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신가요? 인사가 무색한 요즘이다. 코로나19는 경제, 노동 영역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있다. KDI의 2020년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위축으로 올해 한국경제성장률을 0.2%로 전망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경제성장률이 –1.6%까지 하락하여 역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의 충격은 고용시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용행정통계로 본 3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구직급여 신규신청자는 전월과 비교했을 때 약 3만1000명이 증가한 15만6000여 명이며, 구직급여 수혜금액 또한 역대 최고 규모인 약 9000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이른바, '위기' 상황인 것이다.
'위기'와의 공존은 숙명인가?
카를로 보르도니(Carlo Bordoni)는 '위기'라는 말이 분리나 결별의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선택과 결정의 의미도 내포하기 때문에 의견을 표현할 기회라고도 해석한다. 즉, 보르도니 관점에서 위기는 새로운 토대 위에서 앞으로 조정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는 변화의 소인이자, 날마다 상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우리는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위기의 국가>(지그문트 바우만·카를로 보르도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펴냄)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경제적 변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왔다. 테일러 구비(Taylor-Gooby)는 사회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고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사회적 위험을 구사회 위험(old social risks)과 신사회 위험(new social risks)으로 구분하였다. 구사회 위험은 실업, 노령, 질병 등으로 인한 소득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며, 신사회 위험은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난 고용 구조 변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급증, 저출산·고령화, 가족구조의 불안정성 심화 등이다.
코로나19라는 위험 요소가 형성한 위기 상황은 더욱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비교적 '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안정을 '위협'한다. 동시에 기존에 '취약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거친 모습으로 돌진하여 불안정한 삶마저 '파괴'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2020년 수정경제전망 보고서'에서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임시일용직 근로자는 물론이고 상용직 근로자까지 확대되는 양상이 확인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코로나19로 인한 경향 및 사회정책 대응 방안'에서도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이 소득 1분위를 넘어 소득 2~3분위부터 중간계층에 해당하는 3~4분위의 제조업·중소기업 노동자,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의 소득 상실 위기까지 형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중간계층에 속하지만 위기 국면에서 언제든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자영자 집단을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취약계층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까지 빈곤(위험 또는 취약) 집단을 규정한 소득, 재산,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등의 기준만을 고려해서 수립한 정책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 제기를 가능하게 한다.
'위기'의 두 얼굴: 위기는 모두에게 동일한 타격을 가하지 않는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 조사에서 분석된 일시 휴직자 규모를 살펴보면 코로나19의 위험이 여성, 고령자, 임시 일용직, 단순 노무직 등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불안정 노동에 속한 이들 대다수는 고용보험 미가입 취약계층에 포함되어 기존 고용안전망으로는 보호받지 못한다.
지난해 기준 고용 취약계층 규모는 약 459만 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의 고용 충격이 불안정 노동에 집중되는 상황은 2020년 3월 사업체 노동력조사에도 확인할 수 있다. 상용근로자는 전년 동월대비 8000명이 감소한 반면, 임시 일용근로자는 12만 4000명, 기타종사자는 9만3000명 감소했다. 근로소득 감소 및 중단과 빈곤 발생 위험의 높은 상관관계를 전제하면, 코로나19는 불안정 노동자의 빈곤 심화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컬럼비아 대학교 빈곤사회정책센터에서 최근 발표한 'Forecasting estimates of poverty during the COVID-19 Crisis'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실업률이 10%, 20%, 30%로 증가할 경우 백인 빈곤율은 4.3%p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반면, 흑인은 12.6%p, 히스패닉은 9.4%p, 아시아인은 5.8%p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 소수인종이 현재의 위기에서 더욱 큰 고용 불이익에 직면한다면 추정치보다 심각한 수준의 빈곤율이 도출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예측은 국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안정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저소득층이 고용 불이익에 직면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전제했을 때, 저소득층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각한 빈곤 상태에 놓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소득 1분위의 월평균 소득 중 근로소득은 전년보다 29% 급감하였고, 소득 하위 10%와 상위 10%의 소득격차는 6배가 넘게 나타났다. 1분기 분배 관련 지표들은 모두 악화되었다. 코로나19로 빈곤 취약집단들을 더욱 극심한 빈곤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적어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해야 했다. 정부는 현재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소득·재산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특별한 자격이나 충족해야 하는 기준 없이 전 국민 지급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존재했다. 예외적인 존재는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범주에서 벗어난 '이질성'이 철저히 무시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홈리스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신청과 지급 과정에서 거주불명등록, 주민등록지와 노숙 지역의 불일치, 가구 분리 문제, 지불 수단 문제 등 홈리스의 현실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의 홈리스는 긴급재난지원금의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견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
'위기'에 대한 보르도니의 접근처럼, 현재의 위기 상황이 선택과 결정을 내포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위기 상황이 사회구성원 모두의 안정적인 삶을 위협하는 동시에 기존의 취약한 이들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킨 상황을 목도한 우리의 결정 방향은 부실한 사회안전망 전반의 재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묵과해 온 다양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공론화하여 전 국민 고용보험, 상병수당 등의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계기를 형성하고 있다. 제도화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선정 기준을 완화하고 대상 범위와 지급 수준을 확대해야 한다. 일차적 안전망인 사회보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은 사회구성원이 사회적 위험에 직면했을 때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형성한다. 문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엄격한 자격 기준과 낮은 보장 수준이 제도의 역할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현실화,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수치심과 수급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의 최소화를 위해서 빈곤 문제를 조망해왔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빈곤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제 해결을 중요한 목표로 상정한 복지정책은 문제를 개념화하고 정의하는 과정에 따라 문제 인식의 방향과 사고의 범주가 결정된다. 불안정과 불평등이 확대되는 상황을 반추했을 때, 사회안전망을 견고하게 재편하기 위한 시도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안정적인 삶을 위한 것이다.
제2, 제3의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지금, 견고한 사회안전망 구축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자 미래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 될 것이다. 힘겹지만 아주 중요한 지금의 시간이 사회안전망을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는 외생적 요인으로 기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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