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말 폭탄'이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향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6.15 남북 정상선언 20주년 기념 축사를 거친 언어로 비난했다.
김 제1부부장은 17일 발표한 담화에서 지난 15일 문 대통령의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과 6.15 20주년 기념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 등에 대해 "2000년 6.15공동선언 서명 시 남측 당국자가 착용하였던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2018년 판문점선언 때 사용하였던 연탁 앞에 나서서 상징성과 의미는 언제나와 같이 애써 부여하느라 했다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명색은 '대통령'의 연설이지만 민족 앞에 지닌 책무와 의지, 현 사태수습의 방향과 대책이란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고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된 남조선(남한) 당국자의 연설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당시 영상메시지에서 "한반도는 아직은 남과 북의 의지만으로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디더라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으며 나아가야 한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지루한 사대주의 타령"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훌륭했던 북남합의가 한걸음도 이행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 때문"이라며 "북남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 실무그룹'(한미 워킹그룹) 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 물고 사사건건 북남관계의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바쳐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라고 지적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2년 간 남조선 당국은 민족자주가 아니라 북남관계와 조미(북미)관계의 '선순환'이라는 엉뚱한 정책에 매진해왔고 뒤늦게나마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흰목을 뽑아들 때에조차 '제재의 틀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절대적으로 덧붙여 왔다"며 남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묶여 남북 간 협력을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권의 변동에 따라 우리의 대북 정책이 일관성을 잃기도 하고,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기도 했으며 남북관계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기도 했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저들이 할 일이란 애초에 없었다고 직방 터놓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제1부부장은 "북남관계가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 남조선 내부의 사정 때문이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따라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과거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던 '운전자론'이 무색해지는 변명"이라고 꼬집었다.
김 제1부부장은 이와 함께 현 상황이 남한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때문에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이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의 축사가 "본말은 간 데 없고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과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 또는 행동으로 나쁜 일을 꾸미거나 남을 속이려는 것)를 범벅해 놓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일관되어 있다며 "쓰레기들이 저지른 반공화국 삐라 살포 행위와 이를 묵인한 남조선 당국의 처사는 추상적인 미화분식으로 어물쩍해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신성시하는 것 가운데서도 제일 중심핵인 최고존엄, 우리 위원장동지를 감히 모독하였으며 동시에 우리 전체 인민을 우롱하는 천하의 망동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다"며 "이것을 어떻게 '일부'의 소행으로,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로 매도하고 단순히 '무거운 마음'으로만 대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주년 기념 연설에서 "우리가 직면한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제1부부장은 남한 당국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제대로 막고 있지 않다면서 "요사스러운 말장난으로 죄악을 가리워버리고 눈앞에 닥친 위기나 모면하겠다는 것인데 참으로 얄팍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신뢰가 밑뿌리까지 허물어지고 혐오심은 극도에 달했는데 기름발린 말 몇 마디로 북남관계를 반전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판문점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삐라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할 데 대하여 명기되어있다"며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두 번도 아니고 제 집에서 벌어지는 반 공화국 삐라 살포를 못 본채 방치해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남조선 당국의 책임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다"고 주장했다.
김 제1부부장은 "도대체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남조선 당국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제대로 실행한 것이 한 조항이라도 있단 말인가"라며 "한 것이 있다면 주인구실은 하지 못하고 상전의 눈치나 보며 국제사회에 구걸질하러 다닌 것이 전부인데 그것을 '끊임없는 노력', '소통의 끈'으로 포장하는 것은 여우도 낯을 붉힐 비열하고 간특한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제1부부장이 이처럼 문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겨냥한 것을 두고 북한이 그만큼 급한 사정에 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018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연이어 열었음에도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은데다가,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까지 겹치면서 '사회주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진 북한이 이에 대한 실패 요인을 외부로 돌리려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시작으로 남북 및 북미 대화 국면에서 일종의 메신저로 활약한 김 제1부부장이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하고 북한 내부에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어조로 남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 제1부부장과 함께 북한에서 대남정책을 담당하는 장금철 통일전선부장도 이날 담화를 발표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원인은 자신들이 아닌 남한에 있다고 주장했다.
장 부장은 "온 민족과 세계 앞에서 한 북남선언과 합의를 휴지장으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데 도대체 그 책임을 누구보고 지란 말인가"라며 "응당한 죄값을 치르는 봉변을 당한 것뿐인데 가책을 받을 대신 저열하게 사태의 책임을 논하며 우리더러 그것을 지라니 우리는 기꺼이 책임질 것이다. 책임을 져도 우리에게 해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남관계가 총파산된 데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여 눈섭(눈썹) 하나 까딱할 우리가 아니다. 득실관계를 따져보아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실도 없다. 집권기간 치적 쌓기에 몰두해온 남조선 당국자에게나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라며 문 대통령을 저격하기도 했다.
장 부장은 "앞으로 남조선 당국과의 무슨 교류나 협력이란 있을 수 없다. 주고받을 말자체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남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은 일장춘몽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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