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환하게 웃어주시던 아저씨가 그립습니다.'
'친절하고 웃음주던 모습 기억합니다. 고맙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입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저씨께 죄송합니다.'
아파트 주민의 폭행을 이기지 못해 사망한 경비 노동자 고 최희석 씨(59)가 일하던 경비 초소에는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다.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과일과 술,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초소의 벽면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주민들의 쪽지가 붙었다. 하나같이 '늘 웃는 얼굴로 대해주던 분', '항상 친절하셨던 분'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런 고통을 겪고 계신 줄 몰랐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도 있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했던 최 씨는 아파트 주민 A 씨(49)의 계속된 폭행과 협박을 견디다 못해 지난 10일 새벽 자신의 집에서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13층 아래로 몸을 던졌다.
시작은 지난달 21일, 주차 문제였다. 지은 지 30년 된 오래된 두 동짜리 아파트는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중·삼중 주차가 일상이었다. 주차장을 관리하는 것도 경비원의 업무였다. 최 씨는 주차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중 주차된 A 씨의 차를 밀었다. 그때 A 씨가 나타나 "내 차에 손대지 말라"며 최 씨를 밀치기 시작했다. A 씨는 "우리가 돈 주는 걸로 먹고 살면서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냐"며 최 씨의 얼굴을 때렸다. 이어 최 씨를 잡아끌고 관리실에 가 "사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그날부터 A 씨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A 씨는 수시로 경비실로 와 최 씨를 협박하고 폭행했다. 최 씨는 A 씨에게 맞아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A 씨는 오히려 "내가 (최 씨로부터) 폭행당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최 씨를 위협했다. A 씨는 최 씨에게 "(최 씨의) 폭행으로 수술비만 2천만 원이 넘고 장애인 등록을 해야 한다"며 진단서 사진을 보내왔다. 사고 사유와 진단 날짜가 다 지워진 채였다. 뒤늦게 최 씨의 사연을 알게 된 입주민들이 대책회의를 열고 최 씨를 보호했지만 최 씨는 결국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경비노동자의 불안한 지위가 '갑질'에 취약하게 만들어
12일 민주노총 전국 민주일반연맹, 경비노동자 이만수열사 추모사업회 등은 '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을 구성해 서울 강북구 ○○아파트 입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 A 씨의 엄중한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추모모임은 기자회견문에서 "지난 2014년 강남구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 씨가 입주민의 갑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6년 만에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났다"며 "폭력과 갑질을 일삼은 단 한 명의 입주민으로 인해 자신의 생을 마무리했다"고 통탄했다.
이어 "고령의 경비노동자는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도 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들은 인간으로서 대우받기를 포기한 채 일한다"며 "이번 사태를 단순히 고령 경비노동자의 죽음이 아닌, 이 시대 취약계층 감정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모임은 열악한 경비노동자의 지위가 반복되는 갑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성식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경비노동자는 3개월에 한 번씩 계약서를 작성하고 2개월이 지나면 사직서를 강요받는다"며 "초단기계약에 불안한 고용, 무급휴게시간은 10시간이 넘는다"고 강조했다.
안 센터장은 이어 "24시간 전일제 근무와 일부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 등, 이번 일은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반영한다"며 "지자체와 아파트 입주민, 경비노동자가 다함께 고용안전 협약을 맺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한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며 "경비 노동자들이 낮은 처우와 열악한 지위에 있다보니 갑질을 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개탄했다.
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폭력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최 씨의) 근로조건이 어땠는지 알아보고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수 이만수열사 추모사업회 회장은 "나이 60이 넘어도 일해야 하는 사회다. 마지막 일자리는 경비 아니면 청소다. 고용도 불안해 모멸감과 폭력을 참아야만 한다"며 "최 씨의 외침은 경비노동자의 처지를 바꿔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A 씨는 "폭행 사실이 없고, 주민들이 허위나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A 씨를 출국금지했다. 최 씨의 발인은 이날로 예정됐으나 유족들은 먼저 A 씨로부터 사과를 받겠다며 발인을 14일로 미룬 상태다.
이번 소식이 알려진 후 분노한 누리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관련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요청했다. 해당 요청글에 동의한 이는 12일 오후 4시 현재 16만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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