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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정부 '원격 의료' 미끼를 물다

"원격의료는 미끼, 진짜 목적은 의료데이터 활용"…'재난 자본주의' 우려

문재인 정부 고위관료들의 입에서 잇달아 "원격의료" 관련 발언이 나오고 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지난 13일 여당 워크숍에 참석해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긍정적 평가도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관련 기사 : 靑, 재난 시기 '비대면 진료'와 영리 목적 '원격의료' 구분 못하나?), 14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도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고 힘을 싣고 나섰다.

김 차관은 이날 '코로나19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기재부는 비(非)대면 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면서 "최근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 한시적 조치가 비대면 의료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차관은 "이런 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판 뉴딜 10대 중점과제' 중 일부로 이미 시행 중인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 그리고 코로나를 계기로 새로 한시적 도입된 시범사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를 보강하고 확대하는 내용이 지금 구상 중에 있고 구체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차관은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를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 등 법·제도적 측면의 기반도 필요하다. 의료계 등이 우려하는 책임소재 문제, 보험수가나 양극화 등에 대한 보완적 제도 개선도 병행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 문제는 21대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고까지 했다.

김 차관이 언급한 '한국판 뉴딜 10대 중점과제'는 지난달 29일 경제중대본 1차 회의에서 도출된 것으로, 정부는 이 자료에서 "코로나19는 디지털 헬스케어 발전, 온라인교육·무인유통·식품전자상거래·원격근무 등 비대면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전망"이라며 "보건의료·헬스케어, 전자상거래·물류 등 분야 핵심 규제 혁신으로 비대면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했었다.

특히 이 자료상의 '10대 산업분야 중점과제'에는 "의료데이터 활용 확대, (인체) 폐지방 재활용 허용, VR·AR 의료기기 품목 신설" 등의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으며, '65개 추진과제'에는 "의료 데이터의 가명처리 활용으로 서비스 품질 제고"라는 항목 하에 "①의료 데이터 유형별 가명처리 절차·방법, 안전조치 등을 규정한 '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2020년 8월), ②환자 기록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가명처리된 이후에는 의료법 제21조 적용대상이 아님을 보건복지부 지침(의료기관 개설 및 의료법인 설립운영 편람) 개정을 통해 명확화(8월), ③가명정보를 활용하는 연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 면제에 해당하도록 가이드라인 개정 배포(동년 하반기)"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정신과·산부인과·비뇨기과 등 민감성이 높은 진료기록, 유전정보, 희귀질환 정보, 성병 정보 등 의료 데이터의 경우 민감성이나 재식별 가능성이 높아 가명처리 가능한지 논란(이고), 의료법·생명윤리법 해석 문제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같은 방안을 통해 "의료 기록, 유전정보 등 다양한 의료 정보의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AI 헬스케어' 등 신산업 육성 및 보건서비스 품질 제고"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겠다"면서 "(한국은)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거래, 방역과 바이오산업 등 포스트 코로나 산업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의료, 교육, 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며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의료와 교육의 공공성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충분히 지켜질 수 있도록 조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주의할 점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긴급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도입된 '비대면(전화) 진료' 허용 방침이 △의료정보 가명화를 통한 빅데이터 체계 구축 △인체 폐지방 재활용 등 그간 보건의료계가 우려하던 비판해온 사업들과 뒤섞여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시민들이 병원 방문진료를 꺼리는 것을 명분으로 '의료 영리화'의 둑을 허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이날 <프레시안>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틈타 '비대면 진료가 감염을 막는 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원격의료를 전면화하려는 분위기를 (정부가) 조성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 기획실장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은 당연히 부인하지 않지만, 이를 원격의료 도입의 명분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나 실장은 특히 "원격의료·비대면진료뿐 아니라, 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앞으로 의료 분야를 신성장산업으로 삼아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의료산업기기 규제 완화 등을 언급했다"고 지적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공의료 확산 등의 좋은 대책들도 나오는 반면, 의료 산업화·영리화 등 국민들의 반대에 묶여 있던 정책을 전면 추진하는 계기가 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굉장히 크다. 보건의료계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고, 전문가 워크숍도 여는 등 강력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우석균 대표도 정부 고위관료들이 잇달아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를 언급한 데 대해 "당황스럽다"며 "코로나라는 재난을 활용해서 '재난 자본주의' 식으로 (규제를) 푸는 것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원격의료, 왜 문제인가

보건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이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격오지 환자' 등을 명분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때마다 의료계가 반복적으로 지적해온 내용들이기도 하다.

