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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만들 돈 넘치는 세계, 인류는 정작 코로나에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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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만들 돈 넘치는 세계, 인류는 정작 코로나에 죽어간다

[정욱식 칼럼]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고 했거늘

코로나19 사태가 지구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의 사정만 보더라도 이러한 평가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인 사망자 수를 능가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

주목할 점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유럽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세계 권력을 장악해온 대서양 문명의 중대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세계 권력의 중심축 이동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지구적 위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인간 안보'를 도외시하면서 '군사 안보'를 신성시해온 삐뚤어진 안보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전세계 국방비는 약 1조 8000억 달러에 달한다. 군비경쟁이 치열했던 1980년대의 냉전 때보다 약 50% 높은 수치이다.

1조 8000억 달러 가운데 코로나 사태 최대 피해국인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 코로나 발원지이자 초기 방역 실패로 상황을 악화시킨 중국이 약 15%, 대부분의 나라들이 확진자 및 사망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G20이 차지하는 비중은 82%에 달한다.

이들 나라가 초기 방역 및 확산 저지와 적절한 치료에 실패한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보건·의료 시스템의 미비에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년 동안 서유럽 국가들의 의사 수가 3분의 1이 줄었고, 보건의료 예산도 급감해왔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공공 보건의료 후진국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의 국방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중국 역시 사회안전망의 미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빨리 국방비를 높여왔다. 상대적으로 국방비 지출이 낮았던 일본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적극적 평화론"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적극적 평화는 '군사 안보'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보건의료와 복지와 같은 '인간 안보'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국방비가 3배로 늘어났을 정도로 군사 안보를 신성시한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전염병 예방을 비롯한 인간 안보와 경제 회복이 지구적 과제, 특히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G20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 분배의 군사화를 타파하지 못하면 인간 안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확보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인류사회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길어 올려야 할 교훈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고사에 담겨 있다.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고사가 바로 그것이다. 진시황은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 변방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였다.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고 이에 대한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민생과 내부 모순을 방치한 결과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교훈을 주는 고사이다.

중대 기로에 선 인류사회는 선택적 변화에 나서야 한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 기상천외하고 가공할 살상력을 갖춘 무기를 만드는 데에 몰두해온 사이에 정작 안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선두에는 지구적 군비경쟁을 주도해온 미국과 중국이 나서야 한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군사력 건설로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국방비를 끌어올린 미국의 민낯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20년에 전면적 소강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던 중국도 개혁개방 이래 가장 심각한 민생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할 수 있는 3대 위협으로 핵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기후 변화 위기를 뽑는다. 그런데 군비경쟁 억제는 이들 세 가지 위협을 대처하는 데에 대단히 실효적이다. 군비경쟁 억제 자체가 핵전쟁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전세계 국방비의 10%만 줄여도 전염병 예방과 치료, 글로벌 그린 뉴딜을 통한 기후 변화 위기 극복에 필요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충당해나갈 수 있다.

기실 코로나 사태는 이들 세 가지 위기의 가장 은밀하면서도 충격적인 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도한 군비 투자와 이에 따른 보건의료 체계의 미비, 그리고 환경 위기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엄중한 경고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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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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