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집권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높은 지지도를 빼놓고는 이런 결과를 해석하기 힘들 것이고, 남북미 관계의 해빙 분위기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여기에 주요 야당이 갖다 바친 무수한 자책골까지 보태지니 자칫 여당의 발목을 잡을 악재도 판세를 흔들지 못했다. 다음 2020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앞날은 찬란해 보인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유쾌한 유권자들이 많겠지만, 선거 과정을 되돌아보면 과연 좋은 선거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구도 탓에 '전국동시'의 의미는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지방선거'에 맞는 정치 공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가 낮긴 하지만, '지방소멸'은 이런 '정책소멸'로 더 심각해질지 모른다. 개발주의 정책이 얼마나 많은데 정책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대꾸할 말이 없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재활용 같은 일상 이슈를 선거 국면에서 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더러는 공약집에 실리고 토론회에서 언급되긴 했지만, 그것 갖고 치열하게 겨루거나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각기 권한과 책무가 있다.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범위를 따지기 전에 알아서 일을 만들어도 된다. 최근 사례로는 '실내 라돈 측정기 대여서비스'가 있다. 정부의 방사능 물질 관리 실패로 인해 발생한 시민들의 불안에 민감하게 대처한 곳은 정부 부처가 아니라 수원시 등 일선 지방자치단체였다.
실내공기질관리법에 의해 한국환경공단은 실내 라돈 무료측정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었다. 정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시민들은 자가 진단에 나섰고, 환경공단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했던 상당수는 신청이 폭주한 탓에 제때 측정기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때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 '라돈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환경부를 보충하는 기관은 다름 아닌 지방정부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대통령과 여당이 지향하는 지방분권 국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확인됐다는 평가는 일부 타당하지만, 지나치게 순진한 해석은 경계하는 게 좋겠다. 진정 지방분권을 하자면 지방자치 법제도는 물론이고, 선거 방식과 투표 관행도 바꿔야 한다. 지방선거 동시 개헌투표가 좌절됐더라도, 적어도 여당은 적극적으로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 후보를 발굴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책공약을 마련하고 선거 운동도 그런 방향에서 펼쳤어야 했다.
지방권력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개헌안을 다룰 정도로 국회가 정상화돼 머지않아 지방분권 개헌이 국민적 동의를 받는다고 치자. 지방선거 당선자들은 낡은 관습에서 벗어난 새 정치를 예비할 수 있을까. 과연 몇이나 될까. 여당은 대세론에 취한 나머지 지방분권의 새로운 토대를 세울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은 아닐까.
몇몇 스타 정치인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정당 정치와 생활 정치가 정착하려면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누군가는 거대 정당 혹은 그 파생 정당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녹색 정당이나 진보 정당에서 희망을 찾는다. 비록 성장 궤도는 다르지만, 이 정당들은 약진하면서 기존 정치 문법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역주의가 해소되면서, 또는 지역주의를 해체하면서.
지방선거 당선자는 총 4016명이라고 한다. 교육감과 무소속 당선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한 당선자 다수가 범여권에 속한만큼 많은 정부 정책은 탄력을 받겠지만, 지역의 반응은 정책에 따라 선택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같은 정당 소속이더라도 이슈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지역개발, 산업고용, 사회복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정책들은 후순위로 밀리게 마련이다.
과거에 비해 환경 정책공약이 제법 늘었지만 여전히 착한 이야기 정도로 취급된다. 에너지전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분권 중 하나로 에너지분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고, 현재 수립 중인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주요 의제로 설정되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곤 에너지분권은커녕 에너지전환도 아직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지난 4월, 지역에너지전환 전국네트워크,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그리고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지속가능발전 지방정부협의회, 에너지정책전환 지방정부협의회가 함께 하는 '지역에너지전환 매니페스토 협의회'가 출범했다. 협의회가 제안한 '지역에너지전환 약속후보'에 참여한 최종 인원은 245명으로 전체 출마자 9천여 명의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일한 선거 쟁점이 문재인 정권 지지 여부로 환원되는 가운데 경제와 민생을 심각하게 따질 시기는 일렀고, 생태, 여성, 인권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상징적 수준에 그쳤다. 이런 마당에 에너지 의제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건 자명해 보인다.
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정개 개편이 아니다. 표출될 것들이 표출되어야 하며 유보돼서는 안 된다. 에너지전환은 기로에 섰고 온실가스 감축은 동력을 잃고 있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립에서 맞서야 할 상대가 지방선거처럼 단일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막강한 자본 권력이 버티고 있고, 정권 내부 곳곳에도 있다. 사회 권력의 기반이 취약한 에너지전환과 기후정의 그룹들은 결국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암울한 시나리오는 이 정도로 하자. 경제성장 논리와 결합된 정권지지 프레임이 에너지전환과 기후정의에 미칠 영향을 간단하게 그려봤을 뿐이다. '깜깜이 공론화'를 피하려는 계획 수립 참여자들의 국민 참여 프로그램도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여당 소속 유력 단체장들이 지역에너지전환 선언에 동참한 만큼 정권 내부에서 에너지분권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변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에너지전환의 다른 이름은 에너지민주주의라 하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국가에너지시스템과 지역에너지시스템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규범이며, 에너지분권 모델 또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에너지분권을 본격적으로 다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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