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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검찰 관료들과 '극중도'의 처세학...가짜 민주주의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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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검찰 관료들과 '극중도'의 처세학...가짜 민주주의로 가는 길

[민교협의 시선] '아랫목이 언제나 따뜻한 법', 극중도의 처세학

‘극중도’(極中道, extreme centre)란 표현을 들은 적이 있는가? 국내에는 같은 제목의 책이 3년 전에 ‘극단적 중도파’란 이름으로 옮겨져 출판됐는데, ‘극우’나 ‘극좌’처럼 아무래도 압축적 표현이 낯설지만 더 매력적이다. 이 번역서의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영국, 더 나아가 유럽과 미국에서 전통적인 좌파 정당들이 ‘제3의 길’이란 미명 아래 계급정치를 포기하고 중도 좌파로 길들여져,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를 야기한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를 비판하고 대안적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양당체제를 통해 중도 우파와 현상의 유지를 공모한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의 파산 내지 난맥이라는 현상을 표상하기 위하여 이 표현을 동원하였다. 여기서 ‘중앙’이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세력관계 속의 합의 내지 균형을 말하며, 그것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이다. 그러니까 ‘극중도’는 신자유주의라는 사회정치체제의 중심축을 절대 교리로 삼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이탈도 허용하지 않는 강경한 정치세력으로서, 흔히 좌, 우파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전통적인 중도파와 다르게 그야말로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전히 ‘극중도’의 정치적 좌표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좌, 우의 이분법이든, 좌, 중, 우의 삼분법이든, 극좌와 극우의 위상은 즉각적으로 드러나며 쉽게 포착 가능하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극우와 극좌는 메울 길 없는 거리와 화해하기 어려운 대조에도 불구하고 ‘극단주의’에서 상통하니 참으로 절묘한 어법이다. 사실이지 좌, 우의 이분법은 대립하는 적과 명확하게 구별 가능한 정체성을 부여해 주면서도 동시에 내부의 차이를 보여주는 유연성에 더해, 좌, 우파가 특정의 내용을 지시하기보다는 정치적 스펙트럼에서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구체적인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뛰어난 적응력을 갖는다. 그렇기에 프랑스혁명이라는 특정 맥락에서, 그것도 230년 전에 탄생했음에도 여전히 전(지)구적인 공통의 정치화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위상학에서조차 ‘극중도’는 손쉬운 좌표 설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도’가 그야말로 좌, 우파 사이에서 ‘균형’이요, ‘중용’이라면, ‘극중도’는 어디에 있는가? 좌, 우의 꼭 중앙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극단적 중앙’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렇듯 그것은 공간화하기가 어려웠기에 후대에 연구자들에 의해 ‘발명’되기까지 ‘극중도파’라는 역사적 실체가 대두하여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을 때조차도 그렇게 불리기는커녕 흔히 ‘절대적 중도’라고 일컬어졌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극중도’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그 탄생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위 번역서의 저자가 명시적으로 인용하고 있듯이, 그 역사적 실체를 발굴하여 지칭하기 위하여 이 새로운 어법을 제시한 사람은 세르나(Pierre Serna)라는 혁명사가이다. 그는 파리1대학교(과거 소르본)의 유서 깊은 ‘프랑스혁명강좌’의 현(10대) 담당자로서, 그 주임교수로는 처음으로 혁명의 상승기(1789-1794)가 아니라 하강기(1794-1799)를 전공한 인물이다. 그는 총재정부기(1795-1799)의 ‘신자코뱅파’로부터 근대 민주주의의 원류를 찾는 과정에서, 공포정치, 테르미도르의 반동,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집권에 이르는 총재정부기의 3번의 쿠데타를 경과하면서 무수한 변절자들이 양산되고 통령정부기(1799-1804)와 제1제정기(1804-1814)에 정치계급의 주축을 이루었음을 확인한다. 더욱 극적이게도 1814년 4월에서 1815년 7월에 이르는 15개월이라는 짧은 시기에 나폴레옹의 폐위, 제1차 왕정복고, 백일천하, 제2차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급격한 정치적 유위전변은 변절과 기회주의를 일상화하고 ‘극중도’가 단지 개인이나 정치계급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규정하였다. 따라서 통령정부로부터 반동적인 극우파가 정권을 장악하는 1820년에 이르는 20년간의 극심한 정치체제의 변화와 무관하게, 그 근저에 ‘극중도의 정부’가 자리 잡고 작동했으며, 이후 프랑스 정치적 삶의 항상적인 틀이 되어 1851년, 1886년, 1940년, 1958년에, 그리고 최근에 마크롱 대통령을 통하여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그 핵심적인 특징은 자기합리화의 논변과 망각의 정치에 입각한 변절주의, 갈등의 정치와 극단주의를 배격하는 탈이념적인 중용의 온건주의,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에 입각한, 기술관료적, 탈정치적, 무(無)민주적인 공화주의이다. 극중도의 발굴은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잦은 혁명과 정치적 위기, 그리고 체제 변화를 통해 드러내온 현란하고 숨 막히는 좌·우의 대결과 충돌 속에서도 사실상 중도정치가 실세였음을, 따라서 예컨대 제3공화국 전반기(1876-1914)에 내각이 49차례나 교체되는 일견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사실상 흔들림 없이 다른 유럽의 열강과 마찬가지로 일관된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음을 웅변하고 설명해준다.

