는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들 성소수자가 어떤 차별을 받는지 묻는다. 여러 차별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소수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된 삶들을 숨겨야 한다. 하지만 이런 팬데믹 시대에서는 도저히 이 삶들을 숨길 수가 없다. 사회적 소수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모두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체성을 밝혀야 하고, 숨기려 해도 모든 수단을 통해 정체성이 밝혀지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2015)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약 86% 가 정체성을 감추고 있다고 응답했다.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44.8%나 된다. 차별을 금지하는 최소한의 평등법인 차별금지법조차 10여 년 동안 제정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하는 커밍아웃의 위험이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미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확진자는 수많은 혐오성 언론에서 슈퍼전파자가 되어 집단 감염을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표현되었다. 모두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 두려운 와중에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없고, 확진자의 동선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국민에게 낱낱이 공표되는 상황에서 검진을 받으러 가기까지 성소수자는 고민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가 만들어졌고, 본부는 확진자의 신상 공개가 '아웃팅(당사자 동의 없이 성적 지향 등이 공개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여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통해 차별사례를 수집하는 등의 발 빠른 대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가 서울시 질병관리과에게 코로나 확진 검사과정과 동선공개에 대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알리고 문제되는 지점을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 '4월 24일부터 5월 6일 사이', '이태원 일대'라는 시간적 공간적 키워드로 서울시 모든 선별 보건소에서 무료검사가 가능해졌고, 나름의 안전한 익명검사가 도입된 후에는 서울시의 코로나 검사 건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게이와 트랜스젠더 역할을 연기했던 연예인의 SNS에 한 네티즌이 다짜고짜 '지난주에 클럽 간 거 해명해주세요'라는 무례한 댓글을 다는 등 짧은 시간 내에 변화한 정책에 비해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나간 이태원에는 혐오의 흔적들, 고통의 자국들이 남아있었다. 집합금지명령 스티커가 붙은 채 굳게 닫혀 있는 클럽의 문에는 어느 날 커피 자국이, 다른 날엔 계란 세례로 생긴 얼룩이, 또 다른 날에는 크게 한글로 쓰인 '게이'라는 글씨가 남아있었다.


▲ 코로나로 '임시휴업'을 알리는 이태원의 한 클럽 문에 남겨진 낙서. ⓒ터울님



어느 날에는 게이들의 게토였던 그 언덕의 클럽 앞에서 동네 주민이 아닌 낯선 교회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예수님의 사진이 붙은 기타를 들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서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며 불결한 존재를 몰아내는 듯이 예배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며, 과연 그 예배는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흔히 혐오는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예배와 전도라는 미명 아래, 또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를 사랑하니 반대한다는 사랑을 가장한 말로도 혐오와 차별은 이루어진다.

이태원 업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서둘러 A4 용지로 가게의 이름을 가렸고, 오랫동안 이태원에서 장사했던 사장님은 애정을 가지고 내걸었던 가게의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며 슬퍼했다. 보건소에 검사를 받으러 갔던 트랜스젠더 친구는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외국인, 아이들, 성소수자가 섞여있는 틈바구니 속에서 꿋꿋하게 방송을 하는 기자의 멘트와 모습이 너무도 생경해서 불편했다고 한다. 예전에 자신에게 이태원은 성소수자가 이상하지 않고 함께 사는, 그래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었지만 코로나가 지나간 지금은 자신이 큰 피해를 입힌 가해자로, 방역에 구멍을 낸 집단으로, 뭔가를 대단히 망쳐버린 존재로 이태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편안하게 민낯으로 편의점에 가서 점원이나 누군가가 내가 트랜스젠더인 걸 눈치채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다고도 했다.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지만, 감염 이후의 삶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 또한 모두에게 같지 않다. 주민등록증 확인을 통해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는 제도는 트랜스젠더를 마스크 구매로부터 가로막을 수 있다. 콜롬비아의 보고타 지역에서는 여성은 짝수 일에, 남성은 홀수 일에만 외출할 수 있는 '성별 외출제(남녀 2부제)'를 시행하자 성전환자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어나고 있다고도 한다. 감염성 질병에 취약한 조건은 이렇게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결정된다. 마사 누스바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숨겨져 있던 혐오와 편견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혐오와 편견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이 세계에서 한순간도 숨겨져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198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 (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에이즈) 위기를 겪으면서 벗겨지지 않는 낙인과 깊은 차별의 골을 경험했다. 에이즈는 이미 오래전에 게이들만의 질병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동성애가 곧 에이즈라는 낙인과 싸워야 한다. 혐오 선동에 앞장섰던 언론사의 노동조합이 낸 자성의 목소리, 차별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선언, 그리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대중들의 인식변화. 인간은 질병 앞에서 모두 나약하고 취약하다는, 팬데믹이라는 공통된 위기 속에서 질병에 대한 낙인, 혐오와 차별은 바이러스를 종식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남겼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어쩌면 이 바이러스를 통해서 만연해 있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면역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희망도 보인다. 한국 특유의 잔소리 문화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하게 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준비 없이 맞이한 비대면의 시대에서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보며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대구 지역에 살지 않아요.

나는 신천지가 아니에요.

나는 이태원 클럽에 가지 않았어요.

나는 게이가 아니에요.

무서운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 앞에서, 우리는 이런 말들이 더 이상 자신의 무해함을 보장하는 방패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더 방패로 사용할 말도 없어지고 있기도 하다. 바이러스 앞에서 누가 무결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타인을 불결한 존재로 만들어 본인을 정결하다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팬데믹 상황에서 누가 질병에 걸리는가는, 곧 누가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또 나의 안전이 당신의 안전임을 인정하고 서로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 힘써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만이 운명 공동체의 살길임을 우리는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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