첫째,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의료진의 진료가 아니라, 환자가 전화·영상을 통해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처방전을 받는 것은 오진이나 과잉진료의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우석균 인의협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하는 나라는 호주,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소수이고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미국 정도"라며 "호주는 항공의료서비스로 의료진이 (환자에게) 가서 진료를 할 때 해당 의사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진료를 전공의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고, 일본에서는 '너싱홈(요양원)' 환자들 안부를 묻는 정도인데 그것도 상주하는 간호사들이 있으니 '의료인 대 의료인'의 원격 진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진 간의 원격 진료는 현재 한국에서도 허용된다.

우 대표는 또 "노르웨이 등은 겨울에 극지방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겨울에만 하고 있고, 영국은 500~1000명 단위의 시범 사업만 10년째인데 여전히 신뢰성이 확보가 안 돼서 10년째 (전면화를) 못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유일하게 하고 있는 미국은 경증 환자에게만 원격 진료를 허용한 것이고 그나마 인트라넷을 통해 하도록 돼있다. 온라인을 통해 환자의 개인정보가 전송되는 것은 미국 법에 의해도 불법이고, 그게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대표는 "미국은 병원비가 워낙 비싸서, 한 번 병원을 가면 몇천 달러씩 병원비가 드는데 원격 진료를 하면 200달러 내외가 드니 경증에 한해 허용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하면서 "그조차도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처방하는 등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 연구 보고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전화 등을 통한 원격의료가 허용될 경우 3차 병원인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져 '동네 병원' 중심의 공공의료체계가 붕괴할 위험성이다.

우 대표는 전날 김연명 수석이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상담 진료가 17만 건'이라며 이를 원격의료 도입의 명분처럼 언급한 데 대해 "그것은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반영한 것이지 (원격진료의) 명분이 아니다. 미국처럼 의약품 택배 서비스는 안 되니 어차피 (진료를 어디서 보더라도) 약을 받으려면 약국에는 들러야 하지 않나. 동네 의원을 방문하는 것과 (감염성 위험 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우 대표는 "감염 예방 면에서도 동네 병원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 가는 것은 막고 돌려보내야 한다. 대형 병원이 북적대는 것은 더 위험하다"면서 "그게 맞는 방향이지 '(대형 병원의 환자 수요를) 원격으로 풀겠다'는 것은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셋째, 본격적인 원격의료를 위해서는 환자의 건강상태, 병력, 투약 내력 등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산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민감한 개인정보인 의료·건강정보가 축적돼 산업적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최악의 경우 유출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입으로는 '비대면 진료'를 말하면서 손으로는 '의료데이터 활용 확대'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는 상황은 이 우려를 심화시킨다.

우 대표는 정부 당국자들이 잇달아 '비대면 진료'를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전화 진료를 허용하려는 게 아니라 개인정보의 빗장을 푸는 게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면서 "원격의료는 미끼 상품 아니겠느냐"고 의혹 어린 시선을 보냈다. "'원격의료 인프라'를 운운하면서 의료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 대표는 정부의 한국형 뉴딜 사업 '3대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사업의 내용을 보면 "데이터경제 가속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활용 기반 구축", "마이데이터 서비스 플랫폼 구축 및 의료 데이터 활용전략 마련" 등 방안(4.29, 기획재정부 '비상경제중대본 1차회의 결과' 자료에서)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되면 결국 보험업체 등 민간에서 공공정보나 병원정보를 다 받을 수 있게 된다. 가명화(익명화)를 한다고 하지만 금융정보와 결합되면 개인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결국 민간 보험료가 대폭 오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 대표는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4대 공공기관이 축적한 데이터를 개방하는 것은 가명화를 한다고 해도 너무 위험하다. 여기에는 (건강보험비 산정을 위해) 개인의 재산 정보, 즉 아파트가 전세인지 자가인지, 자동차는 뭘 모는지, 또 신용카드로 어느 약국에서 무슨 약을 사먹었는지 등도 다 포함돼 있다"며 "예를 들면 내가 보험에 가입하려고 하는데 '○○생명'에서 내 병원 정보를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기업에 넘기는 것을 '인프라 확대'라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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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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