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시기는 트럼프의 나토(NATO) 정상회담 및 영국 방문,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 축구 대회 폐막일인 7월 15일 직후로, 장소로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나 핀란드의 헬싱키가 유력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두 정상은 이미 두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만남은 G20 정상회담 및 APEC 정상회담 기간 중에 '사이드 이벤트'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에 따라 7월 중순 정상회담 성사 여부 및 그 결과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첫 정상회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미러 관계는 "신냉전", 혹은 "냉전 2.0"이라는 표현이 회자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 및 나토 동진 강행, 이 와중에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 및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사태,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 핵 군비경쟁의 격화 등 양국 관계의 악재는 계속 쌓여가기만 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 및 이에 대한 미국의 특검 수사까지 겹치면서 미러 관계는 말 그대로 '설상가상'인 상태이다.
그리고 이들 문제에 대한 미러 양국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큰 상황이다. 상당수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별다른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까닭이다.
트럼프는 왜 푸틴을 만나려고 하는가?
하지만 트럼프와 푸틴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바로 한반도 문제이다. 푸틴은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신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만든 공동의 해법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내포되어 있다. 중러 간의 공동의 해법이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 및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의미하는 '쌍중단',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쌍궤병행' 등을 일컫는다.
아울러 푸틴은 한반도 문제 해결이 진전되어야 극동 개발 프로젝트도 본격화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거듭 확인된 바다.
트럼프의 최근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푸틴과의 정상회담이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존 볼턴 안보보좌관을 모스크바로 보낸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는 6월 초에 샘 넌과 리처드 루가 전 상원의원들을 만났다. 넌과 루가는 1990년대 초반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주도한 핵심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트럼프와의 면담 직전에도 언론 기고문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러 간의 협력을 촉구하면서 CTR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넌과 루가로부터 CTR 과외 공부를 받은 트럼프는 그 직후에 푸틴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푸틴과의 정상회담 타진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도 있었다. 볼턴을 모스크바로 보냈을 정도로 미러 정상회담을 조속히 성사시키고 싶어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볼턴의 방러 직후 트럼프는 "머지않은 미래에 푸틴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이 트럼프가 한반도 비핵화의 방식으로 CTR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CTR에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CTR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의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을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하는 방식이 핵심 골자였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 북핵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을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건 현실적이지 않다. 장거리 반출 자체의 기술적이고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전히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에 최고의 군사 기밀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러시아로의 반출에 동의하려면
그럼 북-미-러 논의를 거쳐 북핵을 러시아로 반출하는 것은 어떨까?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우선 러시아는 자국의 핵무기를 포함해 핵무기를 폐기한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CTR을 통해 재정 지원과 기술 협력에 나선 바 있다. 또한 러시아는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우호관계에 있다. 아울러 러시아에는 핵탄두와 미사일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특수 차량과 열차 등 특수 장비들이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문제제기에 대한 대안을 내포하고 있다. 핵무기도 만들어보고 폐기도 해봤던 헤커는 "핵탄두 해체는 이걸 만든 사람들이 직접 해야 한다"며 미국으로의 북핵 반출·폐기 주장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러시아로의 반출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이와도 연관된다. 북핵을 러시아로 반출하면서 북한의 핵과학자들과 기술자들도 함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트럼프와 푸틴이 만나면 CTR을 북핵 해법에 적용하는 방안이 심도 깊게 논의될 것이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북한의 입장도 타진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러한 방식에 동의할까? 핵심적인 요구가 충족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교전 상태가 공식적으로 종식되고 미국의 대북 불가침 확약이 있을 때, 비로소 북한은 신고 대상에 핵탄두도 포함하고 그 탄두의 일부를 러시아로 반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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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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