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4.15 총선에서 보인 민주당의 압승은 아마도 절정에 오른 터닝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명령’으로 환골탈태한 민주당의 정치활동이 2016/2017 촛불혁명을 계승할 수 있는 주권자 정당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17년 8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위원장 최재성)가 공식 출범했다. 민주당에 이런 위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정발위는 이후 24차례의 전체회의, 3차례의 워크숍을 가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018년 12월 8일 정발위는 의원총회에 정당발전혁신안을 제출한 뒤 12월 12일 활동을 끝냈다.
당원 주권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 제대로 된 대의제 강화, 당원 자치회 중심의 상향식 의사결정, 국회의원 특권 대폭 축소, 선출직 공직자와 당직자의 민주주의 시스템 공천 등 정발위 혁신안은 한국 정당 역사상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혁명에 가까운 안이었다.
그러나 이 혁신안은 12월 29일 최고위원회(대표 추미애)와 2018년 1월 17일 당무위원회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주요 조항이 삭제되거나 수정되고 말았다. 급기야 2018년 2월 5일 최재성 위원장은 국회 정당혁신 토론회 발제문 배포를 통해 혁신안이 아무런 내용 없는 누더기가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원안 재의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야심찬 민주당의 혁신안 시도는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주권자 백년정당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이 시점이야말로 민주당 쇠락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에 가려진 문정부와 민주당의 무능
지금 과연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공약 가운데 제대로 실행된 것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재벌개혁은 초장부터 실종돼 이제는 아예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노동개혁도 실종된지 오래고 전교조 합법화조차 안하고 있다. 관피아 적폐 척결과 검찰개혁은 자신들이 임명한 윤석열 정치 검찰총장에 의해 거의 대부분 부정되고 오히려 청와대까지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엄연히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있음에도 검찰과 경찰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싸우고 있으면서 행정부 내 갈등 관리조차 못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법개혁은 아예 의제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지금은 코로나19에 가려있지만 문재인정부도 별 수 없는 토건정부임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문정부는 초기 2년간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이 약 53.7조원으로 이명박 정부 5년의 60.3조에 육박함으로써 이명박보다 더한 토건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
2018년 꿈만 같았던 남북관계 개선은 여전히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에 버금간다는 현실만 도드라지게 하고 말았다. 엄청난 국민 세금으로 미국의 무기만 시시때때로 구매하고 트럼프의 트위터 눈치만 보는 한국 정부의 무능과 일제 시기를 방불하는 친미파 관료들의 숭미 사대주의만 부각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나마 문정부가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매우 신속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한 것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민주당은 4.15총선에 압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문정부와 민주당의 사회경제 정책을 보면 비상재난국가의 운영을 민주당에 맡긴다는 것은 재난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린뉴딜도 아니고 오직 경제성장과 개발의 뉴딜을 하겠다는 문정부의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라 오히려 기후위기를 조장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진영 구도를 바꿔야 한다
정치의 진영 논리는 상수다. 흔히 진영논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정치는 견해가 같은 사람들이 뭉쳐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다툼을 벌이는 그 대립과 투쟁, 조정과 타협 바로 그 자체다.
지금까지 한국 정당정치의 상수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갈등이었다. 6.25동란 이후 사회주의가 금기시되던 한국에서 1987년 6월항쟁까지의 정치 진영은 민주와 독재였다.
그러나 이제 이런 보수-진보 진영이 재편될 시점이 왔다. 비상재난국가의 등장 이후로 정치 진영은 이제 개발과 성장 진영과 연대와 공생 진영으로 바뀌어야 하고 바뀔 것이다. 코로나 비상사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무너지고 국가의 성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주체는 지역의 풀뿌리 주권자이다. 조만간 가시화 될 수밖에 없는 기후정치는 기존의 보수 진보 진영을 강력하게 흔들어 헤쳐모여 재편하는 새로운 진영 구축의 사회운동 정치일 수밖에 없다.
계급과 녹색 정치에서 지역과 기후의 연대정치로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계급의식과 계급 정치는 여전히 주요한 정치 요인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정치가 정당 정치의 핵심 의제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구소련의 현실 사회주의는 거대한 실패로 끝났다.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만 계급을 구분하는 낡은 분류도 현실과 동떨어진 도그마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플랫폼 노동자 등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사이의 계층 단절이 계급 단절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의제 정치 자체가 전세계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변화의 움직임이 도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물론 정치는 수많은 요인에 의해 생물체처럼 변화하기 때문에 아무도 정치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다. 나치당과 같은 혐오와 배제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비상재난국가 체제로서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일본과 미국, 러시아, 브라질, 터키, 필리핀 등과 유럽의 정치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에서는 당분간 그런 혐오와 배제의 국가주의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대와 경쟁 지상주의가 만연한 나라에서 촛불의 비폭력 평화연대가 주권자의 정치력으로 등장하고 사회와 정치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 주권자의 민주주의 리더쉽은 평가받을 만하다.
