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현 사태를 빗대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미 코로나19가 의료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 경제 문제로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한다.
미증유의 현 사태를 두고 ‘뉴 노멀(이전에 예상치 못한 새 질서)’이 도래했다고 단언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전례 없는 위기에는 기존 상식으로는 생각지 못한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은 위기감의 표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위기는 얼마나 심각한가. 얼마나 오래 갈까. 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이 같은 답을 찾기 위해 26일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이하 칼폴라니연구소) 소장을 찾았다. 홍 소장은 현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는 한편, 대공황 극복기에서 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대공황과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위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이유다.
홍 소장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냐’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의 두 가지 답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바람직한 해결책은 후자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각국 정부가 지난 2월 신천지 신도 간 집단 감염으로 인해 대구와 경북에 대규모 감염이 폭발했을 당시 한국 방역당국이 취한 조치를 사회, 경제적 모델로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홍 소장은 전했다.
지난 26일 서울 은평구 칼폴라니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다.
대공황 아니다...과거와 다른 위기
프레시안 :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나섬에 따라, 경제가 멈췄다. 일각에서는 1930년대 세계를 휩쓴 대공황과 비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공황 수준인가?
홍기빈 : 공황의 양태에도 역사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공황은 금융 버블 붕괴다.
과거 경제 공황의 패턴은 1930년대 대공황이 들어서야 대중의 머리에 확실히 인식된다. 우선 금융시장에서 거품이 터진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부채가 금융시장을 직격한다. 그러니 모든 금융기업과 투자자는 현금을 쥐려 하게 된다. 신용경색이 일어난다. 기업이 파산한다. 이어서 산업이 멈추고,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
즉, 금융 공황이 먼저 일어난 후 실물 경제가 무너진다.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33년경부터는 실업으로 인한 사회 위기가 전면화하고 이어서 정치 위기가 이어진다. 결국, 파시즘이 창궐한다. 이게 정형화한 패턴이다. 한국이 겪은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양태도 이와 같았다.
대응 매뉴얼도 따라서 정형화됐다. 금융 부문의 위기가 실물로 옮겨 붙지 않도록, 금융 거품이 터질 때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어서 막자는 것이다. 이 대처가 빛을 발한 때가 2008년이다. 벤 버냉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양적 완화 정책을 취해 위기를 막았다.
프레시안 : 각국 정부는 (대공황기처럼)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위기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25일(현지시간) 사상 최대 규모인 2조2000억 달러(약 270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마련했다. 한국 정부도 100조 원이 넘는 유동성 공급 대책을 마련했다.
홍기빈 : 지금의 경제 위기는 이와 다르다. 위기는 금융시장에서 오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물 경제 한복판이 곧바로 무너졌다. 수요 폭락과 글로벌 공급 체인 마비가 먼저 시작됐다.
위기 양태가 다르면 대응도 달라야 한다. 지금은 산업 위기와 사회 위기가 동시에 시작됐다. 금융 위기는 이 현상의 여러 징후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금융 시장에 돈을 집중해 봤자(유동성 공급), 다른 곳의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잘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뿐이다(유동성 함정).
지금 한국 정부의 대응책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늘려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위기를 넘겨도 개별 경제 주체의 빚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은 정부가 재정을 풀어서 (기업과 가계 대신)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
코로나19, 신자유주의 40년 체제 공격
프레시안 : 원론적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의 위기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보나?
홍기빈 : 이야기에 앞서, 지난 40년간 인류가 이전에는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수 체제를 영위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특수한 두 개의 기둥 위에 세운 특수한 네 겹의 지붕’으로 만들어진 집과 같았다고 비유할 수 있다.
두 기둥은 생태적 질서와 지정학적 질서다. 이 두 근본 질서에서 인류 역사상 전례 없던 사건이 40년 간 일어났다.
생태학적 기둥의 변화는 인간 서식지(habitat)의 깊이와 넓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데 있다. 특히 1990년대 규제 완화와 지구화가 본격화하면서 전 세계 모든 자연이 경제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전환됐다. 1980년대 외채 위기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이 이를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생태위기가 가속화했다. 많은 생태학자가 지적하듯, 근본적으로는 코로나19의 창궐 원인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구조 변화도 짚어야 한다. 지정학적 갈등이 소멸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슈퍼 파워(미국)가 주도하는 질서 하에 재편됐다.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두 근본 구조의 변화는 인류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프레시안 : 변화한 네 지붕은 무엇인가?
