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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막연한 기대감 뒤에 감춰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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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본소득, 막연한 기대감 뒤에 감춰진 것들

[기고] 기본소득, 정책적 효용성 따져봐야

통 크게 14조원짜리 전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고 나니, 기본소득론이 이제 학계와 시민단체를 넘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재명 지사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정치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본소득제가 보수가치가 아니라는 건 수구'(김세연, 미래통합당), '기본소득이란 화두를 민주당이 먼저 가져가게 두면 안된다'(오세훈, 미래통합당)며 기본소득 도입에 보수진영 정치가들이 올라타고 있다.

여기에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제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보수당의 노선 대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세균 총리도 청년기본소득은 논의해 볼만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기본소득론에 무게감이 더해지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소득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확실하게 메울 수 있고, 부자에게 세금 거둬 전체에게 나눠주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풀린 돈으로 소비증대를 이루어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 말이다. 기본소득으로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면 한국 복지국가가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미안하게도 필자는 이 막연한 기대감이 얼마나 허망한 기대인지 밝히고자 한다. 하나씩 따져보자.

▲재난기본소득 배포 현장 ⓒ연합뉴스

소득보장과 사각지대 해소?

기본소득의 정당화 논리로 사각지대 해소를 많이 거론한다. 이번 코로나19 경제위기에서 드러났듯이,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빠져 있는 비정규직과 새로이 늘어만 가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원리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니 사각지대가 있을 수 없다. 최대의 장점이다. 문제는 급여의 수준이다. '적용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어도 급여가 너무 낮아 소득보장의 의미가 없다. '급여의 사각지대'는 그대로 남는다.

예를 들어보자. 2019년 실업급여 지출액은 총 9조 3355억 원이다. 실업급여로 1인 최대 월 198만 원까지 받는다. 이 9조 3355억 원을 기본소득 방식대로 5200만 명에게 1/N로 나눠주면 월 1만4900 원이 된다. 즉, 현재 약 1만5000원짜리 기본소득을 줄 돈으로, 198만 원까지 주는 실업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를 포함하면 노동인구의 50%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빠져있다. 고용보험의 적용을 지금보다 배로 늘리면 사각지대가 해소된다. 지금 쓰는 예산 9조 3355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보상수준도 똑같이 최대 월 198만 원으로 할 수 있다.

만약 이 필요예산 9조 3355억원을 기본소득 방식으로 사각지대 해소에 쓰면 어떻게 될까? 급여가 월 약 1만5000원에 불과하게 된다.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10배인 15만 원씩 주려고 해도 93조 원이 넘게 든다.

복지급여와 달리 기본소득은 실업, 은퇴, 육아 등 사회적 위험이나 욕구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전국민에게 지급된다. 그러다 보니 급여수준이 형편없어도 돈이 많이 든다. 2017년 현재, 연금,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 한국의 모든 현금 복지지출을 더하면 총 73.4조 원이 된다. 이를 1/N로 기본소득화하면 월 11만7000원이 된다. 그런데. 현 사회보장제도에서는 73.4조 원을 가지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1인 가구 월 52만7000원, 주택급여 포함 시 79만3000원), 실업급여(최대 월 198만 원), 육아휴직급여(최대 월 120만 원), 국민연금(최대 월 194만4000원), 기초연금(하위 20% 월 30만 원, 나머지 25만 원), 아동수당(월 10만 원), 근로장려금 (4인가족, 연 최대 440만 원) 등을 지급하고 있다.

기본소득 방식의 소득보장은 너무나 가성비가 낮다. 사각지대 해소에 실효성이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각지대 해소는 기본 소득이 아닌, 사회보장 시스템의 적용 확대로 풀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

기본소득에 대한 기대 중에 하나는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다. 그러나 소득이 있건 없건 똑같은 액수를 받으니, 소득재분배 효과가 날 수가 없다. 고소득층이든 저소득층이든 동일 액수를 받으니 양극화 해소 효과 또한 전혀 없다. 만약 기존의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면 어찌될까? 저소득층이나 소득이 격감한 자가 받던 것을 소득이 있는 사람, 더구나 고소득층도 1/N로 나눠 갖게 된다. 역진적인 재분배가 일어난다.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 된다.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 효과를 낳고, 이를 통해 양극화 해소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기존의 사회보장 급여를 그대로 둔 채,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누진세로 세금을 추가로 거둘 때뿐이다. 그런데, 전병목 외(전병목.송호신.성명재.전영준.김승래. 2017. <저성장 시대의 조세정책 방향: 소득재분배를 중심으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누진적 조세징수보다 복지지출 쪽에서 재분배가 훨씬 더 크게 일어난다. 거둔 세금이 저소득층과 실업, 육아, 은퇴 등으로 소득이 없거나 격감한 자에게 집중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세금징수를 통해 발생하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1일 때, 공적이전소득(복지급여)을 통해 발생하는 재분배 효과는 최대 3.12가 된다. 역으로 말하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는 기본소득의 지출을 통해 현행 복지급여 만큼의 재분배 효과를 보려면, 세금을 추가로 3배 이상 높여야 한다는 뜻이다. 2019년 한국의 총조세부담율은 GDP대비 27.4%다. 총조세부담율을 현재의 3배인 GDP의 82.2%까지 끌어 올려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현 수준의 양극화 해소 효과를 볼 수 있다. 비현실적이다.

