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진화가 세계적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남북 간 보건협력을 매개 삼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한반도 전문가 특별대담'에서 "보건 의료 부문과 식량 지원을 묶을 수 있는 것은 당국 회담보다는 정상회담이다. 정부가 이런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이 평양에 병원을 짓는 것을 보면 코로나19가 얼마나 퍼져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볼 수는 없지만, (확진자가) 있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제정세에 올해 코로나 때문에 식량 사정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자력갱생으로 나간다, 정면 돌파한다고 했지만 어려울 것"이라며 "이 때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 방역 차원이 아니더라도 평양 종합병원 운영에 있어서 중국이나 기타 다른 국가에서 배우는 것보다 우리에게 배우는게 북으로서도 훨씬 좋을 것"이라며 "4.27 남북 정상회담 2주년이 1주일 남았다. 그날을 계기로 북쪽도 남쪽에서 뭔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제안이 이뤄지더라도 북한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이날 대담에 참석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면 평양 종합병원 하나 정도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면서도 "문제는 북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재개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와야 할 것 아니냐. (지금은) 소통을 안하고 있는데"라며 북한의 소극적 자세를 난점으로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수석부의장은 "이번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로 와야 하는데 정상회담을 하려면 지난 2018년 3월 5일처럼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이 평양을 가는 것도 방법"이라며 특사 파견을 통한 남북 간 대화 재개를 주문했다.
대담에 참석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통 큰 제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전 장관은 "평양 병원의 의료 기기를 우리가 전부 대주겠다고 통 크게 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걸 가지고 물밑 대화로 가고, 북이 받으면 남북 정상회담의 밑바탕으로 삼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에 실제 의료기기를 지원한다고 해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역과 보건에 관련한 문제를 명분으로 삼더라도 결국 북핵 사안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문 특보는 "종합병원에 들어가는 의료기기 등이 결국은 다 제재에 걸린다. 따라서 대규모 의료협력도 결국 핵문제, 북미관계 개선 문제 등과 연동돼 있다"며 "이런 사안들을 같이 넣어서 협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 협력 사안에 핵 문제를 포함시킬 경우 북한이 남한과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이종석 전 장관은 "이 문제(보건 협력)를 조건부로 걸면 안 된다. 북한에 핵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가지면 보상을 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을 달리했다.
그는 "지난 역사에서 보면 남북관계든 핵 문제든 미국과 협의해서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식으로 협상이 된 적이 없다. 인도주의라고 규정된 사안이면 인도주의적으로 돌파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며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들이 (여당에) 180석 표를 준 것에 대해 겸손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뚫고 나가야 하는 것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이에 대해 "종합병원에 들어가는 물품 중에는 전략물자도 있다. 우리가 (병원에 물품 제공하겠다고) 북한과 약속해서 왔는데 전달을 못해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조건부로 (북한에 지원)하자는 게 아니라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완화되는 방안을 남북이 협력 해야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있어야 그것도(북한에 대한 보건 지원) 풀릴 수 있다"며 "우리 정부가 (대북 지원에 대해) 과감하게 할 필요는 있는데 구조적인 제약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문 특보는 "5월 첫 주 정도에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이 돼서 생활방역으로 전환될 것이고 그 때부터 6월 국회 개원 전까지 남북 간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본다. 북측이 남측 정치적 변화에 그렇게 냉담할 수는 없으니 5월 초에서 6월 국회 개원 전까지 뭔가 연락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유엔 (대북) 제재 관련해서 유연성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보건‧의료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이야기한 것 아니냐"라며 "우리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게 10이라면 10은 다 주지 못해도 예전에 2정도 줄 수 있었다면 지금은 4~5까지 줄 수 있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해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지원의 규모와 범위에 대해 "우리가 담대하게 하지 않으면 (북한의) 반응이 미적지근하거나 오지 않을 것이다. 제재라는 틀이 있기 때문에 인도주의와 제재 사이에 어디 지점까지 우리가 조절을 해서 북에 협력지원을 해야 할지는 우리 능력에 달려 있다"며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담에서 언급된 대로 남북 간 보건 협력을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북한에 지원하는 물품 중 상당수가 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의가 주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관련한 사안에 힘을 쏟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대선 전까지 북미 간 협상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 미국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 협력을 기반으로 남북관계를 먼저 풀어가는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도 막연하게 생존권‧발전권 보장하라고 하지 말고 조금은 양보를 하라고 설득해야 한다"며 "미국에도 북한을 그렇게 물샐 틈 없이 통제하면 너희들 원하는 대로 북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특보는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답방 및 정상회담을 하고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선거도 치렀으니까 미국에 우리 이야기가 먹힐 수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때문이라도 새로운 정상회담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우리가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새로운 국면이 발생하고 있고 북한의 민생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재 완화를 위한 서한을 보낸 것 등을 활용해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주고 받게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대선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북한이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없다며 반박하고 나선 데 대해 문 특보는 "(북한의 발표 내용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언사가 없으니 사실 확인 차원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로 바빠 과거에 나온 (북한의 친서) 가지고 이야기 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지도자가 북한과 관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상황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함께 김 위원장의 대외적 이름을 알리는 데 유리한데, 문제는 그 이상 진전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도 추가적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렇게 (미국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 북한의 입장 발표는) 이를 거부하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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