홍기빈 : 첫째는 지구화한 산업이다. ‘글로벌 생산 체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산업은 지구화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의 지구화가 일어났고, 해외직접투자(FDI)가 글로벌해진 1990년대 이후 더 전면화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산업 네트워크는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얽혔다.
두 번째는 도시화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도시에 거주한다. 단순히 도시가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시 간 네트워크화가 진행됨에 따라 글로벌 시티 간 거리가 국가 내 도시와 농촌 간 거리보다 더 가까운 시대가 됐다. 이제 사실상 도시와 농촌의 구별은 소멸했다. 도시 바깥은 도시와 연결을 맺지 않으면 삶이 불가능하다.
오늘날 전 세계 인류가 도시를 중심으로, 같은 리듬으로 생활하고 있다. 도시 간 네트워크는 질병을 지구화하는 데도 일조했다. 우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게 올해 1월인데, 단 두 달 만에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세 번째 층위는 금융화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경제적 자원의 가치를 매기고, 배분하고, 운영하는 기본 원리는 자산가격화다.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이 만물에 정확한 가격을 매길 능력이 있다는 개념이 전 지구에 퍼져 있다. 모든 경제 활동 요소가 자산가격으로 계산된다. 그 가격 등락에 따라 산업 조직이 바뀐다. 금융화 사회에서 자산가격화는 단순히 산업 현장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 정책, 교육, 의료와 같은 사회 부문 역시 금융 논리에 따라 재조직됐다.
네 번째 층위는 한글로 굳이 표현하자면 ‘헌정국가(constitocracy, 19세기 후반경 유럽에서 보편화한 헌법에 기초한 민주적 국가 통치 체제, 유럽식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된다.)의 한계’가 될 테고, 더 정확히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한계'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국가의 힘이 약한 때가 없었다.
오늘날 국가는 앞서 거론한 논리들에 의해 손발이 꽁꽁 묶였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국가는 주권체였다. 국가가 결단하면 없던 법을 만들고, 무너뜨릴 수 있었다. 현대 국가는 경제 준칙, 사회 준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할 수 없다. 좋게 말하자면 ‘중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국가가 제한받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선출직 공무원, 즉 국가수반과 국회의원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치가 소멸한다.
19세기 유럽도 지금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금본위제 준칙과 헌법에 가로막혀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당시 국가는 군사력을 갖고 있었기에 제국주의적 팽창이 가능했다. 21세기 국가는 전쟁도 할 수 없다. 지정학적 구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규칙에 의해 가장 꽁꽁 묶인 체제가 현대 국가다.
프레시안 : 앞서 거론한 두 기둥과 네 지붕으로 이뤄진 현대 체제가 코로나19에 어떤 영향을 받는가?
홍기빈 : 코로나19가 이 질서를 모조리 뭉개고 있다. 특히 네 지붕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있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이후 현 체제가 잘 작동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지구 생산 네트워크가 코로나19 이후 멈췄다. 지금 외국의 산업 가치사슬에 의존해 현 위기에 대응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안 그래도 복잡하게 얽힌 가치 사슬이 코로나19 이후 다시 작동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 코로나19 위기가 언제 해소될 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시 네트워크화도 위기에 처했다. 당장 투어리즘이 박살났다.
도시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위면적당 수익성이다. 내가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빌린다면 렌트비 이상의 수익을 내야만 지속 가능하다. 나이트클럽은 열 수 있겠지만, 화실을 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벌려놓았다. 단위면적당 수익성이 뚝 떨어지게 됐다. 기존의 도시 네트워크는 유지가 어렵다.
금융화도 깨지고 있다. 지금 어떤 금융시장이 코로나19 이후 발생할 모든 리스크를 제대로 계산할 수 있나. 위기 때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의해 오르던 미국 국채 가치마저 떨어지고 있다. 금융시장의 논리로 이 사태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거버넌스도 큰 타격을 받았다. 코로나19에 허우적대는 각국 정부를 보면 거버넌스의 실종을 볼 수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의 모습을 보라.
뉴 노멀은 아직 안 왔다
프레시안 : 두 기둥, 즉 서식지 확장에 따른 생태위기와 지정학적 질서 역시 코로나19에 의해 흔들린다고 봐야 할까?
홍기빈 : 코로나19 사태가 생태 위기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코로나19가 생태 위기의 하나일 뿐이다. 호주 산불도 생태 위기였다.
생태 위기란 재난영화처럼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홍수가 나는 위기가 아니다. 인과관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위기다. 기후변화로 인해 호주 산불 사태가 저 정도로 크게 일어나리라고 예측한 정부가 어디 있나.
