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그렇듯 종착지점에 다다른 총선 관련 평론들은 항상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년 남성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 KBS에서 방송된 <정치합시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엔 '진보'와 '보수'라는 명목으로 유시민과 전원책 등 인사들이 출연하는데, 하나같이 기득권 정치를 대변할 따름이다. 또, 평론가 박성민은 왕왕 고착화된 분석틀로 총선 결과를 예측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분석이나 예측이 아주 종종 틀리곤 했다는 것을 우리는 까맣게 잊곤 한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유시민의 '180석 호언'이다. 박성민이 '범여권'이 얻을 총선 결과가 151석 이상이면 "여당진영의 승리"라고 이야기했고, 유시민은 180석을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민주당 쪽 반응은 '왜들 호들갑이냐'는 식이다. 심지어 이번 총선을 뒤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아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유시민이 180석 호언한 것에 대해 "저의가 의심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서 180석이니 151석이니 하는 것은 '범여권'이라는 모호한 집단의 예상 의석수를 기준으로 한다. 실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더불어 그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효자'를 자처하는 아류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 나아가 기실 다른 정당인 민생당과 진보정당인 정의당까지 다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이후 언론에서 매우 흔히 접할 수 있는 계산법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민생당을 한 뿌리를 이야기할 순 있겠다. 하지만 사회운동‧민중운동의 자장 속에 위치해온 정의당으로서는 아주 최악의 평가이자, 섭섭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주류 언론의 셈법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걸까?
대통령중심제의 정당정치 질서에서 본래 '여당(與黨)'은 '정권을 잡고 있는 정당', 즉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을 일컫는다. 중화권에선 이를 '집정당'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권력을 잡은 당'이란 뜻이다. 반면 '야당(野黨)'은 '정권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정당', 정부 시책을 때로는 돕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 정당을 말한다. 그러니 헌정 초유의 '위성정당'이나 '아류정당'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민생당이나 정의당은 이론의 여지없이 야당이 맞다.
'범여권'이라는 구분법이 생긴 사연
한데 우리 언론과 제갈량 흉내내기에 바쁜 '정치평론가들'은 왜 '범여권'이라는 통칭을 쓰는 걸까? 여기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첫째, '진보'의 의미가 모호해졌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민주당은 '진보'에 질색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진보 대신 '중도개혁'이라는 말로 자신을 수식했으며, 최초의 원내진출 진보정당을 꿈꾸고 있던 민주노동당에게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난을 가하기 일쑤였다. 민주당의 이런 포지션은 자신의 역사를 생각할 때에도 일리있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해방 직후 탄생한 친일 엘리트와 지주계급의 정치적 연합으로 탄생한 '한국민주당'을 모태로 한다. 4.19 혁명 이후 다른 세력과 연합해 새롭게 거듭나긴 했지만, 보수적인 자유민주주의 세력에서 벗어난 바 없다.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민주적'으로 보였던 것은 군부 독재 정권 시기에 야당으로서 존재했었다는 점 이외에는 없다. 이런 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모색한 수사적인 대응은 외양상 '진보세력'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이는 진보정당의 위기와 함께 찾아왔기에 기존의 진보정당 흐름(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정의당/민중당 등)의 포지션을 불안정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둘째, 언론의 구태에도 책임이 있다. 양당 중심의 정치질서에서 언론은 기성정치판에 기자를 편성하던 습관을 고친 바 없다. 가령 국회 내 기자를 여당팀과 야당팀으로 나누는데, 정의당을 마크하는 기자를 '여당팀'에 배치하고, 이것이 자연스레 보도 관점에 까지 영향을 미치다보니 이상한 왜곡이 생긴다. 이를테면 언론의 보도 습관 때문에 유권자마저 정의당을 ‘여당쪽’으로 오인하게 된다.