기본소득의 도입보다는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즉 사각지대를 축소하여 적용대상자를 넓히고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에 실효적인 도움이 된다.

소비증대 효과?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소비가 활성화 되어 경기 진작 효과가 발생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재명 지사가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증대 효과를 들어, 10조 4000억 원을 들여 제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을 주더라도 전체 국민에게 나눠주기보다는 중위소득 이하 국민에게 2회 지급하는 것이 총소비증대 효과가 크다. 왜 그런가?

기본소득처럼 고소득, 저소득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지급하면, 소비증대 효과가 반감된다. 한계소비성향의 차이 때문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분석에 의하면, 소득하위 20%에 속한 가구는 새로 소득이 10만 원이 증가하면 10만 원을 전부 소비지출한다. 늘 돈이 없어서 못쓰고 있을 뿐, 돈만 들어오면 다 쓸 태세다. 반면에 상위 20%는 10만 원이 추가로 생기면 5만9000원만 소비에 쓰고 나머지는 저축한다.(통계청. <2016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 보도자료 2017.2.24.) 소득활동을 통해 이미 필요한 소비를 유지하던 사람은 새로 소득이 생긴다고 다 소비지출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이들에게 들어오면 일부 소비가 일어나더라도 상당부분 저축으로 퇴장하고 만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증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저소득자와 실업이나 은퇴로 소득이 격감한 사람들에게 집중하여 분배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미 확보된 재원을 나누어 사용할 때도, 적자재정을 통해 지출을 늘릴 때도, 증세를 통해 신규 재원을 분배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소득층부터 저소득층까지 동일한 액수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보다는, 복지의 원리에 맞게 저소득층과 소득이 없는 집단에게 지급하는 것이 경기진작 효과가 훨씬 크다.

예산 제약을 벗어나 기본 사회보장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나?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 급여보다 소득보장 효과, 사각지대 해소 실효성, 소득재분배와 소비증대 효과가 모두 크게 떨어진다. 현행 복지체제를 대체하며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좋아질 것이 하나도 없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기본소득론자들은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운동을 펼치고 있는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도 2016년 서울대회를 통해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국가를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복지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보완재'로서 위치하고 있음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토보유세, 생태세, 로봇세, 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 소득세 인상 등을 통해 신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기본소득에 사용하면 기존 사회보장급여를 통폐합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백승호. 이승윤. 2018. <기본소득 논쟁 제대로 하기> 한국사회정책. 25권 3호)

그러나 새로운 세수를 확보했다한들, 예산 제약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가용 예산이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보완적으로 도입된다 하더라도, 도입되는 순간 사회보장제도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위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본소득은 단돈 1만 원짜리라도 6조 2400억 원이 소요되는 매우 재정소요가 큰 프로그램이다. 10만 원짜리면 62조 4000억 원이 소요된다. 지난 10년간 실업급여 지급총액보다도 크다. 가정경제에서도 새로운 커다란 지출항목이 생기면, 다른 소비 지출에 제약을 받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채를 발행하는 경우, 예산 제약 상황을 당장은 모면할 수 있다. 그러나 후세대 정부의 예산제약은 더욱 커진다.

정치적 계산이 압도한 정책합리성

사회정책적, 경제적 효과가 열등한 전국민 기본소득을 왜 정치가들은 앞다퉈 도입하자고 할까? 일자리 없는 사회 대비, 사각지대 해소, 소비 진작 등 온갖 이유를 달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기본소득만이 갖는 정치적 효과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복지급여는 5200만 전체 국민 중에 소수에게 급여가 지급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수혜자, 그리고 아동수당과 실업급여 수령자 등을 모두 합해도 이들은 항상 소수이다. 누구나 아프면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소득상실의 위험에 빠지면 원칙적으로 누구나 급여를 받는 보편 보장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당장 복지 급여를 받는 수혜자는 항상 소수다. 반면 기본소득은 모든 유권자가 받는다. 실업급여 198만 원을 소수 실업자에게 몰아주기보다는, 1만5000원을 다수에게 나눠주는 게 표 동원에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더한다. 실업급여도 계속 주겠다고. 당장은 푼돈 같은 기본소득도 차차 늘려나갈 거라고.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실업급여의 인상이 필요하다. 필자는 300만 원까지 최고한도액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해서 최대 120만 원에 불과한 육아휴직급여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소득만 보장할 게 아니라,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게 시민의 직업역량도 키워주어야 한다. 그런데,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사회보장의 강화는 사실상 어려워지게 된다. 현안이 되고 있는 고용보험의 대대적 확대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할 수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가 닥치니, 기다렸다는 듯 여야 일부 정치인들이 기본소득 깃발을 휘두르고 있다. 우리는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증가일로에 있는 복지비에 더해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야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자면 기본소득 같이 사회경제적 효과가 떨어지는 제도에 가용자원이 낭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가들의 표 계산에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이 지체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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