(코로나19와 같은) 생태 위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제 인간 서식지의 팽창을 멈추고 통제해야 한다. 다가오는 기후위기가 요구하는 바와 같다. 이제 돈 되는 건 무조건 내다 팔고 부수는 신자유주의 시절의 행태는 용납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지정학적 변화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할 것이다. 미국-중국·러시아 간 지정학적 갈등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일 갈등, 유럽 내 극우화 등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의 두 기둥과 네 지붕은 모두 작동을 멈추게 됐다. 이제 온 사회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새 원칙을 정해, 그 원칙에 따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뉴 노멀’이 어느새 일반적인 시사 단어가 됐다.
홍기빈 : 뉴 노멀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채권시장에서 나온 단어인데,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는 항상 오르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시대가 됐다고 해 ‘뉴 노멀’이라고 했다. 이제 부동산값이 내려가는 것도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정상 상태가 나온 적 있나? 아직 뉴 노멀이 아니다.
대구 방역 체제, 사회적 대응에 이식해야
프레시안 : 코로나19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는 공격적 방역으로 감염 확산을 막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언제까지 의료진과 시민이 버틸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여태까지는 상대적으로 잘 막았다. 이와 반대되는 대응이 유럽 일부 국가에서 나온다. 초기 대응 실패 여파를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거버넌스의 실패가 가장 선진화한 지역으로 여겨진 유럽과 미국에서 더 크게 보인다.
홍기빈 :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은 영국과 스웨덴에서 집단 면역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전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집단 면역을 가지게 된다는 소리였다. 엄청난 사망자 통계가 제시되고 나서야 정부가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집단 면역은 아직 살아있는 코로나19 대응 방안의 하나다.
미국에서 집단 면역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절까지 이 나라 문을 열고 싶다. 이 나라를 불황에 처하게 한다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잃을 것이다”라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마비 사태에 우려를 표했다.
실제 트럼프를 지지하는 폭스티비에선 이 점을 진지하게 논쟁한다. 코로나19로 죽는 것보다 경제 마비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같은 날 댄 패트릭 텍사스 부지사는 경제 살리기를 위해 “노인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죽더라도 일터로 당장 나오라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부활절 발언 다음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미 영국인 절반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확인할 길이 없는 이야기로 암묵적으로는 ‘영국이 집단 면역으로 가는 게 유일한 길 아니냐’는 의미를 담았다.
공격적 방역을 포기하고 집단 면역 대응으로 나간다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60퍼센트에 어떤 사람이 많을까. 가난한 사람, 감염에 취약한 사람이 압도적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한국도 언제까지 이렇게 총력 대응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나라에서든 집단 면역 여론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두렵다.
프레시안 : 실제 한국도 이미 의료진이 과부하에 걸렸다는 위기 신호가 나온다. 중앙임상위원회도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사회적 대합의를 내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또 개학 연기?..."2주 내 사회적 대합의 필요")
홍기빈 :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과연 1년 안에 백신이 나오리라 장담할 수 있나. 그 사이에 코로나19가 더 치명적 변이를 거치면 어떻게 되나. 메르스 백신도 아직 안 나왔다.
백신 개발을 제외한다면, 안타깝지만 집단 면역으로 가는 길이 현재 인류에게 주어진 한 가지 방법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도 있다. 사회적 대합의를 이뤄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신천지 신도를 통한 대구 집단 감염 시 한국 방역당국의 대응을 배워야 한다. 자원봉사자까지 총동원해 대구와 경북의 집단 감염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틀어막았다. 교훈은 하나다. 사회적 위기가 도래할 때는 가장 취약한 곳부터 막아야 한다.
코로나19 방역 대응과는 별개로, ‘코로나19 사태’에 과연 한국 정부가 잘 대응하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미 경제, 사회적 사태로 번진 이 사건에 가장 취약한 이가 누구인가.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생계가 막연한 이들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서부터 무너진다. 실업자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면 그만큼 실업수당이 늘어나고, 사회적 재해가 늘어나며, 결국 시스템 붕괴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이들 취약 계층 보호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 넣어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어서 지역 보건 시스템을 재건하고,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개편하고, 초장기 저리 대출 등의 대안적 기금 체제를 만드는 식으로 사회 체제를 조금씩, 이 질병 시스템에 적응하도록 하나씩 바꿔가야 한다. 방역에 쓴 시스템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적용하자는 얘기다.
새 길로 나가는 계기 마련하자
프레시안 : 집단 면역을 ‘사회 시스템 안정을 위해 짐을 나눠지자’는 방법으로 정리한다면 대합의는 ‘(코로나19 방역 대응처럼) 취약계층에 자원을 집중해 시간을 번 후, 새 체제로 나아가자’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아울러 모두 짐(코로나19)을 나눠지자는 정책은 오히려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홍기빈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고수할 거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거냐는 양 갈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뜻이다.