풀뿌리 지역 정치운동의 출발점, 주권자 민주주의
한국에는 정치운동의 독특한 역사와 뿌리가 존재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나라를 구한 주권자들의 치열한 투쟁과 사회정치운동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수군과 함께 전국 각지의 의병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찌감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이순신 수군의 승리는 육지 의병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동학농민혁명과 만민공동회, 3.1운동 같은 인민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은 지체되었을지도 모른다. 1953년 휴전으로부터 채 7년도 되지 않은 반공 정신병동의 사회에서 나이어린 중학생들에서부터 4.19혁명이 촉발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한국 주권자들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덕분이다. 그리고 바로 엊그제같은 2016/2017 촛불혁명이야말로 불가역의 공화국 주권자 정치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주권자들 앞에는 제7공화국 건설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각자도생과 경쟁의 산업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함께공생의 연대와 지역순환 경제를 통해 코앞까지 와 있는 기후재난을 극복할 비상재난국가, 거대한 문명 전환의 제7공화국은 오직 주권자 민주주의의 정치력으로만 가능하다.
기업과 국가의 정치에서 주권자의 정치로
기후위기의 주범은 명백히 정부와 기업이다. 온실가스 배출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1위인 포스코 등 사기업이 5개이고 2위인 한국남동발전 등 공기업이 5개이다.
포스코 한 기업에서만 2017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3%를 배출한다. 상위 10개 기업의 배출량은 매년 50.8~53.3%에 이른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96개 기업의 배출량은 자그마치 87%에 이른다.(한국 기업지배구조원, 국내외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 2019. 6. 20.)
겨울철 내복 입기, 스위치 끄기, 개인용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냉난방 온도 조절, 대중교통 이용하기, 지구의날 10분 소등 행사 등 국민행동지침은 한마디로 정부와 기업이 자신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아주 비열하고도 교활한 속임수 홍보일 뿐이다.
한국의 대의정 정치는 사회주의 일당 독재 정치나 서구의 소수 엘리트 대의정과도 다르다. 현실의 대의정 정치체제 아래에는 분출을 기다리고 있는 주권자 직접 민주주의의 거대한 용암이 들끓고 있다.
전환의 정치, 문제는 주권자의 조직된 정치력이다
새로운 풀뿌리 지역 정치의 리더쉽은 주권자를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능동의 촉진자 리더쉽이다. 결코 몇몇 잘나고 똑똑한 엘리트 정치인들을 양성하는 피동의 정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의제 엘리트에 의한 거대한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한국의 주권자들은 똑똑히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3.5%의 주권자가 나서야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시간차를 두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시민사회운동의 경험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서구와 달리 민주화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환경운동도 처음부터 공해추방의 주민운동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대의정과 똑같은 활동가-회원 구조의 대변형 시민사회운동은 이제 청년층을 비롯한 회원 확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노동조합이나 농민회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시민운동은 노쇠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실은 촛불의 촉진자였듯, 새로운 주권자 지역정치운동의 촉진자이자 활동가들이다. 여기에 생협운동의 수많은 지역 조합원들이 존재한다. 노동, 농민, 여성,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서도 수많은 회원과 조합원들이 있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 기후행동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때 시민사회운동에서는 정당과 거리를 두고 정치를 더러운 흙탕물로 여기던 경향이 일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낡은 인식은 대부분 사라졌다.
우리는 이들을 풀뿌리 주권자 지역정치의 촉진자로서 함께 모여 출발할 수밖에 없고 출발해야 한다. 정의당과 녹색당, 기본소득당, 노동당 등 정당의 당원들도 지역에서 함께 모여야 한다. 당을 해산하고 당적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역에서부터 연대연합의 민주주의 직접 행동의 정치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의 진보-녹색 친화 당원들까지도 연대하는 폭넓은 연대와 연합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의 의제는 거의 대부분이 민주주의 정치 의제다. 10명에서 150명, 지역 주민 3.5%의 다단계 조직 촉진자들이 뭉친다면 지역의 정치는 바뀐다.
지역의 어떤 의제든 지역 주권자들의 조직화 촉진을 통해 연대와 연합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는 정치야말로 진정한 주권자 민주주의 정치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2년 뒤 제대로 된 주권자 정치혁명을 이루어낼 수 있다.
민병두 모델이라는 대의정 정치의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다. 여의도에는 얼씬도 않고 4년 내내 지역 주민을 만나는 개인의 직접 대면 정치 활동이었다. 김부겸, 전재수 등등 경상도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도 채택한 전략이다. 이것을 대면-비대면을 혼합해서 개인이 아닌 연대와 연합의 주권자 정치활동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흔히 총선에는 분열하고 대선에는 통합한다는 선거정치 속설이 있다. 그러나 2022년 대선은 전혀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대선을 포기하지 않는 유력한 정치인들에 의해 민주당의 분열까지 이끌어내야만 새로운 주권자 정치는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런 일을 지역의 주권자 정치 연합이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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