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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의제 강간(擬制 强姦)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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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의제 강간(擬制 强姦) 유감

아내와 조반을 먹는 중에 뉴스에 의제 강간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의제 강간이라는 말 알아요?” 하니 아내는 “처음 듣는 말인데……”라고 하며 말끝을 흐린다. 허참!

한국어학과 교수 둘이 앉아서 ‘한국어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일반인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필자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사전을 펴 본다. 의문이 나는 단어나 문장은 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서전을 통해 익히는 것이 습관이다.

우선 ‘강간(强姦)’은 “폭행 또는 협박 따위의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람을 간음함, 또는 강제적 수단을 써서 불법적으로 어떤 목적을 실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과거에는 강간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에 와서 ‘성폭행, 성추행’ 등의 용어로 바뀌면서 필자도 잘 모르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필자는 아직도 성폭행과 성추행의 정확한 의미 구분이 어렵다. 다음으로 ‘의제(擬制)’의 뜻은 “(법률용어)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동일한 효과를 주는 일. 민법에서 실종 선고를 받은 사람은 사망한 것으로 보는 따위이다.”라고 되어 있다. 참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까 “강간이 아닌 것 같은 간음(화간?)인데 강간으로 본다.”는 말인 것 같다. 요즘 뉴스에 ‘박사방’인가 뭔 방으로 이상한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닉네임(?)과 알 수 없는 용어들로 인해 타국에 온 느낌이다. 차라리 뉴스를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의제강간에 대해 더 알아보자. 사전에 의하면 “강간과 동일하게 간주되는 성행위.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만 13세 미만의 아동과 성행위를 할 경우에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고 되어 있다. ‘법률’ 용어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서울 OO경찰서는 12일 같은 집에 세들어 사는 여중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OOO 씨를 미성년자 의제 강간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연합뉴스 1996년 7월)

12세 이하 청소년 성폭행 시 적용되는 의제 강간의 경우 피해자 연령을 현재보다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80%나 됐다. (연합뉴스 2002년 7월 )

법무부가 미성년자와 성관계시 상대방의 동의가 있더라도 강간죄로 처벌하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 기준 연령을 만 13세에서 16세로 높인다고 17일 발표했다.(디시인사이드, 2020.4.17.)

그러니까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것에 대한 내용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면 화간이든 준강간이든 폭력에 의한 강간이든 모두 강간죄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거기에다가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기준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조정한다는 의미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참으로 슬픈 감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일단은 성범죄의 연령이 지나치게 낮아진다는 것이 부끄럽다. 박사방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 이제 막 청소년을 지난 사람이나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청년, 군에 복무 중인 청년 등이 연관되어 있다. 이들이 정녕 이토록 해 가는 사회의 주인공들인가 하는 것에 슬프고, 다음으로 한국어학과 교수로서 이해할 수 없는 법률용어의 난해함에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물론 한자어를 보고 나서 의제강간이 무슨 의미인 줄 알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한자어보다는 한글에 익숙한데,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법률용어는 조금 어렵게 해야 사람들이 알 수 없고 특권층의 용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칸트가 어려운 말을 만들어 써서 현학을 과시했다고 하더니 우리나라의 법률가들이 어려운 용어를 좋아하는가 의문이다. 또 하나는 필자도 한자어교육을 강조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는 이제 한글로 바꿔도 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요즘은 완곡어법이 잘 발달해 있다. “우리 회사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당신 해고야.”와 같은 것들이다. 강간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성폭행’이라고 바꿨다. 의제강간도 완곡하게 ‘성폭행과 동일범’이라고 해야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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