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병처럼 번지는 '그린뉴딜'
기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생태계가 파멸적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졌고, 국제사회는 2015년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1.5도 목표'를 설정한 '파리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1.5도 목표'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한 마지막 방어선 같은 의미이다. 이 목표를 지키더라도 산호초의 70~90%가 감소하고, 100년에 한 번꼴로 북극 얼음이 녹아 없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했다. '1.5도 목표'도 안전한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상승 때보다 전 세계 피해자를 1천만 명 정도 줄일 수 있다. 만약 2도 상승이 이뤄진다면, 북극의 모든 얼음은 10년마다 한 번씩 모두 녹을 것이다. 작은 차이에도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1.5도 목표'는 최악을 막기 위한 인류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2050년까지는 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어야 한다. 향후 10년간 온실가스 45%를 감축하려면, 매년 6% 정도의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매우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지난 4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량이 6% 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공장이 멈추자 생긴 변화였다. 우리가 모두 겪은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이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와 경기 침체 등 혼란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정도의 변화를 매년 10년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류에게 닥친 장래가 어둡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기후위기라는 더 큰 재난이 닥쳐온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희망은 있다. 현재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에너지 소비와 산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향상, 산업공정 개선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경제적이지 않다거나 기존 화석연료 사용에 비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 난방 문제이다. 신축 주택보다 오래된 주택의 난방비가 더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은 '패시브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는 주택도 많이 건설되고 있다. 기존 주택도 창틀과 단열 공사만 진행해도 적은 연료비로 더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 기술이 없어 춥게 사는 것이 아니다. 집수리 비용이 없거나 집주인이 수선을 해주지 않는 등 이유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춥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켜왔다.
전기차, LED 조명 보급이나 오래된 가전기기, 산업용 전동기 교체 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됐으나, 그 속도는 너무나 더디다. 농작물 생산에서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는 방안은 끊임없이 제안되고 있으나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규모 공적 투자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자는 '그린뉴딜'의 기본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했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 사회적 불평등 증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공적 투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대규모 공적 투자는 단순히 기기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과 산업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시스템 변화를 통해 인류의 생활 방식과 사회제도까지 바꾸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암울한 인류의 미래는 개선될 수 있다. '그린뉴딜'은 그중 가장 강력한 해결책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경기 활성화 목적까지 덧붙여지면서 바야흐로 '그린뉴딜'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동상이몽 속에 진짜 '그린 뉴딜' 찾기
우리나라에서 '그린뉴딜'이란 말이 확산된 것은 작년이다. 21대 총선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에서 먼저 제안된 그린뉴딜 정책은 더불어민주당 공약에도 포함되었다. 이후 코로나19 대책으로 나온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이후 정부 부처들은 너도, 나도 '그린 뉴딜' 사업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이 공개되지 않아 상세 내용을 알기 힘들지만, 환경부와 국토부, 산업부 등이 중심이 되어 재생에너지 보급과 건물 리모델링, 전기차 보급 사업 등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기후 악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우리나라가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OECD 꼴찌 수준인 재생에너지 보급률과 에너지 효율, 엄청난 미세먼지에도 계속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등을 극복할 방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린뉴딜'이라 불리는 사업들은 과거에도 모두 진행되던 사업이다. 따라서 사업명만 갖고 '그린 뉴딜' 정책을 평가해서는 원래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히 '그린뉴딜' 정책이란 말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그린뉴딜 정책을 구분해내고 제대로 된 그린뉴딜 정책을 끌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그린 뉴딜 정책을 제안한 애초 취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그린 뉴딜의 다양한 사업은 모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혹은 경기 부양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여하는 것은 그린 뉴딜이 아니다. 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사업은 표류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가 권고하고 있는 '탄소 순배출 제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그린 뉴딜은 단순한 경기 부양 사업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이 그린 뉴딜 사업을 주도한다는 기본 원칙이 명확해야 한다. '뉴딜'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민간부문 활성화를 꾀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적 자금 투입 이후의 이야기이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전력시장 일부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간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있어 공기업과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역할은 축소되어왔다. 이를 정립하는 과정이 그린뉴딜 정책 추진과정에서 함께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재정과 기금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린뉴딜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겠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진다면, 그곳의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최근 두산중공업 사태에서 보듯 석탄화력발전 설비를 만드는 기업과 그 하청기업, 지역사회가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세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유럽 집행위원회의 그린 딜 계획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함께 설계하고 전체 예산의 10% 정도를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의 그린 뉴딜 계획은 이보다 폭넓은 고민과 계획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언급되고 있는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중소기업부만 갖고 그린뉴딜을 완성할 수 없다. 당장 재원을 마련할 기재부는 물론이고, 농업 분야를 담당할 농림부, 지자체의 계획을 담당하고 지원할 행안부가 포함되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짐을 고려할 때 그 외 부처들도 아우르는 범부처적인 형태로 그린뉴딜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특별법이 마련되고 범부처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뉴딜 계획은 한두 해의 계획으로 완성될 수 없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뿌리 깊게 만들어진 화석연료 중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 10년 계획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함께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보다 더 큰 위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놓고 볼 때,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측면에서 볼 때도 기후위기 문제는 단순히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기존 대기업이나 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 엄청난 영광을 누리던 석탄산업이 무너졌던 것처럼 이제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이 점차 무너지고 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산업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린뉴딜 계획을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정책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언제나 상처를 입는 것은 사회적 약자였다. 거대 자본이 선도하는 변화의 흐름에서 노동자, 중소상공인, 지역사회의 충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50~60년 전에 활동했던 마부와 타자수, 활자공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기후위기를 막고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일에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이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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