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각 나라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가 도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경제전망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 : '미국 GDP 34% 폭락에 실업률 15% 이상 될 수도')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래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최고를 기록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코로나 19 사태로 전 세계 노동 인구 중 81%가 직격탄을 맞았으며, 2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경고했다.(☞ 바로 가기 : 'COVID-19 and the world of work') 감염성 질환의 영향이 환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부 효과'는 감염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직과 해고에서도 이러한 영향이 나타난다. 원치 않게 일자리를 잃은 당사자들은 물론, 그 아픔을 함께 지켜본 동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역학과 지역사회 건강>에 발표한 것으로(☞ 바로 가기 : '해고, 그리고 남겨진 노동자들의 정신건강과 안전: 미국 알루미늄 산업의 이중차분법 분석') 내 옆에서 일하던 동료의 빈자리가 나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량해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여러 측면에서 불안정성을 경험한다. 첫째, 자신의 고용상태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아진다. 둘째,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해고되는데도 동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 마지막으로 (해고 이후에도 생산량이 이전과 다름없다면) 동일한 시간에 더 심한 노동 강도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의 알루미늄 제조 공장에서 대량해고라는 사건을 두고 동일한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이중차분법 분석을 실시했다. 분기별로 시간제 근로자 규모가 20% 이상 감소했을 때 대량해고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대량해고 1년 전과 대량해고가 있었던 시기에 노동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외래 이용 및 의약품 처방), 직업성 손상(사고성 산업 재해) 추이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대량해고는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직업성 손상을 0.6% 감소시킨 반면, 정신건강과 관련한 외래 이용과 의약품 처방을 각각 1%, 1.4% 증가시켰다. 보수, 승진, 업무량 할당에서 남녀 간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성별로 구분해본 결과,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외래 이용이 1.7%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대량해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이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살아남은 자'들의 불안정성을 보여준 것이다. 직업성 손상의 발생이 감소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을 시도했다. 먼저 대량해고가 일어나는 시점에는 작업장에서 바짝 경계하는 노동자들의 태도가 직업성 손상 발생의 가능성을 낮추었을 수 있다. 또는 직업성 손상을 겪었어도 자신도 동료들처럼 해고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문제를 보고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의약품 처방 중에서도 특히 진통 마취제(opioid) 처방이 증가한 결과는 대량해고 기간 동안 직업성 손상을 보고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진통제에 의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직장인 중 80%가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일시적 해고 금지'에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지금의 위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관련 기사 : '직장인 10명 중 8명...코로나 사태 가장 공감하는 건 '해고 금지'') 1997/98년 금융위기 당시 대량해고와 실직의 아픔을 일찍이 경험한 한국이지만, 안타깝게도 감염병 재난 앞에서 그 아픔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련 기사 : ''코로나 해고' 마주한 위기의 노동자들...슬픈 노동절 풍경')
오늘 소개한 논문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경제 위기가 쏘아 올린 실업과 해고라는 화살이 지금 당장 나를 비켜 갔을지라도, 나의 건강과 안녕에 여전히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위기는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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