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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김용희와 삼성의 355일..."삼성 노사관계 전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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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김용희와 삼성의 355일..."삼성 노사관계 전환점"

"삼성 노사관계 중요 전환점"... 앞으로가 더 중요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 355일 만인 29일 땅을 밟는다. 그간 김 씨는 강남역 앞 25미터 높이 폐쇄회로(CC)TV 철탑의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생활했다.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나라에서 김 씨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김 씨가 삼성에 요구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한 일을 사과하고,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뿐이었다.

김 씨는 이를 위해 20여년에 걸친 싸움과 1년에 가까운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밖에 없었던 김 씨는 철탑 위에서 싸우기 위해 세 번의 단식을 감행했다. 삼성과 합의하기까지 김 씨의 355일을 정리하고 김 씨의 고공농성과 합의의 의미를 짚었다.

▲ 지난 4월 4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사거리에서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 300일을 맞아 연대 집회를 하는 참가자들을 향해 깃발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철탑에 오르자마자 진행된 55일간의 단식, 묵묵부답이던 삼성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1998년 해고된 김 씨는 작년 6월 10일 철탑에 올랐다. 회사에 다녔다면 정년퇴직을 했을 60살 생일을 한 달 앞둔 날이었다. 김 씨는 이 때의 심경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철탑에 오르기 전, 김 씨는 삼성 본관 앞에서 햇수로 2년째 노숙 농성을 하고 있었다. 철탑에 오르기 일주일 전인 6월 3일부터는 단식을 하고 있었다. 김 씨의 단식은 철탑에 오른 뒤에도 48일 더 이어졌다.

단식 50일이 되던 날 김 씨는 물도 끊었다. "건강 상태를 알아봐야 오히려 더 고민스러울 것 같다"며 의사 진료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몸무게는 30킬로그램이 넘게 빠졌다.

진료 거부 전 마지막으로 김 씨의 상태를 확인했던 의사 최규진 씨는 당시 언론에 "김 씨가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흑암시 증상과 오른쪽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삼성은 묵묵부답이었다.

김 씨의 건강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자 단식 55일차인 지난 7월 27일, 지금은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을 쓰는 '삼성해고자 고공단식농성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김 씨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고공농성공대위는 김 씨의 싸움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체다. 철탑 아래에 천막 농성장을 차리고, 철탑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밧줄로 올려주고, 연대집회를 기획하는 일도 했다. 삼성에 김 씨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요청하는 역할을 한 곳도 고공농성공대위였다.

김 씨는 고공농성공대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단식 55일 만에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단식을 멈춘 뒤에도 김 씨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계속되는 한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고공농성을 계속했다.

고공농성 81일차에 나온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대법 판결

고공농성 77일차이던 작년 8월 26일 김 씨는 '이재용 재구속'을 촉구하며 두 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해당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 부회장에 대해 2심 재판부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정유라 말 구입액'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을 문제 삼았다. 말 구입액은 뇌물에 해당하고, 영재센터 지원금도 삼성의 경영권 승계 현안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지급했다는 것이었다.

작년 8월 29일 위와 같은 내용의 판결이 나오자 김 씨는 두 번째 단식을 멈췄다.

고공농성 93일차인 작년 9월 10일에는 향린교회, 영등포산업선교회 등이 모여 '김용희 고공농성 개신교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이후 개신교대책위는 고공농성공대위와 함께 거의 매주 철탑 아래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이후 김 씨는 2019년 추석과 크리스마스, 2020년 새해와 설을 모두 철탑 위에서 보냈다. 100일, 200일, 300일. 고공농성 날짜도 같이 쌓여갔다.

고공농성 332일차,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고공농성 332일차이던 지난 6일, 이 부회장은 카메라 앞에 나와 그간 경영권 승계에서의 법적 문제와 무노조 경영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 3월 11일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에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 회장이 대국민 사과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었다. 삼성준법감시위는 국정농단 파기환송님 재판부가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을 이 부회자의 형량에 반영하겠다고 제안해 만들어진 기구다.

이날 김 씨는 세 번째 단식에 들어갔다. 고공농성공대위, 과천철거민대책위,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 등으로 이어진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은 "삼성의 노동탄압 문제는 피해 당사자가 있는 문제고 그 피해자가 철탑 위에 올라있다"며 "말뿐인 사과는 사기"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당일 시민사회와 노동단체에서도 '이 부회장의 사과는 말뿐이며, 지은 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사과 다음 날인 지난 7일 삼성에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수립, 노동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방안 등 대국민 사과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요구했다.

지난 한달여간 이뤄져 온 삼성과 김용희 씨의 교섭

이 부회장의 사과 전 김 씨의 고공농성에 대한 삼성과 김 씨 측 사이의 협상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졌다.

임미리 고공농성공대위 대표(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 15일 '삼성과의 교섭이 결렬됐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양측은 4월 29일부터 사과, 복직, 보상 문제 등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다. 이 부회장의 사과는 협상이 진행되던 중 삼성이 김 씨 측 안을 거부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삼성으로부터 다시 협상을 하자고 연락이 온 것은 이 부회장의 사과 이틀 뒤인 지난 8일이었다. 이후 양측은 수차에 걸쳐 안을 주고받으며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 14일 양자는 내용 면에서 접근을 이루고 15일 합의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다음날 삼성은 합의문 작성을 일주일 뒤로 미뤘다.

임 대표는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인 사람에게 삼성은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나락과 같은 절망을 던져줬다"며 "삼성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고공농성공대위를 비롯한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은 다시 기자회견, 집회 등을 열며 삼성에 대한 싸움에 나섰다.

그로부터 2주 뒤인 29일 양측은 드디어 합의문을 작성했다. 합의에 따라 김 씨는 이날 오후 6시경 고공농성 355일 만에 땅을 밟을 예정이다.

"중요한 싸움이었지만 삼성이 정말로 변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김 씨의 355일에 걸친 고공농성과 그 결과인 삼성과의 합의는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오랫동안 삼성에 관심을 가져온 노중기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김 씨의 싸움과 이번 합의에 의미를 두면서도 삼성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노 교수는 김 씨의 고공농성에 대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무너뜨리려는 싸움의 흐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하며 "이 부회장이 감옥에 안 가려는 제스쳐든 뭐든, 과거 노조 탄압 사건을 마무리하는 조치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노 교수는 "하지만 교섭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힌 일이나,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선언하면서 한국노총을 밀어주기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 삼성에 노조 탄압 관행을 바꾸겠다는 진지한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삼성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전근대적 노조 탄압의 관행이 한 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며 "(김 씨에 대한 삼성의 조치가) 정말로 한국사회에서 노사관계가 합리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될지는 두고 봐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은 숙제는 삼성의 몫이다. 김용희는 할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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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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