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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미적' 경제 관료의 갑작스런 사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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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미적' 경제 관료의 갑작스런 사퇴를 보며

[기자의 눈] 관료의 전범 한덕수, 다음 정권서도 중용?

한덕수 주미대사 전격 사퇴의 배경이 드러났다. 한 대사는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13일 귀국할 때까지 주미대사관은 물론 주변에 사퇴의사를 전혀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대사는 기자간담회(24일)와 문화관광부 장관 면담(17일) 등 일정까지 마련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15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그 다음 날 외교부에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결국 한 대사의 사퇴에는 이 대통령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무엽협회는 17일 한덕수 대사를 신임 회장으로 추대했다.

▲ 무역협회장에 추대된 한덕수 주미대사ⓒ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멘토 그룹 중 한 명인 사공일 무역협회장이 연임 의사를 포기한 직후 무역협회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윤호 전 러시아 대사, 이 대통령과 가까운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등이 나섰지만, 결국 한덕수 주미대사 쪽으로 정리가 됐다.

무역에 관심이 많은 이 대통령이 관계 인사를 내려보내길 원했고, 또 그 자리에서 한미FTA 폐기 논란이 벌어지는 국내 상황을 정리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데 관가 안팎에선 "한 대사의 강한 친미 성향도 문제다"는 엉뚱한 이야기도 들린다.

한 대사가 한미FTA 재협상, 그 이후 과정 등에서 미국 측의 입장을 너무 강하게 대변해서 주위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는 것. '뼛속까지 친미'(위키리크스에 나온 지난 2008년 5월 29일자 주미대사관 전문에 나온 표현)인 현 정부와 갈등을 빚을 정도로 친미 성향이 남달랐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미FTA 발효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한 대사의 '친미 성향'이 새삼스럽게 큰 문제가 됐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한 대사의 이력을 되짚어 보면 한국의 '친미 성향 경제 관료'의 한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여야 모두에서 '능력' 인정 받는 인물

한 대사는 지난 2006년 2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출범 공식 선언부터 2007년 4월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한미FTA 지원위원장, 국무총리 등 지낸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그는 정권교체 1년 후 주미대사로 깜짝 발탁됐다. 주미대사를 지내면서도 한미FTA 재협상을 지원했고 미국의 중소도시까지 샅샅이 훑으면서 한미FTA에 박차를 가했다.

그 와중에 과도한 로비 비용 지출 등 구설도 없지 않았지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 대사만한 사람이 없다. 정말 열심이다"면서 "사람이 출세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극찬했을 정도다. 한 대사의 성실성, 온화한 성품, 자기 관리 등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마늘파동과 한-칠레 FTA의 주역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한 대사는 구 경제기획원(EPB)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년에는 그리 잘 나가진 못한 관료였다"는 평이 많다. 대신 바쁘지 않는 자리에 있는 동안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내공'을 쌓았고 통상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낸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OECD대표부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정권 교체 기 "경기고를 나온 서울 사람이라고 알려졌던 한덕수가, 사실은 전주북중 나온 전주 사람이라더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빈틈 없는' 처신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 대사는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한국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그는 경제수석을 지내다가 '마늘 파동'이 불거지면서 불명예 퇴진한다. 한중 마늘 분쟁 과정에 휴대폰, 철강 산업 수출을 위해 '세이프가드 연장을 2년 반으로 제한'한다는 조항을 만들어 두고 이를 비공개했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盧 대통령의 탁월한 손발이자 김현종·김종훈의 든든한 후원자

법률사무소 김앤장 고문을 거쳐 산업연구원장 자리로 물러나있던 그는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된다. 대통령 탄핵으로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을 지낼 때도 매끄러운 업무 처리 능력을 보인 그는 2005년 3월에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영전한다. 부총리 시절 스크린 쿼터 축소 등 이른바 한미FTA 4대 선결조건을 처리했다.

2006년 7월 직을 물러났지만 범국가적 민관합동기구인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위원장을 맡았고 한미FTA 본협상이 타결된 이후인 2007년 4월에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총리가 됐다. 그의 전임자가 바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다.

참여정부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미FTA협상 수석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개성이 강한 386인사들이나 정권 실세들과도 마찰을 빚지 않았고 <프레시안>같은 한미FTA에 비판적인 언론과도 직접 접촉하는 '성실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미FTA에 초지일관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던 당시 여당 의원은 "열심히 일 하는 것, 성품만 따지면 한(덕수) 총리 따라갈 사람이 없다"면서 "모난 성격인 김현종, 김종훈을 다독거리면서 간 사람도 한덕수"라고 회고한 바 있다.

다음 정권에선들 '한덕수 중용론' 안 나오랴

김영삼 정부에서 잘 나가다가 김대중 정부에서도, 김대중 정부에서도 잘 나가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까지 지낸 한 대사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도 주미대사로 '중용'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 직후 민주당 일각에서는 "다음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한덕수 전 총리를 내보내는 게 어떻겠나. 이미지도 괜찮다. 조순 전 시장 전례도 있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호남출신이라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는 구체적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주미대사로 발탁됐고 '누구보다 열심히' 직을 수행했다. 한 대사는 이제 무역협회장이 됐다. 같은 한 씨로 주미대사, 통상장관, 국무총리 선배인 한승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에 버금가는 이력이다.

한 대사는 아마 다음 정권에서도 '노마지지(老馬之智)를 갖춘 경제계 원로', '한국 국제통상의 산 증인', '미국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으로 어떤 식으로든 중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정권을 넘나 들었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라 행정의 달인이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가히 '관료의 전범', '우리시대의 모범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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