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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과 한국에서 '페미니즘-하기'

중국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리인허(李银和)의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하기>(arte, 2020)가 출간됐다. <나의 사회관찰>(我的社会观察, 2014)이라는 무던한 원제에 비해, 번역된 제목은 사뭇 도발적이다. 중국 정부의 '검열'을 상기시키며, 이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의 행위성(agency)을 강조한다. 이는 분명 한국의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 맹렬한 여성독자들을 타깃한 것이기도 하다.

책날개에 간추려진 저자의 삶을 살펴보면 무척이나 흥미롭다. 리인허는 중국 1세대 성(性) 사회학자로, <인민일보> 편집자인 어머니 리커린의 성(姓)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문호(文豪) 왕샤오보와 사별한 후, FtM 트랜스젠더 다샤와 입양한 자녀 좡좡과 살면서 LGBT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번역자의 말을 빌자면, 그는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적 지식인 중 한명으로 "사랑과 진실, 자유와 평등을 좇아 온 페미니스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중국 사회를 향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페미니스트로서 우선 자신의 전통에 내장된 성 차별과 규범적 성을 집중적으로 문제시한다. 서구의 대립적인 '양성'개념과 달리, 중국의 협조적인 '음양'개념은 얼핏 유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이분법 자체는 자연화되어 확고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여전히 단단함, 강함, 밝음, 위는 부드러움, 약함, 어두움, 아래보다 존귀하다.

▲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검열의 나라에서 '페미니즘-하기'> , 리인허 지음, 김순진 옮김, 아르테 펴냄

이러한 역설은 형식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영국 혁명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양립할 수 없는 억압과 저항은 유혈혁명으로 폭발했지만, 마침내 이는 공화정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반면 영국에서는 쌍방이 타협하여 명예혁명에 성공했지만, 결국 군주제는 유지됐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전투적인 서양의 여성운동에 비해 중국의 '부녀'운동은 비교적 온화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본질주의적 관념을 버리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사유할 때, 이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는 비서구의 사회나 대상화된 객체가 취하기 쉬운 역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바로 전통으로의 회귀로 연결되거나,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 즉시 여성성에 대한 찬양으로 의미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역사 속에서 근대를 경험하고, 제 각각의 문화 속에서 남성 혹은 여성으로 존재한다. 자리에서 비켜진 존재들의 최종 목표는 반드시 왕좌를 탈환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사회주의 중국이 페미니즘과 조우하면서 생성하는 흥미로운 국면들이다. 예를 들면 혁명이 성공한 후 1950년대 중국에서 성인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급격히 높아졌다. 이때 전사회적으로 성별 구분하지 않기가 하나의 풍조가 됐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 여성은 자신의 남성적 기질을 증빙하고, 여성적 기질은 낙후한 것으로 은폐해야했다. 마찬가지로 이때 여성성은 여전히 부정적인 자질로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여성들은 여성적 특징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존 사회에 저항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최근 호전적인 한국의 여성들이 소위 여성적인 표징들을 아예 거부하는 것과 다르다. 더욱 여성이 되려고 하는 중국의 여성들과 절대 여성이 되지 않으려는 한국의 여성들, 이 두 입장은 얼핏 반대로 보인다. 그러나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위해 여성이라는 경계를 다시 설정하려는 의도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여성들은 홀로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이중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적인 여성성을 말한다. 반면 신자유주의 하 한국의 여성들은 자본주의의 진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임신과 출산 등 여성적인 것을 완전히 거부한다. 이는 페미니즘의 오랜 난점이기도 한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와도 연결될 수 있다. 과연 여성은 인간이 되기 위해 남성과 같아져야하는가, 혹은 달라야하는가. 이 둘 중 반드시 맞고, 언제나 틀린 것이 있을까.

리인허라면 두 나라의 여성들이 이 책의 부제처럼 제 각각의 '페미니즘-하기'를 실천하는 중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들 마음속에 차이가 항상 상하로 양분되어 있음을 성찰해야한다고 했다. 사실 젠더란 단순하게 양극으로 분화된 것이 아니라, 마치 검은색과 흰색을 양 끝에 놓고 다양한 간색을 채워나가는 색표준 체계와 같다고 한다. 스펙트럼으로서의 젠더처럼 근대성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은 여성과의 비교를 통해 형성되며, 서구 역시도 동양을 비롯한 타자없이 스스로 존립하지는 못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형적 비교를 통한 우위의 선점이 아니라, 상호 간 참조로 인해 생성되는 새로운 패턴들이다. 여성은 남성에 도전하지만 다른 존재가 되고, 동아시아 역시 서구를 닮고자 하나 다른 근대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여성과 한국의 여성이 살아가는 삶도 같을 수 없다. 리인허는 중국의 경우에는 정치적 권리에서는 평등을 추구하되, 개성의 발현에서는 차이를 드러내자고 조언했다. 한국에서는 일상의 공정성을 높이고, 여성으로서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리인허의 이 책은 서구와 차이를 가지는 중국의 상황에 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드물다. 사실 한국 역시도 식민지적 근대와 냉전 하 현대에서 중국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연대의 대상으로 중국을 생각치 않도록 검열했고, 반공주의 정부는 적대의 대상이어야할 중국을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도록 감시했다. 페미니즘 역시도 서양 혹은 일본을 매개하여 수용됐고, 중국과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활발히 소통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중 수교에 이어 1995년 베이징에서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됐으나 지속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근 20년 동안 계속 번역됐던 일본의 우에노 치즈코에 비해, 다이진화를 비롯한 중국 페미니스트들의 저서 발간은 근 10여년간 소강상태에 있었다.

한국에서 리인허 역시 <중국여성의 성과 사랑>(1997) 이후 오래 공백 끝에 다시 소개되고 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페미니즘 일반 이론이 아니라, 동시기 중국의 사례로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듯하다. 전술한 '음양(陰陽)' 본질주의에 더해, '갑녀정남(甲女丁男)' 현상과 '동처(同妻)' 문제 등 함께 이야기해볼 주제가 많다.

어쩌면 중국과 한국에서 '페미니즘-하기'라는 수행은 이제 서로 마주하는 듯하다. 리인허는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같다"에서 "시대가 달라져서 여자와 여자가 다르다"로 전환해야한다고 했다.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할 때라는 뜻이겠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리인허를 읽는 의미는 "동아시아의 시대가 달라졌다. 중국 여자와 한국 여자는 다르다"가 되어야할 것이다. 연대는 당연하게 전제되는 문화적 상동성이 아니라, 토론하고 협상해야하는 차이에서 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주 위험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는 도발은 관계의 새로운 지평으로의 초대인지도 모른다. 리인허는 성(性)이라는 녹록치 않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설정하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이 책에서 그는 짧은 분량에 요령있는 서술로, 그리고 시종일관 호탕한 문체로 돋보인다.

마르크스를 쫓아 "남자가 지닌 것을 왜 여자는 가질 수 없는가"라는 중국의 페미니스트, 그의 시선을 쫓아 중국을, 그리고 다시 한국을 탐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적지 않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풀어가야할 지점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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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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