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뉴딜을 희망하던 이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코로나19 사태와 대응 경험을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좌절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큰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맑은 공기와 자연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고, 불필요하게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줄여도 큰 지장이 없음을 깨우쳐 주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들이 위축된 경기와 줄어든 항공여행 수요가 제주 제2공항과 흑산도 공항 같은 논란 많은 토건사업을 잠재우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며칠 새 정부의 발표들은 한국형 그린뉴딜이 과거의 경기부양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경제 정책의 되풀이 임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과감한 사회 '계약(deal)'도 없고 그럴싸한 '새로운(new)' 사업도 없다는 비난이 속출한다.
지난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2차 비상경제중대본 회의에서 그려 보인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경제 디지털화 가속과 비대면화 촉진 등에 중점을 둔 디지털 기반 일자리 창출, 경제혁신 가속화 프로젝트 집중 추진 등에 방점을 뒀다. 이는 기존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성 뉴딜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 디지털화는 뭔가 새로운 게 아니라 주요 대기업들이 펼치는 사업들에 대한 지원을 더 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추가 창출이 가능할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규제 완화와 재벌들의 요구 수용이 더 구체적인 결과일 것 같다. 부총리는 "전례 없는 위기의 극복은 물론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한발 더 앞서고 한 치 더 내다보는 선제대응이 매우 긴요하다"고 말했지만, 반발자국 디디는 것에 안주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도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린뉴딜 개념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처음 등장했다가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사이에서, 그리고 유럽연합(EU)의 '그린 딜'과 같은 형태로 보다 급진화하는 정책 구상 패키지다. 용어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 더욱 크게 다가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제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고 에너지 전환과 일자리 전환을 함께 추진하자는 제안들이다. 겨우 한 달 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공약에도 포함되어 있던 게 그린뉴딜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뉴딜에서 '그린'은 실종되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대해 반발하거나 토를 달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 대응과 회복이 너무 급박하여 '그린'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할 수도 있고, 그린뉴딜 같은 심도 있고 총체적인 기획을 배제한 경기부양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청와대와 집권여당에서 그런 논쟁과 숙의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린뉴딜 논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십분 공감하더라도, 필자는 고약하게 되묻고 싶다. 기존의 경제 틀거리와 산업 구조의 큰 변화를 전제하며 국민에게 상당히 다른 삶을 요구하게 될 정책 패키지를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꺼내들 수 있었을까? 지난 2년 동안 또는 총선 전후로 집권 세력 내에서 기후위기와 뉴 노멀에 대한 어떤 심각한 논의나 준비도 없었는데 그럴 수 있었을까? 그린뉴딜을 지지하고 전환에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사회 세력이나 운동이 일반 국민과 정치인 및 관료들한테 어떤 압박감을 주지 못하는 데도 그럴 수 있었을까? 177석의 절대 숫자와 71퍼센트의 3년차 대통령 지지율은 그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조건일까, 아니면 오히려 제약 조건일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이라는 멀지 않은 참고 사례가 있다. 문 대통령의 당선 한 달여 만에 고리 1호기 영구정지가 대통령 연설을 통해 발표되는 등 기정사실화된 탈핵 정책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고사하고 대통령을 제외한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서도 탈핵의 의지는 미미했고 지금도 그렇다. 2080년대까지 이어지는 핵발전 가동, 그리고 다가올 몇 년 사이에 오히려 늘어나는 핵발전소 숫자, 그러면서 각종 가짜뉴스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이 별로 없는 산자부와 여당, 탈핵을 준비하고 뒷받침할 정책 연구와 입법 노력의 부재. 이런 상황들이 21대 국회에서 달라질 조짐은 아직 없다.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로 선물처럼 주어진 탈핵은 뒷심을 갖지 못하고 내실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신울진 3, 4호기나 맥스터 증설 같은 사안에 대한 집권여당의 당론은 무엇인지조차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물론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을 압박할 만한 전국적 탈핵 대중운동도 전개되지 못했다.
여당이 총선 정책공약마저 방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고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군지 알기도 어렵고 국민이 선출한 적도 없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기재부 관료들이 핵심 정책과 계획을 실제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 정치제도의 맹점도 돌아봐야 한다. 지금 같아선 집권여당도 자신의 정책에 대한 효능감과 책임감을 갖기 어렵고, 이른바 '민의'를 등에 업고 큰 개혁을 준비하기도 어렵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몇십 년을 의지해온 개발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는 코로나19만을 계기로 극복할 게 아니다. 바이러스만큼 변이를 일으키는 유사 논리와 핑계거리는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선물로 주어지는 그린뉴딜은 없다. 선물의 목록과 구성까지 챙기는 사회운동이 분출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담론을 채우지 않고는, 결국 우리는 엉뚱한 내용물이 담긴 녹색 포장을 받고 오히려 당황하며 손발이 묶이게 될지 모른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나마 녹색 전환의 사회계획에 내용과 긴장감을 불어 넣은 것도 그런 운동과 담론이었다. 대통령과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도 겁을 내고 어떻게 수를 낼지 고민하게 만들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버니 샌더스나 몇몇 유럽 국가 총리들의 사례처럼 정치인이 나서면 더 큰 변화가 더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유명 정치인들과, 제도와, 조건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불신하는 게 먼저다. 지금 '그린' 뉴딜의 실종 사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