유한계급론으로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경제학자 베블렌은 기실 진화론을 주로 연구한 이다. 실제 19세기 말 경제학에 큰 영향을 준 학문이 (진화)생물학이다. 이콜로지(생태학)와 이코노미(경제학)의 공통 어원이 오이코스(Oikos, 살림)다.
베블렌은 인류를 삶을 영위하는 방식(살림)에서 계속 진화하는 존재라고 봤다. 제도가 진화하면서 인류가 계속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소리다. 베블렌의 관점으로 현 상황을 보자면, 인류는 체질을 바꿔서, 즉 체제를 진화해서 이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집단 면역을 주장하는 이들이 꿈꾸는 건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 평소와 다름없다)’이다. 코로나19 이전을 ‘정상 상태’로 상정하고, 빨리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러자니 언제까지 재정을 쏟아 부을 지도 계산이 되지 않는 이 시국에서 ‘일터로 나와 죽으라’는 메시지까지 나온다.
그 반대로 노약자도 살고 프리랜서도 사는 길을 택하자면, 진화해야 한다. 사회적 대합의를 이뤄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두 길 중 어떤 길이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거버넌스의 위기를 맞은 현 체제가 이 위기를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1920년대 독일과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의회 민주주의가 대위기를 겪고, 경제는 완전히 박살난 후 파시즘이 창궐하는 시대다.
중국은 답 아니다... 민주주의가 답
프레시안 : 그 같은 관점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짚을 필요가 있다. 앞서 거버넌스의 위기가 현 시국에 극명히 드러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와 정반대되는 대응으로 코로나19와 맞서는 체제가 중국이다. 중국의 통계 신뢰도가 떨어진다손 쳐도, 어찌됐든 중국은 다른 국가와 달리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인민을 통제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초기 방역 실패 후에는 어느 정도 이 방법이 먹히는 모양새다. 한국의 민주적 대응과 중국의 권위적 대응이 여러 나라에서 거론되는 게 현실이다.
홍기빈 : 중국의 대처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 허약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은연 중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단기적 싸움이라면 중국처럼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이 그랬다. 국가 위기 시 일시적으로 원로원을 닫고 독재관을 선출해 모든 권력을 집중했다. 그런데 로마의 독재관 임기는 6개월이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독재정의 한계효용은 기껏해야 6개월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6개월 만에 극복 가능한 사태인가?
장기적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숙한 민주주의다. 충분한 토론으로 다수 사람이 뜻을 합쳐 결론을 내리는 사회만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얻은 사회적 대합의의 결론이 가장 바람직한 대응의 길이다.
우리는 이미 인류사에서 이 같은 경험을 했다. 과거 대공황 시기 독일, 일본은 폭력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영국과 스웨덴은 달랐다.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사회를 바꿨다. 독일과 일본의 독재 권력은 멸망했다.
프레시안 :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유럽마저 정부가 통제력을 잃은 후 군대까지 동원해 질서를 유지하려는 현 사태는 민주주의자에게 결코 보고 싶은 장면이 아니다. 비관적인 생각, 반민주주의적 생각이 더 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홍기빈 : 코로나19는 물론, 기후위기는 비관하거나 낙관할 문제가 아니다. 행동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균형재정은 무조건 지켜야 하고, 현금 지급은 절대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하 기획재정부는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과 다름없다. 당장 경제 밑바닥부터 죽기 시작했는데도 기업 지키겠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 좀비가 되어가는 데도 양반만 지키려 한 동래성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리라는 각오로 위기 극복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홍기빈 : 여태 주류경제학은 위기 시 기술적 해법을 제시했다. 이자율을 올리느냐 내리느냐는 식이다. 진화론적 경제학은 삶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고 묻는다.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해 대안 에너지를 쓰자는 이야기가 많다. 세상을 대하는 근본 태도가 안 바뀐다면 에너지를 더 신나게 쓰는 사회가 될 것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한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오늘날 지구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산업혁명이 아니다. 무제한의 욕망을 긍정하는 사고방식이다. 과거 인류사 어떤 문명도 무제한의 욕망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제한 소비, 무제한 욕망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고방식은 200~3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산업혁명, 환경 파괴는 그 결과다. 지금의 생존방식을 인류가 고수하는 한,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는 언제든 나올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비관하지 않는다. 비상시 문화는 생각보다 빨리 변한다. 이 같은 국면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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