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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나온 여자'들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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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나온 여자'들이 문제인가?

[기자의 눈] 민주통합당 '이대 출신 논쟁'을 보며

민주통합당의 정청래 전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당이 이대 동문회냐"고 쏘아붙였다. 여야 합쳐 스무 명 가까운 후보군이 난립한 마포을에 출마하려는 정 전 의원에게 여성 경쟁자들이 가산점, 할당제 등의 혜택을 얻도록 한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결정은 청천벽력이다.

김두관 경남지사의 동생인 김두수 전 사무총장 등 30여 명의 민주통합당 남성 예비후보들이 정 전 의원과 뜻을 같이한 것도 비슷한 사정 때문이다.

이들의 반발은 소위 이화여대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표적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대 출신 한명숙 대표 선출 이후 당 주요 요직과 공천심사위원회에 여성, 특히 이대 출신들이 과도하게 포진하고 있고 이들이 부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논란이다.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공심위 내의 최영희 의원, 문미란 변호사, 최영애 전 인권위 사무총장이 이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근거로 나온다.

정청래 전 의원은 "저는 이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라면서도 '이대'를 타깃으로 잡은 듯 이대 출신 수도권 공천신청자 명단을 늘어놓았다.

이같은 '이대 논쟁'은 야권에서는 매우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한명숙 지도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과연 이대 나온 여자들은 문제인가?

▲ 민주통합당의 주요 여성 인사들, 맨 왼 쪽의 조배숙 의원은 서울대 출신이다ⓒ민주통합당 여성위원회
'운동권 족보'는 어떻게 작동하나?

한국의 정치권을 조망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관계망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른바 '운동권 족보'는 더 그렇다. 전대협 기수, 80년대 이른바 주요대학 총학생회장 계보, 정파를 파악하면 여야에 포진한 386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진다.

서울대나 연대, 고대의 '언더 스쿨'이나 경기고 기수, 비합법 조직에도 계보가 있다. 조영래, 김근태, 손학규가 경기고-서울대 동기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시민·심상정 두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80년대에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서 한 솥밥을 먹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성식 의원과 민주통합당 민병두 전 의원은 CA(제헌의회)그룹의 핵심이었다. 새누리당에도 서울대 언더 패밀리인 '대문(대학문화연구회)' 출신인 정두언, 신성범 의원이 있다. 김민석 전 의원, 사노맹 출신으로 잘 알려진 백태웅 교수,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 열사 외에도 수많은 인사들도 '대문' 출신이다.

이들 중 다수는 반독재투쟁, 노동운동 등에 투신한 전력이 있다. 한국 사회와 정치의 진보를 설명하기 위해선 이들의 존재와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사선을 넘나드는 고문과 탄압, 투옥의 위협에 직면한 과정에서 개인 간 신뢰는 필수요소였고 '족보'도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정치와 조직에 대한 학습과 훈련, 헌신을 거친 이들이 정치권에도 상당수 안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족보 있어야 정치하냐",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 아니라서 못해먹겠다"는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통합당에서 가장 진보적 컨텐츠와 활동력을 갖춘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당에서 개혁적 모임을 꾸린다고 동참 제의를 받아 참여를 결심했는데 '저 사람은 구속 경력이 없다'라는 뒷말을 듣고 박찬 적이 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이대 '파워'에는 이유가 있다

'이대 논란'도 이와 유사점이 있다. 주류 사회건 운동권이건 서울대 출신들의 장악력이 높다면 여성계에선 이대가 그렇다. 일종의 '출신성분'으로 자리매김 됐다는 것이다. "어떤 자리에 가면 남자들 출신은 제각각이지만 부인들은 다 이대더라. 영부인 중에도 이대가 제일 많지 않냐"는 뒷말도 어렵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비판 이전에 이대 출신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고려돼야 한다.

예컨대 이희호, 박영숙, 한명숙, 인재근은 김대중, 안병무, 박성준, 김근태의 부인으로만 기록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이들 각자는 탁월한 여성운동가, 인권운동가, 조직가, 정치가다. 이들이 자매애를 바탕으로 이대 후배들의 눈을 사회로 향하게 하고, 고난의 길로 권유해 오늘 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 것은 극찬해야 할 일이지 비판할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여성 지위의 향상에 있어 상당 부분은 이대 출신들에게 빚진 것이다.

물론 과거의 업적이 현재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대 출신들의 인적 역량으로 인해 '파워'가 세졌고 파워가 세지면 부작용도 따르게 된다.

이대 나오지 않은 여성 정치인의 이야기

민주통합당에서 최근 벌어진 '이대 논란'은 예전에도 있었다. 비(非) 이대 출신 여성들이 이대 출신들의 '자매애'에 치이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남성들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바닥에서 올라 온 여성들이 그룹을 형성한 이대 출신 여성들에게 밀렸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대 파워'가 소멸해가는 현상도 있다. 남녀공학을 나온 386세대의 한 민주통합당 여성 정치인은 "사실 (민주통합당 여성 정치인 중)이대의 비중은 많이 낮아졌다. 예전엔 더 심했는데 이런 논란도 다음 20대 총선에선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선숙, 김현미, 박영선, 유은혜, 김현 등 남성 정치인 이상의 몫을 하는 비(非) 이대 출신 여성들은 많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 '이대 논란'은 다소 본질에서 빗나가 있다. 새누리당도 총선 여성 공천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마당에 15%를 규정한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결정 자체가 욕 먹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당 이력이 20년이 넘는 한 여성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여성 정치인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전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 상황을 이대 출신 운운으로 몰고가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현역 지역구 의원은 가산점을 주지 않기로 하는 등 보정장치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집단적으로 뭉쳐 다니고, 숟가락 얹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대 출신)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렇지만 '이대가 문제다'는 식의 주장은 틀렸다"고 말했다.

성대 나와도 이대 대학원 나왔으면 이대 출신?

정청래 의원은 성균관대를 나온 유은혜 예비후보 마저 이대 대학원을 나왔다는 이유로 '이대 출신'으로 분류했다. "또 어떤 여성후보가 최재천 (전) 의원 지역구에 공천장을 내면 최재천도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재천 전 의원 지역구에 여성 정치인이 도전하면 안 되나? 물론 정청래 전 의원이나 지난 4년 아니 8년간 표밭을 갈고 닦아 온 다른 남성 정치인들에게 "양성 평등의 대의를 위해 당신이 양보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 할당 비율이 너무 높다. 가산점이 과도하다', '남성이 역차별 당할 수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이대 명단 공개나 최재천도 오리알 된다는 식의 주장을 보면 여자라서 문제라는 말인지, 이대 나온 사람이 문제란 말인지 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생산적 논쟁이 가능할 것 같은 '나꼼수 코피 논쟁'이 산으로 가는 듯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 할당 비율, 가산점의 폭에 대해서도 합당한 토론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대가 문제다"는 식만 아니면 말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 폭을 확대하면서도 공정한 룰을 만들 수 있을까. 또한 '운동권 권력', '이대 권력' 등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작동해 온 '출신성분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지금 민주통합당은 어쩌면 무척 민감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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