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원(院)구성 문제를 놓고 여야가 극한 충돌을 앞둔 상황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사흘 간의 추가 협상 시한을 제시해 국회가 다시 한 고비를 넘겼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사위는 우리가 가져오고 예결위 등 7개 상임위를 야당에 주겠다'는 취지의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미래통합당은 이를 거부하고 '법사위를 안 주면 다른 모든 상임위원장 직도 필요없다'고 강하게 맞섰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박병석의 '3일 추가' 제안
12일 오후 2시, 예정된 시각에 국회 본회의가 개의됐을 때 회의장 안팎은 긴장감에 가득 차 있었다. 여야 간 협상이 진전을 만들지 못하면서, 민주당이 여당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선출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본회의가 열리자마자 통합당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여당이 야당을 무시한 채 상임위 단독 처리를 진행한다면 통합당은 국회 의사일정에 전혀 동참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이에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민주당은 야당과의 지지부진한 협상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 본회의를 열어 원구성에 속도를 내겠다"고 맞불을 놓는 등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여야 대표선수들의 기싸움 후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병석 의장은 "다음은 의사일정(상임위원장 선출 안건) 상정 순서이지만 의장으로서 드릴 말씀이 있다"며 중재에 나섰다. 박 의장은 "국가적 위기가 심각하고 민생이 절박함에도 오늘 원구성을 마무리짓지 못해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날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 선출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먼저 천명했다.
박 의장은 이어 "그 동안 의장 주재 하에 양당 대표가 만나 협상해 왔고, 상당한 의견 접근이 있었고 타결을 기대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며 "의장으로서 마지막 합의를 촉구하기 위해 3일간 시간을 드리겠다"고 했다.
박 의장은 다만 "오는 15일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장 선출 건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야당을 압박하며 "교섭단체 대표들은 이제 결단과 리더십을 보여 달라"고 협상 타결을 재차 촉구했다. 박 의장은 발언을 마친 뒤 산회를 선포했고, 결국 이날 본회의는 그대로 마무리됐다.
민주당이 야당에 '법사위 대신' 내민 타협안은…
앞서 이날 오전부터 민주당은 통합당과의 협상 경과를 공개하며 자신들의 타협안을 거부할 경우 단독 본회의 처리도 불사하겠다고 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 "어젯밤 양당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여러 차례 만나 마련한 가(假)합의안"이라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정무위원회, 교육위원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합당에 대폭 양보했다"고 밝혔다.
김 수석부대표는 "이 가합의안은 민주당의 최대한의 양보안이었고 모든 '노른자위' 상임위를 양보하는 안"이라며 "그런데도 통합당은 의원총회에서 (이를) 거부했다. 총선 민의를 무시하는 구태 행위이고 발목잡기"라고 야당을 비난했다.
통합당에서는 이에 대해 '가합의안'이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고, 해당 제안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제안한 안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부에서 우리가 법사위를 양보하는 조건으로 무슨 협상을 한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당 상황이나 의원들 분위기가, 법사위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의 합의를 (저에게) 위임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18개를 다 가져갈 수 있다'고도 얘기하다가, 의석비율에 따른 '11대7'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서 '도대체 7개 상임위가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줄 수 있는 상임위가 이렇다'고 하는 제안은 저희들이 받았다"며 "우리가 '제안'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해명했다.
주 원내대표는 법사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더 이상 추가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여당의 강경 대응에 불쾌감을 표했다. 그는 박 의장이 3일 간의 추가 협상 기한을 제시한 데 대해서도 "저희들은 협상 결렬을 선언했기 때문에 그 사이(주말)에 접촉하거나 만날 일은 없다"면서 "법사위를 빼앗기고는 야당으로서의 존재 의의도 없고, 국회 자체도 국회라고 할 수가 없어서 협상할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주 원내대표는 "힘으로 밀어붙이는데 방법이 있겠나",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별다른 대응책이 없음을 시인하면서도 "민주당이 그렇게 의석 수를 자랑할 것 같으면 '18개 상임위 한 번 다 가져가서 해보라'고 (의원들이) 말할 정도"라며 "더 이상 협상은 없다"고 재강조했다.
통합당 3선 "상임위원장에 연연 않겠다"…민주당 "우리도 부글부글"
주 원내대표가 이처럼 여당의 압박에 자신 있게 '강대강'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이날 통합당 3선 중진 의원들이 "통합당에 대한 법사위원장 배분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통합당 3선 의원 일동은 모든 상임위원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원내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 꼽힌다.
박대출·김태흠 의원 등 통합당 3선 의원들은 이날 오전 공동 입장문을 내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32년간 일당독식으로 해오지 않은 것이 국회의 룰이자 전통"이라며 이같이 선언했다. 이들은 "법사위원장은 177석 거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독식하겠다는 것은 일당독재를 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3선 의원들이 나서서 상임위원장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포기 선언을 먼저 했다"며 "저희들은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주말 간 접촉에) 응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의장이 상임위를 강제 배분하면 하는 대로 거기 따라서 (대응)하겠다"고 불퇴전의 각오를 밝혔다.
여당에서도 이날 본회의가 결론 없이 끝난 데 대해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은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오늘 (선출을) 하자고 했는데, (산회는) 중재가 아니라 박 의장의 결정이었다"면서 "이렇게 미뤄지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오늘 하루 정도 생각해 보고 야당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통합당을 압박하며 "법사위와 예결위를 나누고, 그쪽에서 원하는 상임위를 다 드렸는데 뭘 더 (협상을) 하느냐. 민주당 많은 의원들도 이 협상안에 대해 대단히 불만이 많지만 코로나 위기와 일하는 국회를 열자는 대의 앞에 (양보를) 한 것이다. 지금 당 의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가 입장차를 전혀 좁히지 못하면서, 새로운 시한으로 제시된 15일까지 타결을 기대하는 것도 난망한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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