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후보등록일이 27일 마감됐다. 공식 선거운동은 다음달 2일부터지만 지역구 대진표가 완성되고 정당기호 등이 결정되면서 본선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됐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무당층이 늘어나는 등 정치와 선거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최악의 총선 투표율을 보일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달라진 공직선거법의 빈틈을 노려 우후죽순 등장한 비례정당들의 난립에 여야를 가르는 굵직한 쟁점마저 보이지 않아 통상 현 정부 중간평가로 인식돼온 전국단위 선거의 성격과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비례용 위성정당 창당과 의원 꿔주기를 경쟁하며 꼼수 논란을 일으켰고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코로나 정국', 총선 블랙홀로
지난 1월 하순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는 두 달째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이다. 감염자 확산 초기, '중국인 입국을 금지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76만 명이 서명하는 등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져 정부여당이 한때 위기에 몰렸다. 수요‧공급 예측에 실패해 '마스크 대란'을 일으킨 점도 감점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 등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감염자 확산 추세 속에 한국 정부의 감염병 관리 수준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사정이 변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호평에 힘입어 지난주보다 6%포인트 오른 55%로 집계됐다. '코로나 정국'의 주도권은 문 대통령으로 기울어 있다.
미래통합당도 코로나19 사태를 고리로 한 정부 비판에서 한 발 빼는 분위기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마구잡이식 현금 살포"라고 맹성토했던 통합당은 경기도 등 여권 지자체장들이 주도한 재난생계지원 방안에 여론의 호응도가 높아지자 '40조 국채 발행'을 제안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
다만 일일 100명 선으로 관리되고 있는 신규 확진자수가 좀처럼 안심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감염병의 특성 상 언제든 다시 폭증할 수도 있어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에 미칠 영향력을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평가다.
'화학적 결합' 부실한 보수 통합, 위력은?
선거구도 정비 면에서는 보수 통합에 성공한 미래통합당이 한 발 앞서있다. 유승민 의원이 이끌던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에 사실상 흡수 합병되는 방식으로 지난 2월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3년 여 만에 보수 단일대오가 완성됐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옥중 서신'을 통해 미래통합당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태극기 세력'에 주문함으로써 통합당은 강경 친박 지지층들의 이탈도 단속할 수 있게 됐다.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에서 민경욱 의원이 기사회생 하는 등 막판까지 잡음이 일었지만,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상징성 있는 친박 중진들과 대구‧경북(TK) 지역에 대한 물갈이가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논란만 한차례 일으키고 무산된 것으로 보였던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끝내 총괄선대위원장에 내세운 점도 중도 확장성 면에서 득표 요인이다.
그러나 보수 통합의 관건적 문제이던 '탄핵의 강' 논란이 여전히 잠복해 있는 데다, 합당 이후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침묵이 이어지고 있어 형식적 보수 통합이 내용적으로도 완성됐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황교안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와 빚은 갈등,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순번 파동을 거치며 빈약한 리더십을 노출한 점도 '김종인 효과'로 극복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총선 정국에 드리운 '조국 그림자'
50% 위로 치고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미래통합당의 '정권 심판론'을 방어하는 형국이지만, 민주당의 총선 전열 정비는 총체적인 실패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폭발적 균열이 일기 시작한 '진보 내전'이 총선을 앞두고 봉합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의 반란'으로 보는 '친문‧친조국' 성향의 지지자들과 '개혁의 외피를 쓴 정권 실세가 드러낸 불평등 세습 사회의 민낯'으로 보는 진보 진영의 설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국 사태라는 정권적 위기를 맞아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 개혁으로 논점을 바꾸면서도 총선에서 조국 프레임이 전면화 되는 데는 불편한 기색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공개선언을 한 데 이어 강성 지지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금태섭 의원이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범여권 내부 논란의 핵심은 '조국이냐 아니냐'로 모아졌다.
특히 김남국 변호사 등 '조국 키즈'들이 속속 민주당 공천장을 받아 쥐었고, 대놓고 '친조국'을 표방하는 인사들이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창당해 지지층 표심을 가르는 점도 여권이 조국 프레임을 피할 수 없는 배경이다.
민주당 위성정당 전략 자충수?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저)가 비유하듯 ,'60대 건물주' 세력과 '50대 부장님' 세력 사이의 도덕적‧계급적 경계를 허문 조국 사태에 이어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앞 다퉈 만든 위성정당 논란은 정치적으로도 두 세력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렵도록 했다.
지난해 선거법 개정 자체를 반대했던 통합당은 "우리가 만든 비례정당은 민주당과 야합 정당들이 만든 선거법에 대응해서 나온 것"(황교안 대표)라는 말로 미래한국당 창당 명분을 내세운다.
반면 통합당의 위성정당 만들기를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국민의 눈초리도, 체면도, 염치도 모두 다 버렸다"(이인영 원내대표)고 비판했던 민주당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문 대통령 탄핵론'을 내세워 부랴부랴 위성정당에 비례대표를 파견했다.
민주당은 특히 시민사회 원로들이 제공한 위성정당 플랫폼을 걷어차고, 친조국 성향의 인사들이 주도한 더불어시민당과 손을 잡아 소수정당 원내진출이라는 마지막 명분마저 포기했다. 또 다른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이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재까지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지지율 이전 효과는 마이너스다.
27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정당지지도가 37%인 반면, 비례대표 투표 의향을 묻는 조사에서 더불어시민당은 25%를 얻는데 불과했다. 미래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은 22%였으나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투표를 하겠다는 응답은 24%로 불어났다.
총선 득표력과는 별개로, 민주당이 위성정당 전략을 채택한 효과는 진보 진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꼼수 따라하기'로 규정하며 등을 돌린 데다, 정의당은 지지율 하락, 녹색당을 비롯한 원외 소수정당들은 내부 논란을 겪는 등 진보진영 전반이 후폭풍을 겪고 있다.
※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24~26일 휴대전화 무작위걸기 표본 프레임에서 추출한 유·무선전화 표본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면접 방식으로 시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4%다. 설문지 문항과 통계보정 기법 등 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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