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가 세계 경제 위기로 전염되고 있다. 전 세계가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대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금융위기, 경제 불황 등 복합적 대위기를 일컫는 '퍼펙트스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요 해외기관들도 세계 경제 위기를 경고하면서 올해 세계 경제가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큰 규모의 경제 개입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고, 독일은 GDP의 5%에 해당하는 재정 확대와 이보다 5배 큰 규모의 금융지원책을 발표했다. 상당수 유럽 정부가 고용유지를 위해 임금의 상당 부문을 직접 지원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포스트코로나 경제 체제가 진보적으로 전환하는 모멘텀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해외기관들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민간소비와 서비스업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고, 이에 민간소비 성장률은 –6.4%, 서비스업 성장률은 –2.0%로 떨어졌다. 2분기에도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면서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3월부터는 민간소비와 직결되는 고용도 줄고 있다. 3월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19만5000명 감소해 고용률이 60% 선 아래로 떨어졌고, 이는 9년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정부가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기업 안정 대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위기대응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처한 기간산업과 소상공인을 구하고 대량 실업 위기를 막기 위해 89조4000억 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등 7대 업종에 40조 원을 지원해 286만 명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3개월간 50만 원씩 생계지원자금이 지원된다. 55만 개 공공 및 청년 일자리도 만들기로 했다. 논란이 되었던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되 기부금 세액 공제 등을 통해 고소득층의 자발적 반납을 유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소득 하위 70% 지급을 고수했던 기획재정부도 지급 지연에 대한 비판이 일자 중재안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국난극복의 핵심 과제이고 가장 절박한 생존문제"라며 "이번 대책에 필요한 3차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과 관련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또 "대규모 국가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주기 바란다"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견지해나가겠다고 했다.
한국판 뉴딜(New Deal)이 어떤 규모와 내용일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이 무엇일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비대면 서비스산업 육성을 비롯한 '디지털 뉴딜',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같은 'SOC 뉴딜'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것들이 과연 한국판 뉴딜의 전부일지, 경기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조만간 닥쳐올 기후위기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판 뉴딜은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획되는 '그린뉴딜(Green New Deal)'이어야 한다.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에 대한 단기적인 지원을 넘어 그린뉴딜 관점에서 에너지다소비 및 온실가스 다배출 기간산업의 전환 원칙을 논의하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판 뉴딜이 지향하는 바가 경제성장이 아니길 바란다. GDP 지표의 증가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GDP가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사회·경제적 불평등, 여가 및 건강 등 인간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보적 경제학자들, 생태적 성향의 싱크탱크와 NGO들은 GDP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많은 비판을 해왔고, 이를 수용한 유엔과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과 주요 국가들이 무수히 많은 대안 지표들을 만들어 제시한 바 있다.
포스트코로나와 기후위기 시대에는 인류 삶의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산업을 축소하면 GDP가 감소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결이 곧 GDP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일자리의 증가가 곧 GDP 증가가 아닐 수도 있다.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목표가 상충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에 생태적으로 안전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공간(도넛 경제학 그림 참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사회의 처리량을 줄이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과정(탈성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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