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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화해 시대에 맞는 6.25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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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화해 시대에 맞는 6.25 기념일

[전쟁국가 미국] 한국전쟁은 북한에게 무엇이었나

2018년 6월 25일, 한국전쟁 68주년은 특별하다. 북미 화해라는 획기적 사건 이후 처음 맞이하는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2일 미국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는 사상 최초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의 종식을 약속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70년 가까이 지속돼온 북미 적대관계, 즉 한반도 냉전은 해체의 수순에 들어섰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한국전쟁의 공식 종료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100% 성공을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타자(The Other)" "미국의 영원한 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북한의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공식 회담을 가졌다는 것은 '세계사적'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획기적 사건이다. 이제까지 북한을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가진 국가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미국이 북한을 대등한 국가적 상대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협상의 전망은 밝으며, 그 결과 변화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전쟁'이 아닌 '경찰 행동(a police action)'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북한은 범죄자(criminal)라는 것이다, 또 하나, 미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은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하듯이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전쟁 초기 맥아더는 '한 손을 뒤로 묶고도 미군 1개 사단이면 북한군을 격퇴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다.

그러나 전쟁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려운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길어야 몇 달이면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무려 3년이나 계속됐고 6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대관계는 종식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미국에 의한 국제적 고립 속에 곧 붕괴할 것 같았던 북한이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을 군사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미국의 해결책은 결국 대화와 협상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식 '동(同)의 논리'의 파탄

이는 2차 대전 이후 패권국가로 군림해온 미국의 전통적 대외전략에서 벗어난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은 한마디로 군사력에 의한 '동(同)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식 체제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게는 멸망뿐이라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1960년대 "중립은 부도덕하다(Neutral is immoral)"는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주장, 2001년 9.11 직후 "동지가 아니면 적(You are with us, or against us)"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바로 이러한 미국의 논리를 잘 말해준다. 미국과 다른 체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설 자리가 없다. 미국에게 화(和)는 없다.

냉전 시절 미국과의 극단적 군비 경쟁으로 결국은 스스로 붕괴한 소련, 탈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력에 무너진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리비아의 운명은 바로 미국식 '동의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의 논리'는 지금 시리아와 이란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미국과 대등한 협상 상대로 나서게 된 것은 중대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이 그렇다. 중국과 베트남은 각각 1979년과 1995년에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시장경제 발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 패배, 중국의 경제적 팽창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제 북한도 그 길을 가려 한다.

탈냉전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 모두가 미국식 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한 데 비해 중국, 베트남, 북한 등 동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은 공산당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차이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소련의 강제에 의해 이식된 것인 반면 동아시아 사회주의는 민족해방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식 사회주의의 내구력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과 한반도를 모두 변화시킨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미국과 남북한 모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우선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영구 전쟁 국가로 변모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북한의 시도를 세계 공산화를 위한 소련의 음모로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군사력을 비약적, 영구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이 미국을 재탄생(remade) 시킨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대외 관계사에서 베트남전쟁보다, 그리고 트루먼 독트린의 원인이었던 그리스, 터키보다, 또한 유럽 경제부흥을 위한 마셜 플랜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의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봤다면 놀라자빠질 만큼 다른 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

즉 국내적으로는 연간 국방비가 단숨에 4배로(국방비 130억 달러에서 540억 달러로) 늘어나 안보국가가 형성됐고 대외적으로는 전 세계에 수 백 개의 군사기지를 거느린 군사제국이 됐다. 또한 조지 케난의 제한적 봉쇄에서 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을 지향하는 반공 십자군으로 변모했고, 꺼져가던 매카시즘을 부활시켜 냉전의 장기 지속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을 끔찍한 병영국가(garrison state)로 만든 것은 미국의 책임이다. 바로 한국전쟁 때 경험한 미국의 어마어마한 공습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 투하한 폭탄의 4배에 달하는 폭탄을 퍼부었다. 커밍스는 중국과 동남아 침략 등 세계 평화를 유린한 일본에 비해 기껏해야 자신의 조국을 통일하겠다는 북한이 4배나 많은 폭탄을 맞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과 북한은 함께 한국전쟁을 겪었지만 한국에서는 전선이 고착된 1951년 봄 이후 비교적 전쟁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반면 북한은 2년 이상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은' 미국의 무자비한 공습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이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국은 또한 한국전쟁 직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에 대한 원자탄 공격을 계획했다. 특히 1951년 9월과 10월에는 모의 원자탄의 북한 투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허드슨하버 작전). 노심을 뺀 원자탄 모형을 실제로 북한에 투하하면서 원자탄의 제조에서 투하 과정까지를 실험해본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1만5천개의 지하 안보시설을 갖추고 전 국민의 무장화, 전 국토의 요새화를 지향하는 병영국가로 변모했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내전,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한 게릴라투쟁, 남한과의 갈등, 냉전 종식 및 소련 붕괴 이후의 경직되고 방어적인 대응, 끝이 보이지 않는 매일 매일의 미국과의 투쟁을 모른다면 북한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전쟁은 또한 한국과 미국에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남한을 침략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지도자는 미치광이이고, 국민들은 세뇌 당했으며, 체제는 조만간 내파 또는 붕괴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베트남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만년에 미국이 패배한 이유로 '적을 몰랐다'는 것을 꼽았다. 그는 "적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비로소 미국의 막강한 화력으로도(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태평양전쟁의 40배, 한국전쟁의 10배, 2차 대전의 2배에 달하는 폭탄을 사용했다) 베트남인들의 독립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적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 이것을 이해(empathy)라고 한다. 커밍스는 "북한에 대해 공감(sympathy)할 수 없다면 이해(empathy)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장정에 나섰다. 이 과업이 제대로 완수된다면 70년 가까운 한국전쟁이 끝나는 것은 물론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동아시아를 옥죄어온 '전쟁의 시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디테일의 악마, 또는 상호 이해 부족 등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상상 속의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수 차례에 걸쳐 한국전쟁과 그 이후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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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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