이쯤이고 보면, 우리는 극중도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좌도, 우도 아닌 그 양자의 중간을 정조준하지만, 그 거소는 양자와 동일한 지평의 ‘중앙’이 아니라 현실을 초극하는 성층권의 그것이다. 보나파르트는 1799년에 ‘무월의 쿠데타’를 벌이면서 “나는 (멋쟁이 귀족이 신었던 뒤축이 높은) 붉은 구두도 아니고, (혁명가들이 쓰던) 붉은 모자도 아니다. 나는 국민파이다.”라고 선언했다. 극중도파는 스스로가 파당임을 부정하고 언제나 사회와 국가의 안정을 위한 ‘일반적 이해관계’를 내세우며, 갈등을 부추기는 열정의 분출을 단죄하고 극기와 자기통제를 자신의 정치적 덕목으로 초든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데올로기 갈등과 충돌의 현장을 넘어 타협과 통합의 실용주의로 비상하지만,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해서는 맹목적일 정도로 무감각하다. 반동적이지도, 자본가들의 꼭두각시도 아니지만 경쟁적인 자본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국가권력을 사회적 안정화의 강력한 도구로 간주하기에 권위주의적이고, 그 세계질서를 불변의 전제로 받아들이기에 그 포락선 너머를 훔쳐볼 생각조차 않는 현재주의자이다. 흔히 극중도파는 바람개비 풍향계로 비유된다. 그들은 변덕스러운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렇게 부는 바람 탓이라고 변명하지만, 정작 그 축의 동심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함을 알지 못한다. 참으로 그들은 ‘극중도’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문제로 돌아오자. 세르나는 역사가답게 극중도를 ‘프랑스의 풍토병’으로 규정하여 과잉일반화를 경계하지만, 앞의 번역서의 저자처럼 우리도 추구할 시사점은 없는 것인지 어깨에 힘을 주어보자. 사실이지 내가 얼핏 ‘극중도’를 떠올렸던 것은 지난 5월 초에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과 관련하여 이른바 경제수장이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여당의 ‘전 국민 지급안’에 맞서 ‘소득 하위 70%’라는 ‘소신’을 당차게 내보였던 장면에서였다. 그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필시 ‘재정은 국가 관리의 최후 보루’라는 나무랄 데 없는 일견 초정파적인 명분의 뒷배 덕이었을 것이다. ‘법대로!’를 외쳐대는 검찰이나 법조계의 군상들도 ‘극중도’를 떠올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가상의 ‘빅브라더’를 빚어내 그 눈치 보기에 급급한, 학계, 언론계, 기타 이른바 엘리트층의 고식주의 역시 극중도의 몰골이 아닐 수 없다. 더 근본적으로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고착화한 ‘냉전주의’는 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중도의 ‘38선’ 또는 휴전선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정치판을 협애화하고 있다. 우리가 이 극중도의 부동주의(不動主義)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진짜 극중도체제가, 그러니까 가짜 민주주의가 들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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