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역구 의원 탄생을 바라보는 논쟁적 시각들
21대 총선을 통해 북한이탈주민 정치인 2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탈북의원은 이미 19대 국회에 처음 나왔지만 당시에는 비례대표였다.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아 직접 지역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이 아직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대치하는 현실에서 탈북정치인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지고 향후 한국정치와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크든 작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기 쉬운 북한이탈주민의 국회 진출을 대견해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극복의 계기로 받아들이고 북한주민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한국사회 적응에도 힘겨울 북한이탈주민이 복잡 미묘한 정치문제나 지역현안을 다룰 만한 경륜이 준비되어 있을까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민감한 군사안보 정보를 다룰 국회 상임위원회 직책을 맡기에는 시기상조라거나 남북갈등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킴으로써 우리 안보에 불안감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들이 제기한 '김정은 위중설 혹은 사망설'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다가 결국에 가짜뉴스로 판명되면서 국회의원 자질 논란이 제기된 것은 위와 같은 부정적 우려를 직접 자극하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적대국의 망명자를 유권자들이 자국의 정치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30여 년 전 남한 외무부장관 출신이 북한으로 망명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하였고 같이 망명한 그의 부인은 4선 대의원을 지낸 적도 있지만,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선출을 가장하여 자리를 준 것과 유권자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한 것을 비교할 수 없다.
북한이탈주민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그를 자신의 대표로 선출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의 정당정치 지형과 해당 지역구 정치성향을 가지고 여러 논란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주의 선거에서 유권자 선택에 무게의 차이를 둘 수는 없다.
북한이탈주민의 실존적 현실과 냉전적 사고에 의한 편견
대다수 북한이탈주민들은 기본적으로 남북 분단구조의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냉전 대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그 같은 행동이 오히려 냉전 대결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탈북동기가 여하하든 냉전 이데올로기보다는 실존적 요구에 의해 분단구조에 순응하지 않고 그 질서에 틈을 내고 저항한 사람들로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
남북 간 이동의 자유와 가족 재결합은 분단 이래 금기(禁忌)였다. 이동의 자유와 가족 재결합은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이지만 분단체제 하의 냉전 정치는 그것을 일관되게 무시해 왔다.
북한이 식량난을 겪는 시기에 많은 탈북자가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이들은 부지불식중에 국경과 함께 냉전적 분단질서의 금기선도 몸으로 뚫고 나왔다. 최근에는 가족 재결합을 위해 냉전의 금단선을 또다시 넘어 북한으로 돌아가는 탈북자들도 수십 명이나 생겨났다.
탈북자의 남북한 경계 넘기를 냉전 시각에서 단순하게 바라보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탈북자가 분단의 금기선을 넘을 때마다 한 쪽은 환영하고 다른 쪽은 배신감을 느끼는 냉전 관점에서는 이들의 절실한 실존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의 보편요구와 실존적 관점에서 탈북자의 경계 넘기를 바라보면 탈북과 재입북 현상을 남북의 어느 한 쪽 편들기가 아니라 분단냉전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 그들은 분단체제의 희생자이면서 이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일탈자들인 것이다.
경계 넘기보다 더욱 중요한 현상은 경계 양쪽에 있는 사람 간의 연계와 연결을 통해 사회변화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은 엄중 감시 하에 있는 북·중 국경을 넘나드는 연결망 속에 돈과 정보를 유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북한사회는 변화의 요인과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동시에 남한의 냉전적 정치 유산에 도전하는 뜻밖의 결과도 수반한다. 이들이 은밀히 시도하고 있는 재입북은 물론 재북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이나 전화 연락도 엄밀하게는 남한의 냉전적 금기를 깨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는 탈북자보다 훨씬 많은 전쟁실향민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분단 이래의 엄중한 냉전질서를 오랫동안 체화하고 있어서 분단 금기와 경계 넘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탈북자를 향한 편견의 이면에는 반공적인 냉전질서의 오랜 관습, 대북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우월의식과 천민자본주의적 행태, 무한경쟁 사회의 소외와 배제가 있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는 한, 한국 주도의 일방적인 통일이 전개된다면 북한주민의 저항은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과 국민이 상호 소통하고 이해를 높여 서로 변화하는 결과를 만드는 일은 통일준비와 직결되는 문제이면서 우리 사회문화와 의식을 선진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정부가 많은 인력과 재원을 들여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업을 하는 이유다. 탈북자 지원정책의 목표는 분단 냉전질서 강화에 있지 않다. 탈북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의 직책을 분단구조 하에 누리던 기득권을 연장하는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북 대결의식 고취나 긴장 조성을 통한 냉전구조 재강화이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희생을 강요했던 굴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남북 주민들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북한 이탈주민들의 남한 생활 안착과 갈등 해소에 앞장서는 일이다.
한국정치의 냉전적 구태 탈피를 가름할 시금석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북한이탈주민을 공천한 이유와 의도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극복보다는 냉전적 관점에 입각해 정부 여당의 남북화해협력 정책기조를 비판하고 흠을 키워 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장하기 위한 것임이 명백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이 최근 탈북정치인들의 '김정은 사망설'이 가짜뉴스로 판명난 것을 기화로 이들의 국회의원 자질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입장도 그 이면에는 결국 뒤집어진 냉전적 사고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는 정치적 진영을 나누는 간편하고 최종적인 기준이 되어왔다.
정치적인 토론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피아(彼我)의 식별이 애매해지거나 여론전이 요구되면 어김없이 색깔론이 등장하여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논리와 남북문제에 대한 남남갈등은 한국정치에서 민주적 토론을 무화(無化)시키는 블랙홀이자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이념적으로 박제화되어버린 철지난 냉전적 논리와 관점을 극복하는 일은, 남북관계는 물론 왜곡된 북한이탈주민의 실존적 현실과 요구를 바로 보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해소하고 민주적 정치발전을 도모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탈북 정치인들이 한국정치의 병폐인 냉전적 진영 싸움에 이용당하거나 이에 자발적으로 가담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또한 우리 정치권도 북한이탈주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진영논리의 한 축에 서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이탈주민 다수의 국내적 이익을 대변하고, 남남갈등을 해소하며 진정한 남북화해와 평화 구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결국 탈북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우려를 불식하고 긍정적인 기대를 현실화 시키느냐의 여부는 탈북정치인 당사자의 과제일 뿐더러 한국정치 전반의 발전과 퇴보를 가르는 시금석의 하나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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