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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철도와 트램' 공약들, 누가 그걸 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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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철도와 트램' 공약들, 누가 그걸 탈 수 있을까?

철학의 빈곤 – 미래를 퇴행의 시공간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한때 일본에서 "아전인철"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사자성어를 빗댄 말로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철도 노선이나 역을 자신의 지역구에 유치하는 선거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철도역을 유치하겠다고 나서 지역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이 공약이 실현되는 곳에서는 철도의 효용성을 갉아먹었다. 막대한 재정 손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유력 정치인의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객이 없는 곳에 역이 들어서거나 노선이 변경되어 일본 국철의 부담만 키우는 일이 벌어졌다.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미래 전망 없이 선거용으로 활용될 때의 폐단을 "아전인철"은 잘 보여준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철도나 지하철, 트램을 놓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한 기존 역이나 노선은 지하화를 통해 지역 발전을 꾀하겠다고 한다. 도심을 관통하는 철도가 지역을 초라하게 하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국회의원 후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공약들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는 서울시내 지상구간 6개 노선 57km를 지하화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지역 정치인들이 경인선 지하화를 위한 100만인 시민 서명운동까지 벌였고 이번 총선에서도 똑 같은 공약이 내걸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같은 정치인에게 경인선 지하화 사업은 숙원사업처럼 보인다.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수도권은 고속급행전철이 주요 도시들을 이어주고 서울과 그 경계에 있는 도시들까지 지하철이 거미줄처럼 깔린다. 대중교통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공약들은 과연 시민들을 위한 후보들의 충정일까?

한국메니페스토 실천본부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거대 양당의 철도, 도로, 지하철 신설 공약을 추진하려면 100조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 경제 현실과 국가 재정을 고려할 때 비용으로 따져도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공약들이다. 일부 후보들은 재원 문제를 지적받자 민자사업으로 유치하겠다는 주장도 한다. 진보세력이라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그동안 진행된 민자사업은 수익은 재벌이 손실은 사회가 부담하는 전형적인 자본-관료 결탁형 양극화 사업이었다. 민자사업은 민영화의 다른 말이다. 공공성이 바탕이 되어야 할 사회적 인프라에 수익 우선주의가 관철될 때 어떤 폐해를 낳는지는 지난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 미국 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라 민영의료체제라는 말까지 나도는 상황이다. 시대적 가치의 전환시대에 낡은 사고로 국회에 진출하겠다는 사람들을 뽑아야 하는 유권자들은 괴롭다.

ⓒ박흥수

정치인들은 철도가 지하화되면 그동안 정체되었던 지역 발전에 날개를 달 것처럼 이야기한다. 경인선이든 경부선이든 철도 지하화는 개발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런 지하화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삶의 질이 개선될까? 낙후된 도시를 재생시킨다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부동산 특수를 창출하게 될 때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개발구역 시공권을 따낸 건설사들과 부동산 개발로 이익을 얻을 사람들이다.

지역에 지하철이나 철도를 유치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은 주민들의 부동산 가치 상승 욕망을 파고들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들이다. 어디에서도 교통인프라가 구현해야 할 가치나 원칙은 보이지 않는다. 집값과 전세값 폭등에 서울에서 밀려난 서민들은 더 먼거리를 출퇴근 해야 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과 잦은 환승을 감수해야 하고 비용도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 이런 시민들을 위한 요금 할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는 없다. 오로지 건설과 개발이다.

목포역을 지하화하겠다는 후보의 관심사도 역시 개발이다. 목포 역세권 개발을 통한 원도심 대개조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하겠다며 1000억원을 들여 목포역을 지하로 조성하겠다고 한다. 또 그 위에는 목포 시민을 위한 "유라시아 시민광장"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유라시아 시민광장이라면 목포 시민뿐만 아니라 다국적 시민을 위한 평화광장을 조성하는 게 맞겠지만 천문학적 돈을 부어 멀쩡한 역을 지하로 넣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목포역이 유라시아 철도의 출발점이라는 상징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역 주변 어디에서나 열차가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기적 소리를 듣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목포역은 통과식이 아닌 이곳에서 선로가 끝나는 두단식 역이다. 두단식 역이 좋은 점은 선로를 횡단하는 육교나 지하도가 없어도 이용객들은 모든 승강장에 평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목포역은 이런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철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 목포역의 기능을 최적화 하거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재구조화가 더 바람직 한 방향이 아닐까. 목포역 앞에는 바로 유달산 시민공원이 있고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다. 목포에는 시민 친화적인 공간이 얼마든지 있다. 목포에 필요한 것은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다. 부동산 개발이 아닌 소프트 파워를 만들어내고 발굴해서 도시가 가진 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신도심에 밀린 전국 지역 구도심의 과제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러 후보들에 의해 등장한 색다른 교통수단은 트램이다. 그런데 지역구에 트램을 유치하겠다는 후보는 트램이 갖는 기능적 특성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듯하다. 공공교통수단으로서의 트램은 자가용 이용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같이 자동차 우선주의가 득세한 곳에서 트램은 교통철학과 세밀한 교통공학이 결합되어 도입되어야 한다. 트램이 지역의 주 교통수단인지, 보조교통수단인지, 주민들의 통행 패턴과 도로 환경까지 고려되지 않으면 막대한 비용만 낭비할 수 있다. 트램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강고한 자동차 카르텔과 싸울 강단 정도는 가져야 한다.

당혹스러운 것은 후보들의 교통 공약이, 특히 철도나 지하철 공약이 갖는 철학의 빈곤이다. 철 지난 부동산 개발 논리를 밑바닥에 깔고 막대한 재정 동원 능력을 자신하는 힘 있는 후보임을 과시하는 선전물이 넘쳐난다. 이제 이런 공약에서 벗어나는 한국 정치를 보고 싶다.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기후위기가 촉발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문제이고 한국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교통문제 역시 개발이익이 아니라 지속가능 한 지구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자동차와 비행기, 플라스틱 병과 알루미늄 캔, 대형 빌딩은 지속 불가능한 화석연료체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반 지구적인 흐름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공약으로서의 철도와 지하철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단순한 건설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모빌리티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안 교통정책을 공약으로 내 건 후보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후보자들이 내건 교통 공약을 다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통정책은 한두 후보의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통 인프라에 대한 정책 역시 지역의 경계를 넘어 종합적 고려와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차 통행부터 줄여야 한다. 또 이에 비례해서 친환경 교통수단인 철도나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을 높일 수 있는 중장기 대안 또한 필요하다. 단거리 이동수단으로서의 자전거 역할을 재조명 해야 하고 이동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자동차 문화에 푹 빠져 있는 사회 환경도 바꾸어야 한다. 지금 같은 시대 전환기에는 당과 여러 후보가 공통으로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한국과 지구를 위한 교통 공약이 필요하다. 철도나 지하철의 확대는 공공성과 환경 문제임에도 부동산 초과이익 문제로 둔갑시키는 후보들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현명한 유권자가 시대에 뒤떨어진 당과 후보들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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