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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파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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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파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서리풀 논평] 시민의 연대가 필요한 시기

정부의 당면 방침은 개학을 연기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하는 것. 아마도 다른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수도권은 언제 확진자가 확 늘어날지 모르고 전국으로도 아슬아슬하니, 감염 확산을 줄이는 '기술'로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또한 딜레마다. 권고를 무시하고 공원으로, 산책로로, 게다가 다닥다닥 혼잡할 정도로 꽃놀이를 나온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은 사정이 좀 나은가? 그러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절박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 생계가 걸린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학생을 빼면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가 어느 정도나 실천되는가?

뾰족한 대안이 없지만, 이번 주 제안을 하기 전에 감염병의 특성과 사회적 대응을 다시 생각한다. 특히, 개인이 감염을 예방하는 것과 사회가 감염 확산을 줄이는 것은 목표도 방법도 다르다는 점. 한 가지 더,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병을 얻지 않겠다는 것과 혹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겠다는 것도 크게 다르다. 감염병에서 나는 전파자이거나 피해자지만, 현실에서 나는 흔히 둘 모두에 해당한다.(☞ 바로 가기 : 'The Patient as Victim and Vector: Ethics and Infectious Disease')

이제는 다음 전제를 추가해야 한다. (1)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감염원일 수도 있다(무증상 감염이 많다고 하지 않는가), (2) "나는 걸려도 괜찮다" 또는 "나만 지키면 된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가 더 안전해야 한다.

전제를 바꾸면 우리 행동도 달라진다. 제대로 손을 씻는 것,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 집합적 행사와 모임을 줄이려는 노력의 목표와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다. 내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안전하게. 나는 개인적 확률이지만 사회는 사회적, 집단적 확률.

노파심에서 설명하면 이는 개인 보호 또는 사회 보호라는 단순 이분법이 아니다. 이타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염병(그리고 판데믹)의 특성상 돌고 돌아 나를 지키고 돕는 길이기도 하다. 온 사회(다른 나라까지)가 건강하지 않으면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협력과 연대는 그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필수다.

이를 개인 도덕과 책임으로 환원하지 마시라. 우리는 협력과 연대 또한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할 수 있고 없고가 나뉘고 불평등이 존재한다. 협력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자칫 불리한 사람을 '갈아 넣어'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지는 않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조심하고 살펴야 한다.

첫 번째 대상, 충분한 여건을 갖춘 사람들은 엄격하게 제대로 실천하기. 어쩌면 가장 높은 수준의 개인 윤리와 책임이 필요하다. 자가격리 수칙을 어긴 일부에 대해서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안전할 수 있으니 알아서 하겠다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나를 예방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확산을 억제하려는 조치라는 것.

젊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청년과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피해 당사자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혹시 이미 감염되었을지 모르니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말라는 것이 초점이다. 할 수 있으니, 개인행동수칙과 거리 두기 원칙을 더 잘 지키기 바란다.

두 번째 대상,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거나 이에 버금가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시설과 환경을 고쳐야 하면 그것을 신속하게, 시스템을 바꿔야 하면 장기과제라 말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이에 대한 정부 대응은 불충분하고 불만스럽다. 시민과 국민의 자발성을 강조할 뿐 여건 조성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앞으로 닥칠 경제(해고, 임금 삭감, 소비 위축, 중소상공인 도산)를 걱정하지만, 각 경제 주체는 미래를 대비해 이미 '필사적'으로 행동한다. 제대로 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되려면 담대하게 개입해 바꾸어야 한다.

이런 개별적 행동은 반드시 현재의 방역(예를 들어 사회적 거리 두기)을 무력화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하철로 출근해야 하고 좁은 공간에 모여 회의를 해야 하며 복잡한 식당에서 먹어야 일한다. 미래가 현실에 개입하니, 단기와 장기의 구분이 없고 방역 대책과 사회경제적 대응을 나눌 수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 또는 '물리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여러 서구 나라처럼 "집에서 나가지 말라"라고 하는 쪽이 이런 통합성을, 그리고 우리의 부실한 대책을 더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 집에서 나가지 않으려면 머물 집이 있어야 하고, 집안에서 먹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있어도 몇 달 후 먹고살 걱정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가, 각자 혼자서 할 수 있는가?

철저한(!) 사회적 거리 두기라면, 그야말로 개인과 '물리적' 차원을 넘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란 어쩌면 '사회체제'로부터 거리를 두어야(떨어져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그것이 가능한 조건으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 전체가 나서야 예를 들어 최소 소득이라도 유지하고 몇 달 뒤에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당장 어떻게 가능하냐고? 외국 사례에서 배우기만 해도 아이디어는 충분할 테니, 정책과 방법은 모자라지 않을 터. 더 중요한 과제는 그것이 무엇이든 사회적 연대에 기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유례없이 과감한 상상.

이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잊을 수 없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할 기준을 제시했지만, 단언컨대 그 후까지 한참 곳곳에서 '체제로부터 거리 두기'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요양원, 어느 콜센터, 어느 학원에서 집단 감염이 시작될지 모른다.

비슷한 감염병이 또 올 수 있다니,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예외적 상태'임과 아울러 '정상적 상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예외는 그만큼 신속하게 사라질 것이나 '사건'에 충실하게 개입하는 임시 조치는 어떤 정상화인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 우리가 어떤 연대를 어느 정도나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미래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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