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제왕' 김태호가 귀환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에서 김태호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결국 당선됐다.
김태호 후보는 개표 결과 42.59%의 표를 얻어 36.46%를 득표한 미래통합당 강석진 후보를 제치고 ‘보수 텃밭’ 경남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저력을 펼쳤다. 개표는 99.98% 진행됐다.
김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3선 국회의원이며 피케이((PK·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맹주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황교안 당 대표가 서울 종로구에서 이낙연 후보에게 패하고 당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김 후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사실상 김 후보는 이번 총선의 승패가 차기 대권주자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정계은퇴를 밟는 수순이 될 수도 있느냐는 중요한 기로에 선 순간이었다.
김 후보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험지 출마’를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무소속’ 출마라는 초강수를 뒀고, 그 승부수가 제대로 적중했다.
이날 투표에 앞서 이루어진 6차례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강석진 후보가 모두 1위를 기록하는 등 두 후보가 0.8% 차이까지 근접하는 등 초접전을 펼쳤지만 선거일 2~3일을 남겨두고 김 후보가 승기를 잡으면서 당선의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선거 도중에 고소·고발전이 난무하면서 흠집을 남겼다. 또 감정이 상한 상대후보 지지자들과 화합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도 앞으로 남은 과제다.
김태호 후보는 “고향분들이 김태호를 지켜주셨다. 고향분들이 태호를 살려주셨다. 꿈에도 돌아오고 싶던 고향에서 태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다”며 “빠른 시일 내 당으로 돌아가 새로운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따르고, 정권창출의 중심에 서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도지사와 국회의원, 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현안들을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해결할 뿐 아니라 따뜻하고 진솔한 리더십으로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펼쳐줄 것”을 요구했다.
역경과 고난 이겨내= 김태호 당선자는 지난 13일 마지막 호소문을 통해 “지역주민이 염원하는 큰 변화와 발전은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이를 대표하는 리더십이 함께할 때 실현 할 수 있다”며 “이번 선거는 누가 이러한 리더십에 적합한 지 선택하는 일”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저는 고향발전을 위해 이번 선거에 모든 정치생명을 걸었다. 어떠한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떠한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지역을 대변화시킬 책임감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선이 되어야 할 이유를 밝혔다.
유세 도중인 6일 거창장날 거리유세에서 “꼭 당선돼서 지역발전을 시킬 수 있도록 제발 살려달라. 이 나라 희망에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김태호 이번에 고향에서 꼭 살려주십시오”라며 무릎을 꿇고 호소하면서 지지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9일 열린 MBC경남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마지막 발언은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김 당선자는 “우리 지역에서 또 큰 인물 나오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모 유력 일간지에서 차기에 유일한 PK 지역의 대권주자는 김태호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우리 고향에서 대통령 나오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여러분들 힘으로 또 그 정치력으로 우리 고향을 획기적으로 한번 발전시켜 보겠습니다. 꼭 이기고 싶습니다”며 이번 총선을 바탕으로 차기 대권에 도전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고, 때로는 지도자로서 강한 자신감을 어필한 게 적중했다. 특히 공식선거운동이 끝나는 14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세차에 올라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한 표를 호소했다. 절박한 간절함이 승리로 이끌어 낸 것이다.
김태호 당선자는 1962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에서 소를 키우던 빈농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가난한 살림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장학생으로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김 당선자는 서울대 농업교육과 재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고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는 후문이다. 김 전 의원은 부친의 어릴 적 친구였다.
그는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36세(1998년)에 초대 도의원, 40세(2002년)에 전국 최연소 거창군수를 거쳐서, 42세(2004년)에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백’으로 당선되면서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6년간 도지사로 재임하면서 ‘남해안 시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도정을 무리 없이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1971년 김종필 전 총리가 45살의 나이로 11대 총리에 오른 지 39년 만인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구원투수로 지목되어 정운찬 총리를 대신할 ‘40대 총리’로 지명됐지만,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려 중도 하차한 전력이 있다.
이로 인해 정치 인생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였으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 경상남도 김해시을 지역구에 출마해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했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됐고, 2015년 8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에도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라는 추측이 나왔다.
긴 침묵을 지켜오다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경남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패배해 대권 가도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적 무게감이 달라져 다시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됐다. ‘고진감래’ 끝에 결실을 거둔 것이다.
김 당선자는 부인 신옥임(56) 여사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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