셋째, 정의당 스스로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가령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파동에서 정의당은 분명하게 비판하길 피하며 모호한 결론을 내놨다. 이는 진보진영 안에서도 강력한 비판을 받았고, 정의당 내부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의당 사무총장은 친민주당 성향의 팟캐스트나 방송에 출연해 그들이 듣기 좋게 "검찰 개혁"에 대한 멘트만 쏟아냈지, 조국 전 장관의 가족들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정의당은 이런 과오에 대해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기성 언론 안에서 재생산되는 이런 시선은 정세의 복잡성을 담기 어렵고, 기존의 양당제를 강화시킬 뿐이며, 대안 정치 세력의 생존 혹은 성장을 가로막는 효과를 낳는다. 설령 진보정당 스스로 이런 구도의 힘을 빌리려 할지언정 중장기적으로는 큰 손해를 입힐 뿐인데, 그것은 정의당이 선거 시기마다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사표론'이나 '사퇴 압박'에서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다.
잘못된 여야 구분법
하지만 이런 식의 여야 구분법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내 생각엔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이런 구분법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정세에 기민하고 정확한 시야를 제시하지 못한다. 요컨대 코로나 전후 정세에서 정의당은 보건당국의 바이러스 방역 활동에 있어서는 정부의 대응을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가령 코로나 이후 악화되는 경기에 대한 지원 방책에 대해 정의당은 기획재정부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라며 비판해왔다. 이 사안에 있어서 쟁점은 양분되지 않고, 3분할된다.
n번방 성착취 사건 이후 정의당은 총선 전 원포인트 임시국회를 열어 "n번방 방지법을 처리하자"고 주장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 이후 노동자들이 해고 위협에 내몰리는 상황에 긴급하게 대처하기 위해 코로나 사태 동안 해고를 원천 금지해야 한다는 정의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안에 대해 양대 정당은 이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때 여당은 양대 정당이고, 야당은 정의당 등 진보정당이다. 우리 삶을 뒤흔드는 가장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 전선은 293 대 7 수준으로 몰려있는 셈이다.
얼마 전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선대위원장 이종걸은 MBN 판도라에 출연해 "정의당은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민주당에 협조 안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간 이종걸 의원의 행보에 의하면 상당히 솔직한 표현이다. 실제로 정의당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구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의 반노동자‧반서민적 야합에 협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지난해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개악안에 합의했다. 탄력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생활패턴으로 일하게 되는 기간이 길어지므로 노동자의 삶과 건강, 임금수준의 보장에 있어 해로운 제도로 알려져 있다. 항상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던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시민사회운동과 노동계, 진보정당인 정의당‧민중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한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
지난 연말 데이터3법 처리 때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와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 진보정당들은 정부의 데이터3법 개정이 시민의 개인정보를 위협할 것이라며 비판했지만, 거대 양당 합의에 의해 통과했다. 대체 권력을 쥔 '여당'은 누구이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야당'은 누구인가?
정치인들의 말다툼은 그들이 적대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효과를 만든다. 언론에서는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들이 싸우는 모습만 보여주니 둘은 첨예하게 적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녕 우리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데이터3법 개정, n번방 성착취 등 사안에 있어서 두 당은 항상 협력해왔다. 오히려 이에 반대해온 것은 정의당‧민중당 등 소수의 진보정당들 뿐이다.
샛강과 한강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던 권영길 당시 후보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한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평소엔 극심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하는 노동법 개악 등에 있어선 야합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키는 싸움에 함께 했다. 이는 진보정당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역사로 남아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촉발시킨 전 세계적 경제 위기는 총선 이후 한국 사회를 살아갈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을 걱정케 한다. 기획재정부와 거대 양당은 세입자보다는 건물주 걱정하기에 급급하고, 대통령 역시 노동자의 생존권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안위를 걱정하기에 바쁘다. 그러니 이번 총선의 숨겨진 쟁점은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정치판의 복잡한 구도와 정세를 자세하게 설명할 용의가 없다면, 어느 정당이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켜줄지, 누가 서민의 생존권을 이어나가게 할지, 성폭력과 성착취를 근절시킬지의 기준으로라도 '여'와 '야'를 구분해야 하지 않는가?
언론의 고착화된 여야 구분법이 즉시 정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고질적인 볻 관습은 제대로 된 정치 비평을 가로막으며, 정세의 복잡성을 담지 못하고, 기존의 양당제를 강화시켜 대안 세력의 생존을 가로막는다. 사실상 언론이 정치 질서를 왜곡시키고 고착화시키는 셈이다.
언론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부터 '정치를 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언론이 규정한 '여야구분법'은 사기다. 총선을 하루 앞둔 지금, 샛강과 한강의 간극을 다시 떠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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