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민의 폭언, 폭행 등 갑질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고 최희석 경비 노동자의 유족이 최 씨의 죽음에 대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유족은 근로계약서, 경비일지 등을 검토해 최 씨가 일하던 아파트의 노동관계법 위반 의심 사항을 밝힌 자료도 발표했다.
최 씨 유족과 고최희석경비노동자추모모임 등은 28일 근로복지공단 북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보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신청서를 작성한 이진아 노무사는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 행위는 산업재해로 인정하도록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시되어 있다"며 "고인은 재해 발생 전 일터에서 끊임없이 가해자에게 노출되어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산재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이 노무사는 "법적으로 너무 명확한 상해죄 사건과 산업재해인 해당 사건을 빠르게 처리해 유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단초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 씨의 형 A씨는 "제2, 제3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며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약한 사람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휴게시간 지켜지지 않았고 경비업법 등 위반 정황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최 씨가 일하던 아파트 관리주체의 노동관계법령 등 법 위반 여부에 대한 노무법인과 추모모임의 검토 자료가 배포됐다.
노무법인 오늘은 '최 씨의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경비에게 경비 업무만 시키도록 한 경비업법, 경비원 등 근로자의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는 최 씨의 휴게시간은 근로계약서 상 18~20시, 23~다음 날 오전 5시다. 그런데 최 씨의 근무일지에는 해당 시간에 가로등 점등, 민원 처리, 분리수거 등 업무를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 담배꽁초 줍기, 음식폐기물통 수거, 낙엽쓸기, 차량점검 등의 경비 외 업무를 한 사실도 최 씨의 근무일지에 기록되어 있다. 최소한의 휴식도 주어지지 않은 정황을 확인 가능한 대목이다.
추모모임은 이밖에도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에 몇 가지 독소조항이 있다고 주장했다. 추모모임이 밝힌 독소조항은 △'입주자대표회의 3인 또는 아파트입주민 10인 이상의 연대서명으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불순한 목적으로 아파트 내에서 허가 없는 집회, 시위, 집단구호 제창, 연설 등 근로자를 선동 또는 소요를 획책하는 자'를 해고한다는 조항 등이다.
이 같은 조항 때문에 최 씨가 일하던 아파트의 경비 노동자는 입주민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거나 동료들과 함께 대항할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추모모임의 설명이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의 문종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도 모여서 자신의 이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가 뭉치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걷어치워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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